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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로티의 신실용주의 진리론 비판”

 

요 약 문

제출자 : 

 

 현대적 맥락, 특히 실용적 맥락에서 보자면 철학은 현실의 삶에서의 의미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듯하다. 특히나 전통철학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렇게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철학의 가운데서 과연 어떻게 해야 철학이 현실에 유의미하며 실천적일 수 있을지, 또 가치 있고 의미 있으려면 어떤 태도를 지녀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본 논문은 시작한다. 따라서 철학에 관한 철학이기도하다. 논문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서론에서는 철학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 편승해 전통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이 있을 것이며, 신실용주의적 사고를 미래 철학의 대안으로써 희망적이게 제시할 것이다. 본문에서는 실용주의 사조가 의미하는 바, 그리고 리처드로티의 신실용주의가 이전의 고전적 실용주의와는 어떤 특징점이 있는지를 서술하게 된다. 그리고 그 특징을 기반으로 한 로티식 신실용주의만의 진리론을 개괄하고 그 진리론의 지지기반이 되는 몇몇의 근거들을 파악해 비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통철학과 신실용주의 양자 모두 일면적임을 주장하며 전통철학의 이념인 표상주의와 정초주의, 신실용주의의 이념인 반표상주의와 반정초주의의 통합을 결론으로 내세우게 된다. 
 

 우선 표상주의라 함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식체계, 예를 들면 마음, 정신, 감각과 같은 것들이 우리 외부의 대상을 사실 그대로 표상가능하다는 식의 이념을 지닌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표상능력을 바탕으로 지식과 진리를 정초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정초주의적 입장이다. 로티는 이러한 표상주의, 정초주의적 이념이 장구한 역사를 지닌 전통 철학적 사조에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로티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앞서의 것들을 거부하며 반표상주의, 반정초주의를 주창한다. 그 주장의 기초에는 언어에 관한 그만의 독특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근거는 언어의 우연성과, 표상주의 또는 정초주의의 실천적 비효율성,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공약불가능성이다. 이들 근거에는 대체로 인간 공통된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이라는 반표상주의적 관념이 관통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 근거를 비판하며 역으로 전통철학의 이념의 유용성을 다시 끌어오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철학이 실천적이고 현대적 맥락에서 일반에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전통철학적 사조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할뿐더러 신실용주의적 사조만으로도 부족함이 있다. 즉 전통철학은 생각에 매몰되어 지극히 사변적이고 현학적 논제만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실천과 현실에의 이행 가능성이 지극히 낮으며, 신실용주의 철학은 지극히 개방적인 반면 정초주의적인 사고의 강력한 실천력을 간과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게 된다. 이념, 이론, 학문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현실 속에 쓸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념이 현실적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력을 지녀야 한다. 실천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철학도 그러하고 여타 학문도 그러하듯 정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야한다. 정치란 당파성과도 같다. 당파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사조, 패러다임, 공유하는 토대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 공유의 토대는 바로 정초적 경향을 통해 도출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런 흐름에서 두 이념통합에 대한 필연성의 근거로 이분법적 사고의 필연성, 지식의 두 층위, 그리고 직관의 정당화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 주요어 : 실용주의, 신실용주의, 프래그머티즘, 리처드 로티, 정초주의, 반정초주의

 

1. 서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적 사람들이 지니는 철학에 대한 통상적 생각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개인의 삶, 국가, 공동체, 세계에 관련된 진리를 파악하거나, 또는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한 문제에 봉착했을때 그것을 해결해줄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구원자의 역할 등이 그것이다. 최소한 철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탐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며 그 중 일부는 철학을 구원자나 영도체(領導體)로서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한 듯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이나 철학자에게 그러한 기대감이나 의존을 나타내지 않는다. 즉 현대 공동체가 지닌 중요한 문제나 개개인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최소한 그 실마리를 제공해줄 능력을 철학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우리들을 대개 사실, 기술, 과학적 사고로부터 나온 지식이나, 그런 지식에서 도출된 상식을 판단기준으로 지닌 채 살고 있으며 그런 판단기준의 유용성, 합리성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부터 존재해온 체계의 철학, 예를 들어 플라톤의 천상계,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태, 현실태, 형이상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神), 칸트의 내면성, 선(善)의지와 같은 것들과 또 현재 철학 내에서 생산되는 몇몇의 논의들에 대해 현실에의 삶과의 큰 괴리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그저 현학적인 논의들을 만드는데 그치는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설명하자면 철학이 절대적인 영도체인 듯 추종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철학이 아예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의미에서 앞서 말한 일반인들 중 중도적 입장 정도일 것이다. 다만 평소 은근히 느끼고 있던 행복과 좋음의 기준, 올바름의 문제, 정의와 부정의의 문제, 갈등이나 사랑 등 삶의 처세술에 문제 등에 대해 최소한 한 실마리 정도는 줄만한 것으로 기대했으며 말미에 이르러서는 이에 대해 선고(宣告)받거나 완벽히 정초(定礎)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과 확신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답이나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게 된 순간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실의 삶에 있어서 너무나 무기력하다는 회의감을 느꼈고 그로부터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회의감, 원망, 그리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반(反)철학적 감정이 나왔다.


 이처럼 혹자는 본인과 같이 철학에 입문한 후 철학에 대해 회의감이나 무가치함, 그저 사변적이고 현학적, 관념적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고생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철학에 대한 이러한 문제는 철학자체의 타고난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철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철학은 현학적이거나 사변적일 수밖에 없다. 철학적 논의의 속성이 원래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흘러온 철학의 주류를 차지한 특정 경향은 아마 플라톤이나 그 전후를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어온 듯한데, 그래서 철학이 무가치하다거나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채 관념적, 현학적 논의만 한다는 말도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하는 논의가 우리의 삶과 전혀 상관없다고 결론짓기에는 인류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해온 학문에게 상당히 무례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의 어느 지점에서 삶과 현실에의 유용성을 찾을 수 있을까?


 본인은 근현대에 들어서서야 드디어 철학이라는 학문이 사변이나 관념, 현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유용성의 측면에까지 발전 및 발디딤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 돋음의 시작점이 바로 실용주의(pragmatism)인 것이다. 즉 이제는 단순히 현학적인 논제들을 양산하는 죽은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철학에 대한 회의감을 극복하고 실제 삶과 관련한 진리나 지식을 구축하는 방법론이나 학문적 태도로서, 더 나아가 개인과 공동체가 직면한 사적·공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인문학적 도구이자 철학적 방법론으로서의 철학적 실용주의야말로 철학이라는 학문의 새로운 진보적 변곡점, 삶이나 현실과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 진실로 진보적, 실천적이고 실용철학적이기 위해서는 실용주의가 그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의감의 원흉이기도 했던 주류철학의 사변적, 형이상학적 논의를 구성하는 아주 기저의 이데올로기 내지 원리가 그것이다. 이것을 리처드 로티를 비롯한 실용주의철학자들은 '표상주의', 또는 '정초주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이 표상주의, 정초주의적 원리는 제거되어야 하는 최대의 적이다. 하지만 지식, 학문적으로 정초하고자 하는 태도가 없이는 진보나 실천적이기는커녕 혼란만이 있을 것이다. 실용주의자들의 말마따나 고정불변하며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지식체계나 이론, 즉 진리가 없다고 한다면 세상에 그것만큼 불안하고 살떨리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한 상태는 진실로 견딜 수 없는 상태이며 본인은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불안해 차마 견딜 수 없음을 느낀다. 마치 재난이나 재앙, 대 혼돈 속에 들어서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어제 동녘하늘에서 해가 떠 서쪽으로 졌고 오늘도 그러한 것처럼 그러한 불안을 뒤로한 채 세상은 여전히 잘 움직이고 있다. 여전히 볼펜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버스는 연료의 연소와 힘과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잘 굴러가고 있다. 즉 진리의 존재를 비판하는 실용주의적 태도도 현실의 반영에는 일면적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인이 이 논문을 통해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철학이 진실로 실용적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실용주의의 반정초주의적인 태도와 주류철학체계의 정초주의적 이념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우선 가장 최신의 실용주의 철학자이자 서구철학사를 대대적으로 비판하며 새로운 형태의 실용주의인 신실용주의를 만들었으며, 또 그에 기반하여 진리론, 정치철학 등을 전개한 현대 영미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의 이론을 중심으로 논문을 전개할 것이다. 본론에서는 로티의 진리론의 개요를 자세히 탐구한 후 로티의 진리론이라 할 수 있는 반정초주의가 정당화되는 주요한 세 가지의 근거를 서술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실용주의의 반대격이라 할 수 있는 주류철학체계의 정초주의적 이념, 그리고 로티 철학의 주요한 세가지 근거를 함께 비판하면서 정초주의와 반정초주의를 통합하는 과정을 시도할 것이다. 통합의 근거로 본인은 이분법적 사고의 필연성, 지식에 두 층위가 있음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먼저 본론의 긴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실용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본문의 서두에서 간단히 밝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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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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