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능주의, 갈등론, 해석학에 대한 나의 견해
2. 평준화와 비평준화에 대한 나의 견해
3. 상대평가, 절대평가, 그에 대한 입장, 그리고 학업성취도의 연관성.
4. 교육과 계층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
5. 미래직업세계와 관련한 교육관
1. 기능주의, 갈등론, 해석학.
나는 기능론과 갈등론과 해석학의 입장을 모두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중간적 입장이다. 그래서 학교교육에 있어서는, 해석학적인 유연성과 갈등론적인 비판의식을 동시에 겸비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의 최종적인 목표는 완성된 사회다. 100년이 걸리든 1000년이 걸리든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논리컴퓨터와 같은 견고한, 유토피아적 사회와 그런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회속에서 인간은 기능론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교육의 목표는 기능론이다. 자식교육에 있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교육할 것이다.
2. 평준화와 비평준화
나는 평준화를 지지한다.
3. 상대평가, 절대평가에 대한 입장. 그리고 학업성취도.
모두를 지지한다. 즉 둘 다 시행해야 한다. 상대평가를 실시하면 우열을 가려 조금 더 경쟁적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하지만 폐해가 있다. 이 폐해를 보충하기 위해 절대평가의 결과 또한 함께 공개해야 한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사이에는 중간이 없다. 때문에 함께 공존해야 한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만 평가하거나 결정하려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만 평가하거나 결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성에서 부족할때는 절대성에서 치켜세우면 된다. 추가하여 균형점을 찾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방식으로 학업성취도 역시 향상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 교육과 계층간의 관계
갈등론적이나 결국에는 바람직한 갈등론의 과정속에 기능론적, 해석학적 완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기능주의, 갈등론, 해석학적 입장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다. 인간은 기능론적이다. 하지만 기능론속에서 폐해가 발생한다. 그 기능론적 폐해와 병해를 깨달음을 얻은것이 갈등론이다. 갈등론과 해석학은 방법이나 수단적으로 공존할 수 있을것 같다. 해석학적 수단으로 무장한 갈등론은 결과적으로 폐해, 병해가 제거된 깨끗한 기능론적 사회로 향하고자 한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교육은 계층상승에 비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가방 끈 늘이기"식 교육증가는 아닌것 같다. 교육이 양적으로 부족하더라도 높은 질의 교육
5. 미래직업세계와 관련한 교육관- 인문학과 자연과학
인문학보다는 자연과학이 주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끝은 아사(餓死)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 생각이 완성된 결말은 아니지만, 스스로 인문학공부를 하며 느낀 것이다. 인문학의 생산물은 관념속에 있을 뿐 그것을 외재적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인문학 외적인 자연과학과 기술이 필요하다. 학교교육이나 자녀교육 역시 이에 따라야한다.
본인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유아기때부터 기술, 도구, 자연과학에 친숙한 환경을 조성하여 흥미를 유도할 것이다. 부모 스스로가 이에 익숙해지고 준 전문가가 되거나, 부모의 모습에 흥미를 가지도록 본보기로서 공부하고 학업할 것이다. 나 스스로도 답이 없는 학문, 인문학을 공부하기에 자녀에게 그 답답함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가 않다. 지식과 진리는 오차없이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최소한 그런 결론을 지향해야 한다. 국어, 사회, 문학, 음악, 예술 등의 것은 적당히만 하면 된다. 물론 그 적당히의 기준도 논의거리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논외로 한다. 하여 철저히 기계적이고 수학적 연산과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인간을 만드는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최종적인 이상향적 인간상은 공리주의성격 인간이다. 하나 보론으로 첨부하자면 기존의 공리주의적 이론에 '지속가능한'이라는 말을 덧붙이고싶다. 수학이 자연과학에 있어서의 진리라면 공리주의는 인문학적 인간상에 있어서의 진리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인문학은 의미를 찾는 학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의미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인식이란, 사전적 정의로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 또는 '인지' 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사람은 인문학의 영역에서 이런 사전적 인식의 영역에서 벗어나 조금 더 높이 도약하고자 했다. 이 현상은 혼란과 질서파괴, 무질서의 인정을 가져왔다. 인문학의 결과 데카르트, 칸트와 같은 해괴한 희대의 망상꾼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론 그리고 > 글 3. 교육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불평등 (0) | 2019.06.08 |
---|---|
칸트 윤리학 (0) | 2019.06.08 |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이론과 윤리 (0) | 2017.12.28 |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 (0) | 2017.12.19 |
정의주의, 문화인류학, 다원주의, 윤리적 다원주의의 이해 (0) | 2013.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