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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는 시장이야말로 악의 근원 비슷한 방식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대학 구조조정의 진행-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그에 대한 비판점이 시장논리 경쟁성 효율성의 논리를 대학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것에 관한 사항이다. 또 우리 같이 작은 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대학이 있을 피룡가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평균적 한국 시민들이 가진 정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비낞라 수만은 없다. 다만 이제 이것을 구조조정할 때, 어떤 잣대로 하느냐, 공장하게 하느ㅑㄴ? 있어야 할 것들을 고려하느냐,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성하는데 가장 핵심적 두 개의 요소는 사적 소유와 노동의 분업이다.
 분업이 극단적으로 발달하게 되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처럼, 자본주의 초창기에 나사만 돌리는, 해서 맑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하는 식이 그 극단이었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 가난한 자는 갈수록 가난해지며, 노동이 인간의 자기실현이 되어야 하는데, 선생으로 상의를 하는 것이 자기실현이 되고 있는가를 계속 묻는 것, 일치하는게 바람직하다. 나의 자기실현의 한 일환, 학자의 경우는 강의와 더불어 연구가 자기실현이다. 자아실현의 확장,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철학교수가 ㅆ끄는 글은 뭔가 좀 차별화되는0 한번쯤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려고 노력하는것- 자아실현의 일종이다. 맑스가 보는 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심지어 높은 위치에 올라갈지라도 노동하는 것이 결고 자기실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분업에서 찾는다. 과거 목수같으면 공정의 전체 과정으 ㄹ자신이 디자인하고, 따라서 노동의 결과물이 마치 자신의 분신 비슷한 것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아담 스미스가 직저 ㅂ한 말이다. 바늘 하나를 생산하는데 있어서도 30여개의 직업군이 괸련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고도로 분업화 되는 것, 단적으로 포드 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따. 또는 대량 생산시스템, 커넵이어 벨트 시스템, 찰리 채플랜의 예 등이 있겠따.
 숙련된 노동자라 할지ㄷ라도 분업에서는 자신이 아는 것만 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것만 안다. 자동차를, 스마트폰을, 자신이 하는 것만 알게 된다. 대부분은 기계가 생산하고, 그래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일을 하는 단 한의 이유만 남는데, 바로 봉급을 받기 위함이다.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맑스의 표현ㅇ르 빌리자면, 노동분업과 사적소유라고 하는 것이 경제운영의 사회적 원칙이 되어있는 곳에서는 노동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자기의 진정한 자아가 고갈된다. 그래서 노동자가 아! 이제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라고 느끼는 것은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노동은 고역이 되는 것이다. 나의 자기발전, 자아형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고 오히려 적대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이게 철학적으로 개념화한게 소외이론이다. 인간쇵. 내가 하는 일이 나와 전연 관련없는 방식으로 분뢰도는 것, 그래서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런 성격을 갖는다고 맑스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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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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