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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하고 누군가 말하면 어렸을때라면 보통은 판검사, 장군, 대통령, 경찰, 소방관, 가수, 국회의원, 선생님 등 이랬다. 꿈에 대한 생각의 폭이 추상적이고 비좁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미래의 희망은 경험에 비롯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허나 나이가 들더라도 그 시절의 꿈은 이상으로서 삶의 한 축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에서 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현실적인 어떤 것에 발목이 잡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러한 것들이 (나름 괜찮은 직장으로의) 취직, 혹은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 교사, 안정적인 직업 등 비록 궁극의 목적(잘 사는 것?)은 아닐지언정 중간 목적지 혹은 수단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내게 있어서 고민, 잘 모르겠는 것이, 앞서서처럼 한창 어렸을 때 꿈꿔왔던 꿈은(천문학자, 군인, 경비아저씨, 성우... 뭐 그 외에도 화가, 조각가.. 참 많았다.) 진즉 버려졌는데, 그 이후 어떤 삶의 궁극의 목적을 향해 갈수 있게끔 삶을 지탱해줄 중간 목적, 즉 수단으로서의 꿈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게는 궁극의 목적 뿐이 없는 것이다. 나에게 그 궁극의 목적이란, 누구나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바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아마 이 꿈은 나의 삶의 궁극 목적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의 삶의 궁극 목적으로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한 나의 행복한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사랑하는 이성과 오순도순 살기 좋은 남향과 서향이 탁 트인 방 한 칸이 내 집으로(전세나 월세가 아닌) 있고, 조그만 경차 한 대 정도 운영할 수 있으며, 일년에 한 번씩은 한반도의 태백산맥 종주를 하면서 자연을 느끼고, 일년에 일주일 정도는 여행으로 시간을 할애하며, 한 달에 한번씩은 좋아하는 예술가의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갈 수 있으며, 일주일 중 날 좋은 하루 정도는 밤하늘의 별을 보러 어디론가 부담없이 떠나며, 때때로 집 근처에 편한 친구가 있어 부담없이 맥주나 커피 한 잔 하며 담소할 수 있는 삶이다. 너무 대단스럽나?  작금의 현실을 비추어 보자면 사실 바라는게참 많하기는 하다. 그렇다면, 딱 하한선을 말해보겠는데, 일주일 중 주말 이틀은 완전한 나의 시간으로 사용하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할 방 한칸과,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할 취미 한개, 그리고 친구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삶이면 충분하다.

 나는 요즘 한창 중앙대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을 쓰고 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토익, 회계, 세무, (건축, 수질, 환경 등 전공 관련) 기사, 한국사, 보통의 영어 등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이렇게 공부를 해서 회계사가 되고, 세무사가 되고, 9급 내지 7급 공무원이 되고, 유치원 교사나 중등학교 교사가 되고 혹은 교수님의 추천이나 선배들의 도움으로 중견 이상의 기업이나 연구소로 갈 것이고, 혹자는 공기업으로 빠질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계속 끝없는 공부를 하겠지.

 그렇다면 나의 경우, 행복한 삶의 최소한의 충족 요건인 일주일에 주말 이틀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영유하면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할 방 한칸, 함께 할 취미, 친구 정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수단이라도 상관이 없다. 다만, 대학병원, 고시학원, 건설업, 이벤트회사, 출판사, 판매원 등등 내 몇몇의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이(내가 경험한 삶에 한해), 그런 최소한의 행복한 삶은 차치더라도, 그 수단 자체에 도무지 적응을 할 수 없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부정의, 부당함 등의 갈등이 있거나, 몸이 너무나도 고되어 일이 끝난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거나, 사람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되거나(특히 서비스업이 그러하다), 조직의 위계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등. 더불어서 직업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손 치더라도 내 딴에는 대한민국 땅에서 그런 소소한 삶을 누를 수 있는 직업이 공무원, 대기업, 창업의 성공, 혹은 적당한 중견 기업으로의 취직 등 너무 한정적여 보인다는 사실이 필자를 두렵게 한다.

 위와 같은 내 입장에서의 "행복한 삶"의 최소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하여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영특한 머리"가 있어서 "비경쟁적 혹은 저 경쟁적 영역"을 창조 및 발굴해내어 시장이나 노동가치에서 독점적 지위, 혹은 독창적 지위를 지닐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금수저 하나쯤은 물고 태어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무지 "행복한 삶"이라는 나의 꿈을 이룰 길이 묘연해 보인다. 허나 나에게는 당장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할만한 "경쟁력"이 아직까지는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영특한 머리"도 아닌것 같다는 그러한 현실의 내 모습, 그리고 그러한 경쟁력과 영특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한 엄청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 엄청난 투자를 받쳐줄 자본과 시간이 내게 없다는 한계가 압박한다.

 나는 이런 고민과 문제의 원인이 그저 내 자신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영어나 취업스터디, 잘 쳐주는 자격증 공부, 이력 한줄 쓸만한 대외활동이나 해외 봉사활동, 어학연수 등 을 등한시한 내 잘못도 있지만..ㅠㅠ) 허나 고민의 진짜 뿌리는 정치와 교육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장 내 삶이 행복하지 못한 직접적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겠지만, 간접적이기는 하지만서도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 국가 속의 정치와 교육,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구조화하는 구성체인 인간 모두에게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청소부 일을 할지라도, 경비원 일을 할지라도, 편의점에서 소위 "한갓" 판매원으로 일할지라도, 남들이 하기를 기피하는 3D업종- 건설이나 제조업 등 의 일을 할지라도, 그래서 그 노동의 과정 속에서 나의 정체성이 잠시 소외된다고 할지라도, 그 노동이 끝난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사적 자아를 창조하고 삶의 사적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정치가 그것을 구조적으로 백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국가에서 구조적으로 백업을 해주면서 개인의 사적 자아성취, 가치 창조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직업 쏠림 현상이라든지, 고교 졸업생의 70%가 대학을 진학한다든지 하는 현상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국가가 행하는 백업이란 이런 것이다. "최소한의 행복한 삶"(내 집 한 칸 걱정없이 가질 수 있으며, 주말 이틀은 온전히 자기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취미 한개 정도는 부담없이 가질 수 있어야 하며, 더욱더 양보하자면 최소한 의식주의 걱정은 없는 상태)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임금의 하한선을 설정하고 노동법을 제정하는 일이다. 부당함을 느끼는 조직이라면 언제든지 고발을 하거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좋은 조직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어떠한 일을 하든 서로 존중하며 인간적인 대우만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인권법으로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일이다. 그리고 교육은 그러한 인간을 양성할 수 있도록 인간 내면에 바탕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과연 어려운 일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구성원들의 결단과 용기만 있으면 지금의 경제력으로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국가, 정치, 사회, 경제야말로 정말 "잘, 제대로" 돌아가는 모습일 것이며,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사회주의이니, 자본주의이니, 자유주의이니 하는 이데올로기의 싸움도 무의미할테다.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사회이며 국가의 존재이유, 궁극의 목적이지 국가속에 내재된 인륜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교육은 정치적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그런 바람직한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를 양성하는 역할을 해야지만, 진짜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동물중에서도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그리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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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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