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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예수

저자
정찬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07-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상급. 010-8893-8819. www.obestboo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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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의 『빌라도의 예수』 감상문
1 책 내용 요약.
소설은 10개의 파트로 나뉘어 구성되어져 있다. 나는 편의상 소설의 줄거리를 각 파트별로 분류, 연결하여 설명하겠다.

제 1장인 필라투스산은 작가가 소설 빌라도의 예수를 쓰게 된 배경을 말한다. 여행사를 경영하는 친구의 제의로 유럽 관광을 가게 된 것이다. 소설의 ‘이야깃 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작가 정찬은 이번 관광에 대해 이내 실망했다고 말한다. 빡빡하게 정해져 있는 스케줄로 인해 시간에 쫓겨 다녔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중에 취리히의 알프스 영봉 필라투스 산 등정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작가는 소설을 쓸 아이디어거리를 생각해 낸다. 바로 빌라도다. 빌라도가 그 산에 은거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제 2장,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여기서부터 빌라도의 예수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의 식민지로, 유대지역 식민지 총독은 그라투스라는 사람이다. 로마의 황제는 티베리우스다. 로마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세야누스라는 사람이다. 세야누스는 빌라도를 불러들인다. 후임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기 위해서다. 세야누스는 여러 인종들중 유대인이 가장 특이하다고 한다. 복속된 상태로 살면서도 그들만의 독자적인 형태를 유지한 채 산다는 것이다. 즉 로마로의 완전한 흡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즈음 유대 북부지방 갈릴리에서는 청년 예수가 살고 있었다. 예수는 목수고 예수의 아버지도 목수다. 어머니는 마리아다. 빌라도는 전직 유대 총독 안니우스 푸루스에게 조언을 듣고자 만난다. 거기서 그들은 비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그 즈음, 예수와 마리아는 유월절날을 위해 예수살렘으로 간다. 그들은 갈릴리인으로 예루살렘 사람들이 멸시를 한다. 그래도 그들은 갔다. 그들은 제물로 바칠 양을 사야하는데 사지 못한다. 왜냐면 장사꾼들이 그들을 갈릴리인이라 하며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인의 조언을 듣고 성전 안에서 재물을 사기로 한다. 그러나 성전 안은 생각과는 달리 장사꾼들이 난립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파는 재물은 바깥에서 파는 것보다 수배에서 수십배나 비싸게 거래되었다.

제 3장, 봉인된 진실편에서 빌라도는 드디어 유대로 향한다. 한 8월 즈음였다고 한다. 여기서 빌라도는 자신의 아내 프로쿨라에 대한 소개를 한다. 빌라도는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파로스에 가서 또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무슨 이시스라는 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곳에서 이집트의 총독 갈렐리우스가 빌라도를 직접 맞이한다. 그 후 빌라도는 아내랑 같이 이집트 관광을 한다. 거기서 그는 무세이온이라는 곳을 방문한다. 그곳은 일종의 학술연구소다. 거기서 중요한 인물을 만나는데 그 인물은 도서관 사서이자 지리학자인 멜레스다. 빌라도는 그와 달이며, 고대인들이 생각한 지구의 형상,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이론,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둘레 측정, 의학, 신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뒤 빌라도는 오시리스 신전을 간다. 거기서 그는 사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대표적으로 무슨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다. 이집트를 떠나기 전 그는 유대인 거주지역의 유명한 철학자 필론을 만나러 간다. 빌라도는 계속해서 형이상학적 물음들을 제기한다. 또 그런 이야기를 즐겨 찾았다. 필론과 빌라도는 로고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로고스는 일종의 신과의 만남의 통로라고 한다. 나는 이를 모든 종교행위는 그 이름과 방식만 다를 뿐 결국에는 한 신을, 즉 하나의 점, 즉 진리를 만나게 된다는, 뭐 그런 뜻으로 이해했다. 그의 말은 필론을 만나기 전에 이야기했던 오시리스 예배자 입문 과정과 흡사했다. 필론에 따르면 오시리스도 로고스다. 즉 신을 만나는 방법인 것이다. 여기서 그는 또 중요한 인물을 만난다. 바로 사울이다. 사울은 뒤에 나오는 예수의 사상을 따르게 된다.

제 4장, 카이사리아편에서 빌라도는 유대의 행정수도이자 지중해 항구도시인 카이사리아에 도착한다. 카이사리아는 예루살렘 북서 103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있다. 빌라도가 거처하는 곳은 헤로데 궁이다. 그곳에서 그라투스는 자신의 퇴임을 기뻐하며 빌라도를 극진히 맞이한다. 그라투스는 유대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이 유대인들이 가진 ‘꿈’이라고 한다. 이제 완전히 유대총독으로 정착한 빌라도는 총독 보좌관으로 이루어진 총독 자문단을 만나는데 거기서 메테리우스라는 사람을 주목하게 된다. 아마 이 사람도 소설전개상의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유대에 있는 여러 수많은 파가 거론된다. 그리고 가야파를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을 만난다.

제 5장, 예루살렘. 여기서는 빌라도가 총독이 된 이후 처음으로 맞는 큰 위기가 닥친다. 하지만 다행히 빌라도는 물리적 충돌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문제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안토니오 요새였다. 그곳에 로마군대가 군기를 메달아 놓았는데, 그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일종의 우상숭배로서 받아들여져, 신성모독이 되었던 것이다. 유대 유력자들은 항의단을 이끌고 카이사리아로 몰려간다. 그들은 몇일간 계속해서 시위를 벌인다. 빌라도는 적당히 있으면 해산할 것으로 생각하나 그렇지 않았다. 결국에 빌라도는 군병력을 동원해 그들을 해산하고자 한다. 빌라도는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남은 사람들에 대한 처형을 집행하려고 하나 도중에 변심하여 빌라도는 그들에게 항복한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 있던 병력을 교체하기로 언약한다. 그 일이 있은 날 저녁, 빌라도는 메테리우스를 찾아간다. 그 둘은 종교와 성경,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은 성서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서가 권력과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라 꾸며지고, 조작,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즉, 창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메테리우스와 사울이 만나게 된 이야기도 한다.

제 6장, 유혈사태. 카이사리아에서 일이 있은 후, 비라도는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가장 중요한 방문 이유는 예루살렘의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다가오는 유월절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그 문제가 더 심각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루살렘 성전에 쌓여있는 어마어마한 돈을 이용해 예루살렘 멀리에 있는 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로를 건설한다. 물론 성전에 있는 돈을 썼다는 사실은, 여러 유대당원들을 포함하여, 되도록 숨기려고 했다. 그러나 수로가 완성되는 날 누군가에 의해 그 사실이 유출된다. 그 유출은 헤로데측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하야 유대에 폭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튼, 그 시위는 무력진압된다. 그리고 또다른 사건에 의해 수로사건은 묻혀버린다.

제 7장, 광야 편과 8장, 사람의 아들편에서 드디어 예수가 나타난다. 예수는, 새로은 신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한의 밑에서 활동을 한다. 기존에 부패한 신앙적 근거를 버리고 개혁을 하려는 것이다. 예루살렘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려는 것이다. 또한 이들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래서 빌라도와 그 주변인들, 특히 안티파스라는 인물은 긴장을 한다. 안티파스는 기회를 보다가 요한을 체포한다. 그러자 2인자였던 예수가 득세한다. 안티파스일당과 빌라도일당은 예수를 더 경계한다. 예수는 엄청난 속도로 떠돌아다닌다. 그래서 체포하기도 쉽지가 않고, 그를 지지하는 민중들도 엄청나게 많아진다. 그래서 함부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빌라도의 지원자였던 세야누스가 더욱더 득세하게 된다. 로마로부터 지원을 받아낼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제 9장, 나무십자가편에서 예수는 유월절 전날에 체포되어 죽는 것으로 장이 끝난다. 제 10장, 세월편에서는 빌라도를 한 노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즈음은 예수가 죽고난 후 신흥 종파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예수가 신격화된 것이다. 그 배후에는 앞에서 언급된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빌라도의 아내마저 그 신흥종파에 전염되어 있었다. 빌라도는 어느 날 벌어진 유혈사태에 대해, 학살죄라는 명목으로 로마로부터 귀환명령을 받는다. 당시는 이미 빌라도의 후원자였던 세야누스가 로마황제의 계략에 의해 없어지고 난 후였다. 이는 빌라도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다. 그렇게 로마로 항해하고, 필라투스 산으로 은신함으로써 소설은 끝난다.

나는 믿음 또는 신앙 또는 1:1의 속성(기도)을 통해 다가오는 신과 종교에 대해서 그것의 사회적 유용성은 인정하되 그들이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사람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모든 것’들은 논리와 이성을 통한 지식과 탐구를 통해 알아가야 한다. 하지만 신과 종교라는 것은 그러한 속성을 잃어버린, 또는 거부한 부류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어떠한 활동도 나는, 다른 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가치(低價値)한 일이라고 본다.

책은 잘 읽었다. 단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작가가 알고 있는 지식적 배경과, 작가의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력이 서로 혼합되어 만들어진 소설 그 자체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이라는 매체를 빌렸을 뿐,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추론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책인지를 말이다. 때문에 나는 잘 읽었지만, 그저 잘 읽었을 뿐이지 여기서 나는 종교와 역사와 성경과, 그리고 그것들의 사실과 이 소설과는 그 무엇을 연관시킬 수 없었다. 그럴 뿐더러 저 멀리 이국땅에서 벌어진 일들, 로마와 이스라엘 지역의 역사와 사건에 관해서 나는 전혀 알고자 하지 않으며 알지도 못하며 알 필요성도 못 느낀다. 내게 다가오는 이러한 의미속성은 하나님과 예수를 중심사상으로 한 그 종교와, 그것의 사상이 숨겨져 있는 성경도 같은 의미로서 다가온다.

이 책 빌라도의 예수를 읽고 난 뒤 내가 느꼈던 것은 이 책은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루살렘지역의 정치적 복잡성을 설명하는데 더 많은 잉크를 소비했다. 작가는 아마도 나름대로 중립과 보편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쓴 것 같다. 유럽의 여러, 많은 신화들을 채용하면서, 또 기존에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성경제작에서의 성격과 예수와 이스라엘에 대한 이미지를 변화시켜 주었다. 그중 나에게 가장 새롭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성경에 대한 이미지다. 그것은 여태까지 신성한, 고귀한 이미지만을 가진 채 배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애초에 성경의, 감히 의문을 품을 수 없어야 하는, 그러한 신비주의적 이미지가 버려졌더라면, 지금의 ‘십자가사상’은 이처럼 크게 사회적 패권을 움켜쥐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에서 본 성경의 이미지는 정치적 상황과 힘(力)에 따라, 그리고 서로의 이익에 따라 조작된 것이었다.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아니면 소설적 요소인지를 떠나서 말이다. 그것들 중에 단 1할이라도 사실인 점이 있든, 아니면 모두가 밝혀지지 않은 추측이든지간에, 성경이라는 소설은 윤리서, 철학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신론자의 눈으로 볼 때 조작여부를 떠나 그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본 것은 ‘인간예수’다. 한번 죽으면 무無로서 비존재하게 되는 한 ‘생명체’인 것이다. 예수는 부활도 없었다. 그저 죽었을 뿐이다. 죽은 후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소문) 신화화된 것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누구도 예외없는, 누구 말대로의 ‘무(無)로의 기투(企投)’인 것이다. 나는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라는 인물은 사실 한명의 사상가, 철학자로서 본다. 당시 자본에, 권력에,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기 위한 예수의 모습은 마치 위대한 혁명가와도 같았다. 마치 공자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서. 하지만 예수라는 인물은 운 좋게도, 엄청난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깊고 깊게, 아름답게 포장되어 권력화 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내게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바로 로고스다. 길은 달라도 목적은 하나로써 보는 그런 로고스. 이로써 나는 소설 「빌라도의 예수」에 대한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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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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