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육을 말하다
서로주체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김상봉 교수가 제시하는 인류문명과 현재 교육환경의 폐해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개념이다. 그가 바라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은(자유주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만든 제도, 무한경쟁의 시대,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너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시스템, 진정한 만남이 상실된 자기실현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이 사상의 핵심은 '참된 만남을 통한 자유'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사회현상과 교육의 문제점들, 특히 교육에 있어서 그것이 '만남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데 있다고 그는 말한다.
기존의 자유는 스스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자유이나, 그것에 너와 나와의 만남은 빠져있으며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 돈만 있으면 된다.' 또는 '그런 목적을 위한' 만남이 주류이다. 그런 자유를 바탕으로 한 자기실현은('나'가 되어가는 과정) 그가 말하는 인간의 궁극적 욕망인 '참된 만남', 즉 '사랑'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 삶에서 '나'가 되는 과정에는 '너'가 맞물려 있고 또 생명, 자연 전체와의 만남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으며 기존의 것으로는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욕망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참된 만남, 사랑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는 세가지 필요를 제시했는데 그 첫째는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태도이며, 두 번째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능동적으로 함께 하는 태도이며, 세 번째는 같이 먹는 것, 단순히 잘 먹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너와 나누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 세가지 필요와, 참된 만남이라는 개념의 바탕에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은 사랑이며, 그러므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일수 없다고 전제한다.
이제 그가 생각하는 기존의 교육과 대안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말한 기존의 시스템으로 인해 작금의 교육은 타율성, 탐욕, 경쟁, 공포, 낙오, 차별, 진정한 목적의 빈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품행이 방정(方正)한 노예화'로 나타난다. 이러한 잘못된 과거로부터 세습되어온 이러한 기존의 '괴물'을 쓰러뜨리고 서로주체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교육의 틀을 세우기 위해서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교사 스스로의 성찰을 하면서(자기반성) 학생들과 함께 고통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감하고, 나누며 능동적으로 함께 하는 과정(바로 참된 만남, 소통을 통한 연대)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 극복은 '내부로부터의 망명', 의도적인 '낙오자되기'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김상봉 교수는 기존의 틀은 지배계급의 속물성, 경제제일주의의 폐해적 이데올로기이며, 그 영향으로 교사의 본질이 흐트러져있음을(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가치기준으로의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는 상황), 학교와 교육의 목적이 흐트러졌음을 지적하며(참된 만남, 사랑, 즉 인간의 참된 궁극적 목적을 향하지 않음), 교사는 그 가운데서 성찰(자기반성)을 통해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하여 그 방법으로 '서로주체성'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종합하여 보건대 그의 생각 속에는 이 '교육'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회현상의 폐해적 모습과 사회현상의 이상(異常)의 가장 밑바닥에 원인으로써 존재하며 그러므로 교육과 교사를 중요한 해결의 주체로 본 것 같다. 본인 역시 우리 삶에서 겪는 사회, 정치, 경제 등에서 수반되는 대립, 갈등 등의 다양한 문제 들의 가장 깊은 바닥에는 교육이 있으며, 그러므로 그 해결책 역시 교육에 있다고 보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012년 3월, 을씨년스럽게 비내리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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