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4.29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편
  2. 2013.04.29 그리스도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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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책 또는 영상물을 보고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라고 하면 나는 항상 적잖이 당황을 한다. 도대체 내가 읽고 생각한것을 어떻게 글로 써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어떤 느낌을 써야하는지, 아니면 그 감상한 것에대한 정보 내지 요약을 해야하는것일까? 많이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이중에도 특히 힘든 부분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는것인데, 그중에서도 내 관심사에 포함이 되지 않거나 흥미유발이 되지 않는 내용, 나의 생각과 반대되는 주장이나, 종교와 도덕, 그리고 역사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접할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생각하야 한다는것에 어이가 없고 회의감마저 들기도 한다. 자 그럼 지방방송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번 장은 저번에 읽은 3장에 이어 바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에 대한 내용이다. 이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기독교에대해 절대적으로, 맹목적으로 찬양하는듯한 인상이 심어져있다. 철학과 학생인 나로서는 기독교뿐만이 아닌 여타 종교에서 요구하는 맹목적인 믿음을 통한 진리추구는 절대 부정을 하는 사람이다. 진리란 인간이 논리적이며 비판적으로, 오로지 끝없는 탐구를 통해 추구하며 얻어질수 있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이 그리스도교와 문화라는 책을 감상함에 있어서 비판적이고자 한다.


 물질과 과학이 인간의 삶과 의미를 규정하는 유일무이한 척도라면, 왜 종교와 정신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와 예술은 인류의 역사오 함께 존속해오고 있난가? 그것은 인간이 물질적인 요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는 물질을 초월하고 시간을 넘어서는 종교적인 가치, 정신적인 진리르 떠나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은 꼭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종교와 신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만 하는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을 끌어들여 종교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것 보다는 철학적인 반성과 비판을 통한 진리 추구야말로 진정 인간이  가져야할 진리 탐구적 자세라 생각하고 이것이 더욱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 선과 악, 사후 세계에 대한 논의는 종교가 아닌 철학에서 다루는것이 더 현명하고 어울린다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과이 인격적인 생명의 관계와 신앙의 빛에서 주려고 시도한다. 그리스도교는 유신론적인 신앙을 지닌 다른 종교와도 뚜렷이 구별되는것이 삼위일체 교의라는데 이것은 또한 내가 가장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부분중의 하나이다. 또한 이것이 내가 성실한 기독교인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며 기독교를 등진 이유이기도 하다.


  책 105쪽의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의 성격을 보자.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그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를 펴현하는 총체적 개념이라고 한다. 즉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과연 절대적인 믿음이 말이 되냐는것이다.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하기 이전에,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썼는지도 모를, 혹은 소설일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성경에서의 이솝우화가 아닌) 지금 현재 현생에서의 절대적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 내지 구원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게 순서가 아닌가 싶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어느 평범한날 A가 길을 가고있는데 생전 처음보는 한 남자가 자신에게 백만원을 하루동안 맏겨두면 열흘뒤에 천만원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과연 그 자리에서 흥쾌히 승낙할 사람은 얼마나 될것 같은가? 즉, 하나님의 정체를 만 천하 만 인류에 밝히고 모든 대중매체와 인간과 대통령과 거렁뱅이들이 볼수 있고,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와 힘을 증명하고 확신시키는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조자시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하나님이라는 존재도 (만약 있다면) 무가 아닌 유라는 것에서부터 탄생한 것이라 말하는게 옳은것이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과 질적으로 다른 초월적인 절대자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인가? 눈과 귀가 먼채, 맹목적으로 신을 추구하고 따르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 아닌이상,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한 나머지 둘러대는 허울 좋은 핑계거리로만 보일 뿐이다. 책에서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언어와 경험, 의식의 세계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하였다고 말할수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왜 인간의모든 것을 초월하였다고 해서 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 역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 내지 증명 내지 밝혀내지 못한 나머지 신학자들이 일반인들에게 둘러대는 술수에 불과한것이라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이 장을 읽고난 나의 감정과 비판적 생각, 그리고 공감가는 부분에 대해 더 말하고 싶으나 (앵무새가 똑같은 말을 되씹는것과) 같이 위에서 내가 말했던것과 같은 내용이 계속 되풀이될듯하여, 또는 마치 비난적인 감상문이 되버릴것 같아 여기서 이만 줄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다소 비판적이면서도 또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진리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4장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앙적 성격 또한 의문과 허점 투성이로 보인다. 아무리 신앙이고 종교이고 신적인 문제라고 해도, (형이상학적 문제) 주장이 있으면 실존적으로 증명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 근거로서 성경을 들면 그것 역시 절대적인 오류를 범하는 셈이다. 성경이라는 책 또한 인간의 손에 의해서 씌여졌기 때문이다. 결코 성경이 진리이고 종교적인 근거가 돼서는 안될 것이며 성경의 말씀을 벗어난 탐구적인 근거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막상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으로써 이 책을 읽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감상평을 쓰고나니 다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혹 이러한 내 사상으로 인해 낮은 평가를 받는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말이다. 하지만 나는 후회는 없다. 감상문에 대해 0점을 맞더라도 내 소신껏 내 생각을 천명했으면 그것뿐인것이다. 비록 내 생각이 틀렸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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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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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역사편을 공부하고 나니 이 장에대해 무엇을 써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늘 그랬지만 어느 한 책을 읽으면 읽은것이지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과 느낀점을 쓰기란 어려울 뿐이다. 이 장에서는 제목 그대로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교는처음은 그 당시 의 세계적인 중시밎라고 볼 수 없는 갈릴리와 유다 땅에서 시작되어서 점점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역사적 흔적을 보면 기독교라는 종교 역시 그 시대의 여러 수많은 종교들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문화적, 시대적 상황과 종교적 교리가 부합되면서 기독교는 살아남게 되고 여타 다른 종교들은 기독교의 위세에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듯이 그리스도교는 변두리에서 발생했다가 사라진 허다한 종교들중의 하나에서 로마의 정치적 위상에 힘입어 서양의 종교, 세계의 종교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와 그리스도교의 역사 또한 항상 이상적인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먼지와 더러운 때에도 덮여있고 내외적으로 저해되고 병을 앓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도 결코 완벽한 진리가 될 수는 없는듯 하다. 글쓴이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봄으로써 교회는 완전한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끊임엇는 개혁을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잠정 상태 속에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필자 역시 완벽함을 부정한것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란것은 과연 언제 이루어질것이란 말인가? 성경에 써있는 환상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알수 있는걸일까? 그 재림을 위해 기도하다 죽어버린 사람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헛되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원시 그리스도교는 아마 성경에의 초기 그리스도적 시대인듯 하다. 그리고 바울 베드로 사도의 활동, 그리고 그들의 사망과 더블어 속사도 시대가 있었다. 여기서는 별달리 감상문에 쓸만한 거리가 없다. 그냥 그렇구나 할뿐이지 어떻게 이런 부분을 가지고 감상문을 써야할까 정말 망설여졌다. 그 다음에는 초기 가톨릭 교회의 역사며 가톨릭에 대한 박해의 역사가 나와있다. 내가 기독교에 대해서 많이 실망하고 회의주의적임에 빠진것도 이 가톨릭이 박해를 받은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교는 자기의 신을 단순한 신이 아니라 유일한 참된 신, 세계 구원자로 이해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신이란것이 존재한다면, 어찌 기독교의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현재에도 찬양받는 하느님을 세상의 구원자라 말할수 있는걸까? 인간은 신이란것의 존재도 증명할 수 없을뿐더러, 과학이 증명하지 못한 불가사의한 일들 내지 은혜를 받았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모두 신의 위대한 일로 치부해두고 위안삼는다. 너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구원자 하나님은 왜 창조물인 인간을 고통과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이상적 유토피아로 인도해주시지 않는것인가세상엔 아직도 부정의의 전쟁이 일어나 부정의한 살인과 부당한 고통과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또 너무 풍요로운 나머지 비만이라는 질병이 사회적 문제거리로 떠오르는 나라가 있는반면, 너무 빈곤한 나머지 질병과 기근, 그리고 굶주림이 당연하듯이 만연한 나라도 있다. 그렇다면 교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말이다. 하지만 하느님을 알고 찬양하며 믿는 인간만이 구원받을수 있다면 그 얼마나 차별적인 상상일까 생각해본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박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인들은 기존의 로마 종교또한 거부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시대적으로 볼때 옳지 못한 행동이며 박해를 당했음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도 역시 정치나 이해관계에 따라 갈라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하고 또 등용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듯하다. 쭉 읽다보니까 교회에 위험한 것은 철학자들의 공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철학자들의 공격을 논리적으로 받아내고 자신들의 진리를 지켜내며, 만약 자신들의 진리가 철학자들의 반박을 받아낼만큼 견고하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하느님을 진리로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순순히 자신들의 신과 진리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나, 현실을 접해보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은듯하다. 이들은 자기가 속한 기독교집단의 권위에 대한 믿음이 어찌나 단단한지, 다른 시대나 국가, 다른 집단이나 교회, 계급, 그리고 정당 등이 자기 집단과 정반대로 생각해왔고 심지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귀속감을 느끼게 되는 집단이 하찮은 사건으로 인해 바뀔수 있다는 사실(이를테면 런던에서 어떤 사람을 교회에 나가도록 하는 이유가 베이징에서는 불교나 유교 신자가 되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과거가 현재에 의해 부정되듯이 현재는 미래에 의해 번복이된다. 그래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각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 폐기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진리인 하느님만을 고집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까지 일종의 전도라는 방식으로 끌어들이게된다. 참으로 거만하고 비 논리적이지 않을수 없다. 이런점에서 볼때 고대의 철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은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진리를 향해 한걸음 다가가는 탐구의 과정이라 평가할 수 있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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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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