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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얼마 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의 일을 기억해둔다..

얼마 전 작년부터 같은 수업을 들었던 한 타과생 여학생과 연락이 되었다. 전공 강의였는데 내 눈에는 참으로 수수하고 예쁜 여학생이었다(그 분 스스로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고 말을 했). 첫 학기 수업에서는 그냥 그렇게 눈에만 들어왔다. 실습이 있어 수업을 한달 넘게 빠지기도 했었다.

어쨌든 그렇게 어영부영 한 학기가 지나고 다음학기가 찾아왔다. 그때는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 졸업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교수님을 찾아뵙고 검토를 부탁드리며 연구실과 강의실을 오가며 지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찮게 그 여학생을 또 보게 되었다. 게다가 지하철 같은 칸에서 종종 마주치는 일도 있었으니.

라디오에서 한번쯤 흘러나왔던 적 있던 송창식의 다음과 같은 가사의 노래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돌아서서 말할까
마주서서 말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일주일 이주일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화를 내면 어쩌나
가 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달 두달 세달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화를 내면 어쩌나
가 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달 두달 세달

호감이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사처럼 되어버렸다. 故 김광석씨께서 옛날에 이런 말을 했다. 노래 가사를 계속 들으면 운명이 그 가사처럼 되어버린다는 유머가 알게 모르게 있어 슬픈 노래는 되도록이면 부르지 않는다고. 그 말이 맞았던 것일까? 한달 두달 세달 나는 그렇게 눈치만 보다가 졸업을 해버렸다. 하여 그저 어떤 마음속 신기루이겠거니 잊기로 마음먹는데 그사람이 계속 생각났다. 그래서 참 이래도 되는것인가 싶었지만 그 여학생을 수소문하기로 했던 것이고, 믿기지 않게도 결국 연락이 닿았다.

카카오톡 대화를 했다. 나는 그 여학생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상대는 나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하여 너무 진지하게 말을 걸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반대로 또한 너무 가볍게 이야기를 한다면 마치 장난인 것처럼 생각할것 같아 고민이 컸다. 그런데 내 대화가 그분에게는 너무 가볍게 들렸던 것일까? 아름다운 것은 참으로 어려우며 진심이라는 것도 전해지기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 결론적으로 며칠간 연락이 안되더니 결국에는 대화가 끝이 나고 말았다. 요 며칠간 나 혼자만 쓸떼없는 설렘을 느꼈었구나 싶다.

계속 연락하며 한번 만나보기라도 해달라 이야기해보고 싶었지만, 내딴에 그것은 참 보기 안좋은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지 싶었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을 계속 부담스럽게 하는것 보다는 그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주며 마무리하는 것이 상대를 향한 진실되고 바람직한 모습이리라 생각했다. 물론 상대방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설레발을 치는 것이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오늘 나는 설렘과 답답함의 극단의 끝에서 또 다시 외로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총평을 종합하자면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외로운 사람"이란다. 헤겔식의 표현을 유치하게 빌려보자면 나는 뚜렷한 자기 주관이라는 것에서 시작해 좋은 사람이라는 보편성을 얻고 궁극에는 외로움이라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존재인가보다.

사랑고백이라고 하기도 전에 끝난 경우이지만. 계속해서 송창식씨의 가사가 머릿속에 맴돈다. 부탁드릴 수만 있다면 곧 18일에 있을 송창식 선생님의 쏭아 라이브공연때 이 곡 한번만 부탁드려야겠다. 우연찮게도 그 여학생의 성도 송창식씨와 같은 송씨였다. 오늘 저녁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또 만나게 되면 주리라 하며 구입해놓았던 페루산 쵸콜릿을 안주삼아 포도주나 실컷 마시고 잠들것이다. 잠깐이지만 연락이 닿아 설레였던, 그녀의 미래에 항상 축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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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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