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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페이스북은 그저 소모적일 따름이라는 계산이 있어왔다.


아무리 눈팅을 해도 그로인해 변화하는 것은 없다. 변화하는 것이 있다면 그저 시간에 따른 나의 물리적 노화나 핸드폰 밧데리 수명 단축 등.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기가 쉽지 않다. 삭제하는 것까지는 쉬운데, 삭제버튼을 누르면 14일 간의 유예기간이 설정된다. 페이스북社의 지독한 시스템이다. 


담배를 못끊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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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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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 ipa300 ipa-300 사용기 

장점:

 1.디자인- 중고등학교때 들고다니던 워크맨 생각이 나는 디자인이다. ipa100에서는 없던 기능인 녹음기능이 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던 물건이다. 라디오 녹음기능이 필요해 샀는데 결론적으로 녹음기능도 사용상의 인터페이스가 불편하다.

2. 녹음이 가능하다.

단점:

1. 구입시 주의사항이다. ipa300에서는 4극 이어폰을 사용할 수 없다. 4극 이어폰이란 스마트폰을 살때 주는 이어폰이다. (마이크기능이 있는 것.) 보통의 3극 이어폰만 사용 가능하다. 그것을 모르고 샀다가 불량인줄 알고 점검을 보냈다. ipa100에서는 4극 이어폰, 3극 이어폰 상관 없이 모두 사용가능하지만 100보다 더 최신인 300에서는 3극만 되니, 제품 설계-기획상의 오류인듯 하다. 

2. micro sd카드 삽입 시 사용상 불편. 마이크로 sd카드를 삽입하면 제품을 키자마자 sd카드 내에 녹음되어 있던 파일이 재생된다. 이 점은 불편하다. 제품을 키자마자 재생되는 녹음파일을 재생중단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m버튼을 길게 눌러서 대기모드로 간 뒤, 다시 m버튼을 눌러 메뉴 화면으로 가서 라디오를 키거나 파일재생을 할 수 있다. 이 점은 펌웨어 등을 통해 개선했으면 싶은 부분이다.

3. 라디오 채널 검색기능 불편

 라디오 채널을 등록할 수 있다. 우선 채널 검색을 하면 등록이 된다. 등록된다는 것이 번호로 등록되는 식이 아니고 주파수 위치가 기록되는 식이다. 검색 후 기록이 완료되면 재생버튼을 통해 방송되는 주파수채널을 점프하며 방송을 이동하며 들을 수 있는데, 이동하는 형태가 좌에서 우로- 즉 예를 들면 89.1->106.1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106.1->95.1로 옮기려면 재생버튼을 몇 번을 계속 눌러 이동해야 한다. 버튼 한번 더 눌로 97.1 로 간다면 다시 한바퀴를 더 돌아 95.1로 가야 한다. 높은 주파수에서 낮은 주파수로 이동이 불가능하니 이 부분은 구형인 ipa100보다도 불편한 검색기능이다.

 

 

[위] 구성품. 박스, 설명서, 끈, 충전지, aux선, 충전선, 본체. 1x번가에서 최저가+ 쿠폰이용 구매.

산디스크 8gb 는 구입처에서 추가 구입(5천원) 

총 4.7청도

 

[위] ipa-300 전면부 자세한 사진

 

[위] ipa300 후면부 자세한 사진. 커버를 열기가 불편하다. 

 

[위] 아이리버 라디오 시리즈. 왼쪽부터 ipa100, ipa200, ipa300. ipa300이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나 사용해본 아이리버 라디오 중 아쉬운 점이 가장 많다. 

 

[위] 한 손에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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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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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는 시장이야말로 악의 근원 비슷한 방식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대학 구조조정의 진행-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그에 대한 비판점이 시장논리 경쟁성 효율성의 논리를 대학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것에 관한 사항이다. 또 우리 같이 작은 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대학이 있을 피룡가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평균적 한국 시민들이 가진 정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비낞라 수만은 없다. 다만 이제 이것을 구조조정할 때, 어떤 잣대로 하느냐, 공장하게 하느ㅑㄴ? 있어야 할 것들을 고려하느냐,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성하는데 가장 핵심적 두 개의 요소는 사적 소유와 노동의 분업이다.
 분업이 극단적으로 발달하게 되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처럼, 자본주의 초창기에 나사만 돌리는, 해서 맑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하는 식이 그 극단이었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 가난한 자는 갈수록 가난해지며, 노동이 인간의 자기실현이 되어야 하는데, 선생으로 상의를 하는 것이 자기실현이 되고 있는가를 계속 묻는 것, 일치하는게 바람직하다. 나의 자기실현의 한 일환, 학자의 경우는 강의와 더불어 연구가 자기실현이다. 자아실현의 확장,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철학교수가 ㅆ끄는 글은 뭔가 좀 차별화되는0 한번쯤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려고 노력하는것- 자아실현의 일종이다. 맑스가 보는 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심지어 높은 위치에 올라갈지라도 노동하는 것이 결고 자기실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분업에서 찾는다. 과거 목수같으면 공정의 전체 과정으 ㄹ자신이 디자인하고, 따라서 노동의 결과물이 마치 자신의 분신 비슷한 것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아담 스미스가 직저 ㅂ한 말이다. 바늘 하나를 생산하는데 있어서도 30여개의 직업군이 괸련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고도로 분업화 되는 것, 단적으로 포드 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따. 또는 대량 생산시스템, 커넵이어 벨트 시스템, 찰리 채플랜의 예 등이 있겠따.
 숙련된 노동자라 할지ㄷ라도 분업에서는 자신이 아는 것만 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것만 안다. 자동차를, 스마트폰을, 자신이 하는 것만 알게 된다. 대부분은 기계가 생산하고, 그래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일을 하는 단 한의 이유만 남는데, 바로 봉급을 받기 위함이다.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맑스의 표현ㅇ르 빌리자면, 노동분업과 사적소유라고 하는 것이 경제운영의 사회적 원칙이 되어있는 곳에서는 노동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자기의 진정한 자아가 고갈된다. 그래서 노동자가 아! 이제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라고 느끼는 것은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노동은 고역이 되는 것이다. 나의 자기발전, 자아형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고 오히려 적대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이게 철학적으로 개념화한게 소외이론이다. 인간쇵. 내가 하는 일이 나와 전연 관련없는 방식으로 분뢰도는 것, 그래서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런 성격을 갖는다고 맑스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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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의 간략한 역사

1815-1873-1896-1914 는 자유 방임주의에서 초기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시기이다.

(1815~19세기 초: 마르크스의 활동시기이자 산업혁명의 시기, 나폴레옹이 나온 시기)

 

초기의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기는 마르크스가 활동했던 시기이다. 국가는 관여하지 마라는 식의, 즉 시장이 다 알아서 한다는 식의 최소국가론, 야경국가론이 활개. 현대에 흔히 자주 인용되는 문구인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시기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빵집 주인은 휴머니스트이기에 빵을 제공하고, 버스를, 지하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이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한참 후인 1930년대에 수정자본주의가 출현하게 된다. 왜냐하면 앞서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시장에 내재된 모순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이는 대공황으로 나타났다. 하여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 수정자본주의,. 케인즈적 자본주의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특히 공공 인프라 건설사업을 통하여 개입한다는 식의 경제모델이 나타난 것이다. 즉 거시경제학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거시경제학, 경제학은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으로 나누어지는데, 오늘날 경제학의 대종은 거시경제학이다. 그리고 금융경제학도 함께 간다. 그런데 국가에 의한 개입- 영국의 경우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부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이다. 영국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1980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수상 당시에, 이때 경제가 신장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관료주의의 폐해, 그리고 국가의 경제적 부담감, 국가, 정치, 경제의 도덕적 타락등이 그것이다.

 

 하여 그 다음 나온 것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다. 즉 네오 리버럴리즘. 다시 21세기적 맥락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의 최소국가론을 내세우는 이론이 다시 득세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양극화와 승자독식, 더 극심한 양극화로 나타나게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금융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가 나오고, 사회주의가 무너진다. 하여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에는 대안이 없다고 하는 것, 이것이 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상황이다. 그래서 이제는 제1, 제2, 제3에 이어 제 4의 자본주의의 모습에 대한 모색, 다시말해 제 4의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가 근래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인 것이다. 자본론에 관한 베스트 셀러이기도 하다.

 

 피케티에게는 맑스의 '자본론'에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가 자의식 속에 있다. 피케티는 22살에 미국 MIT대학의 교수가 된 사람이다. 그 사람의 핵심 테제는 약 300여년에 이르는 수십개 국가의 데이터이다. 광범위한 자료를 동원해 전세계적인 빈익빈 부익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확대되고 있음을 증명했는데, 그는 그것을 선전이나 단지 주장의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실의 차원에서 세계사적으로 진행된 각국의 경제, 사회적 통계를 전부 조사하여 왜 부익부 빈익빈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해 논증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자본소득이 근로소득보다 훨씬 높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말해 자본의 소득이 팽창하는 정도가 근로소득이 팽창하는 정도보다 훨씬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것을 지난 300년간 전 지구적인 여러 나라들의 경제를 보고 입증한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보여주는 바가 무엇인가 하면 결국 오늘날 21세기 차원에서 부자가 되는,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 물론 각 나라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돈 있는 자가 갈수록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즉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이 열심히 일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극도로 힘들고 갈수록 더 힘들어 진다는 것을 통계적,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만약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이 있는 사람들이 갈수록 잘살게 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그는 보았다. 예를 들면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예외 없이 관철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결국 피케티의 해법은, 이 흐름 경향을 그대로 방치해 놓으면 사회적 긴장이 엄청 커질수 밖에 없기에 국가가 나서서 일련의 양극화의 흐름을 단칼에 잘라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독단적인 행정장관 임명을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중국 당국의 공공연한 비호 아래 세계적 부호가 된 자, 새로운 재벌이 된 자들의 전횡을 깔고 있는 홍콩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있다. 홍콩 운동의 실상은 이런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서 기인한 고난한 삶, 일자리 부족, 집값의 폭등과 물가의 폭등 등 양극화와 승자 독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가면 인류사회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하고자 시도한 것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큰 시장 작은 국가였는데, 시장을 줄이고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 양극화를 시정하고 재벌들도 통제하는 것, 이것이 2012년도 한국사회와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경제정책과 고나련한 것이었다. 공약의 차원에서는 이 경제 민주화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라고 하는 것이 박근혜 당선의 결정적 역할 1등 공신이었다. 양극화와 승자독식의 한국적 상태에 대한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5년 현재 박근혜와 정부는 그 공약을 완전히 폐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적 방식으로 왜곡된 것이다. 이 문제의 틀은 큰 시장 작은 국가 vs 작은 시장 큰 국가의 틀을 가지고 싸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문제를 잘못 설정한 것에 해당한다. 지금의 사태는 시장이나 국가가 크냐 작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장 자체가, 또는 국가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시장이나 국가의 크기가 크든 작든 만약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 것이다.


 


2. 한국 자본의 형성사.

 오늘날 재벌이 재벌이 된 데이는 자신들이 능력이 참으로 뛰어나서 였을까? 그런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결코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 재벌이 형성된 추동적 역사를 보면, 압축성장한 한각의 기적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천민 자본주의와 재벌공화국이라고 하는 상당히 한국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재벌이 재벌이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국가의 전폭적 지원이다. 둘째,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이다. 셋째, 정치와 경제, 즉 기업인과 정치인의 일원하이다.

 

 첫째,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던 요인이 크다. 이승만이 쫏겨나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다. 당시에도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 청사진을 입안하기는 했지만 데모로 날이 지고 새는... 지극히 취약한 정치적 불안정이 만성화되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런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나 힘, 자신, 인물이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권을 잡은 것이다. 이때의 자유당 정권에 의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입안되게 된다. 그런데 당시의 한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각주:1] 있는 것이라고는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 뿐이었다. 빈곤, 보릿고개, 아사하는 사람, 그 상황 속에서 정권을 잡은 이들은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경제 발전을 위하새는 돈이 있어야 했다. 작은 창업을 하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하고 공장을 짓고 회사를 세우고 수출을 하고 원자재를 들여오고 시설을 세우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60년대 초에 대한민국에는 사람 말고 있는것이 없었다. 하여 당시에 국가는 해외에서 차권을 빌려와야 했다.

 

 이때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 민간인의 차관, 소위 대출에 대한 보증을 서준다. 이 차관을 정부는 지정하여 나눠주게 된다. 즉 삼성이 오늘날 세계적 거대 자본이 되었지만, 실은 대구에서의 조그만 쌀가게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래서 당시에는 이병철의 아버지이자 이건희의 할아버지는 일제때 상당히 돈을 벌었던 지역 토호 세력이었다. 과거에는 정미소 하면 부자였기 때문이다. 정미소에 일부의 소비재를 덛붙여 장사를 해 돈과 이름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군사정권에 로비를 했다. 한국의 정부는, 박정희는 그나마 장사를 해본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적산의 시설과 공장, 그리고 차관을 주어 그것들을 맡아서 해보기를 지시한 것이 한국 재벌 탄생의 시작점인 것이다. 국가의 전폭적 지원,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본을 빌려주며 세금에 대한 온갖 특혜도 주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우리 땅에 토착 자본세력이 형성 발전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때의 가장 최초는 드럼통을 잘라 만든 시발택시가 60년대 자동차 산업의 시초이다.

 

 둘째,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 당시의 한국 정부는 엄청난 지원을 일방적으로 했고 온갖 특혜를 남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때 빈곤 등 돈이 필요한 자들... 근로의욕에 불타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저임금에 착취노동을 시키며 새벽불 보고 저녁불 볼때까지 열심히 일을 시키게 된다. 그래서 산업화 과정에서 전태일 열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에는 농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농업을 그만두고 도시로 나와서 도시에서 가장 밑바닥부터 일하게끔 하는 정책이 있었는데, 이는 거의 자급자족하여 노동자로 전락할 필요가 없던 농민들을 도시의 저임금 착취 노동자로 전락시킬 필요가 있었던 당시의 정치적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실제로 농ㅅ아지어 먹고 살기도 힘들었지만, 저 곡가정책, 즉 농사를 지어 팔아 수지타산을 맞추기는 커녕 구조적으로 손해를 볼수밖에 없게끔 쌀값고 보리값을 계속 묶어 두는 식으로 잔인한 정책을 시행했다. 하여 즉 살수 없던 농민들은 농촌을 대거 이탈하여 도시로 도시로 몰려와 하층 착취 노동자가 될수밖에 없었다. 공기도 안통하고 허리조차 제대로 펼수조차 없었던 구로공단, 청계천 뚝방촌의 열학하기 짝이 없던 섬유산업 단지, 그 당시에는 여공이 주류를 차지했었는데, 당시의 노동자였던 열사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하며 분신을 시도하는 사건이 있었다. 즉 당시에도 법은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적으로 그러한 법은 유명무실했었다.

 

 보론으로,  소나타, 그랜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국내 시장에 대한 차값은 해외 시장에서 판매되는 차값보다 훨씬 비싼 것이 사실이다. 같은 옵션과 사양임에도 불구하고말이다. 왜 그런 것일까? 과거에는 세계적 후발주자로써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과거 당시에는 가격적으로 경쟁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손실부담은 누가 지었을까? 바로 국민들이다.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벅하는 박봉과 고된 장시간의 노동을 감수했던 노동자들, 그리고 국내에서 훨씬 비싼 값으로 독점의 희생양이 될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2015년에 된 지금의 국민들은 과거의 국민들이 아니다. 부당한 독점의 희생으로부터, 그리고 박봉의 고된 장시간의 반인륜적 착취 노동으로부터 조금씩 저항하는 국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정부는 이런 시민의 탄생을 막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자연의 이런 흐름은 막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하여 현대에 이르러서 우리 나라의 일반 시민들은 그런 국내의 독점 자본시장과 착취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듯 하다. 그 대표적 예가 해외 직구매이다.) 국민들이 수십년 동안 엄청난 희생을 감당함을 통해서, 또 정부의 그런 정책에 우리가 발을 맞추어 주면서, 그런 식으로 우리 나라의 재벌이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는 천민 자본주의로 변질되었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으면 그 부의 분배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과, 그리고 과거 희생의 과정에서 유착된 정치인과 자본과는 그럴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변질되어 탐욕이 된 것이다. 하여 우리는 부자를 부러워는 할지언정 절대 존경하지 않는다. 가진 자들이 결코 모범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의 현실이 지금껏 한국의 민주주의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은채 그 역동성을 유지시켜온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1. 당시 세계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지도 못했으며, 알고 있더라도 한국전쟁의 비참한 모습, 예를 들면 오늘날의 tv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들, 저것이 사람인지 아닌지 알기조차 어려운 난민촌의 사람들과 같은 식으로 한국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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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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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가 걸어왔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나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이다 돌아선다


가지마라 가지마라 하고싶다


입이 없네 입을 어디엔가 두고 왔나


입이 없어서 말하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허수경 시인의 '바다가'를 각색하다-. 2015 0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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