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의 거짓말 (2000)
Jakob the Liar
- 감독
- 피터 카소비츠
- 출연
- 로빈 윌리엄스, 한나 테일러 고든, 밥 발라반, 마이클 제터, 알란 아킨
- 정보
- 전쟁, 코미디 | 프랑스, 헝가리, 미국 | 114 분 | 200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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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져가면 찾아서 죽여버립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 : 10점만점에 8점(적극추천)
원작에 대한 평가 : 10점만점에 7점(별로)
이 영화는 특별히 감상평이라고 쓸만한'거리'가 없다. 하지만 애써서 끄집어내어 보았다. 먼저 원작을 읽어보고 그 다음 영화를 시청했다. 굳이 줄거리를 쓰진 않겠다. 재미없어지니까. 읽어보면 알게될것이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
- 영화는 감독의 시각에 따라서 시점, 인물의 성격, 내용등이 달라질 수 있다.
영화에서의 처음 시작과 끝이 원작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 예로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리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리나를 등장하게 하는데, 원작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원작에서는 먼저 글을 읽는데 있어서 알아야할 기본적인 뒷배경이 될만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다음 중간중간에 시점이 과거로 바뀌어 등장인물이나 여태껏 읽혀지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드러낸다. 또 야콥이 통금령을 어기게 되어 붙잡히게 되는 과정도 다소 다르다. 영화에서는 소식을 듣기위해, 바람에 날아가는 신문지를 따라가다가 붙잡히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원작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붙잡히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가벼운 웃음거리나 해학적인 표현은 없었다. 붙잡힌 이후에도 영화와 소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통금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붙잡힌 야콥은 원작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말도 잘하고 자신의 생각과, 처한 상황을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말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독일군에게는 다소 가소롭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원작에서의 야콥의 성격은 다소 어리숙하다고 느껴졌다. 또 원작에서 야콥의 라디오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던 교수도 영화에서는 야콥의 활동에 대해 이해를 해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성격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부분도 많았는데, 야콥 뿐만 아니라 야콥 주변의 등장인물도 역시 그러했다. 대표적으로 미샤의 행동을 들 수 있다.: 야콥이 미샤에게 사실 자신에게는 라디오가 없었다, 너를 위험한 행동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꾸민 일이다, 라고 사실을 말했을때 미샤는 오히려 그 말을 거짓말로 믿으며, 야콥의 라디오 보유설을 게토내에 퍼뜨리게 된다. 상당히 어리숙한 미샤이다.
내용면에서 볼때 비교되는 점은, 영화라는 매체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원작의 많은 내용이 생략이 된다는 것이다. 또 원작에서는 없었던 이야기가 감독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예로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저항조직이 결성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교수의 죽음도, 방식은 같으나 다르게 표현되며, 같은 장면에서 나온, 게토를 관할하는 독일장군 역시 원작에서는 심장병으로 죽게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심장병으로 죽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그 장군이 직접 야콥을 총살하게 된다. 야콥이 총살을 당하는 장면은 원작을 보고난 후 영화를 봤을 때 느껴진 가장 큰 반전이다. 영화의 결말에 가서는 야콥의 꾸며낸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러시아군에게 구출되며 끝나게된다. 이 장면은 아마 예측가능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남겨놓고 끝났던 원작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킨듯 했다. 이러한 내용적인 면에서의 변화는 아마도 영화감독이 원작을 감상하고 난 후의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토대로 해서 재해석했기 때문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차이점으로 인한 내용의 변화
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원작과 영화간의 차이점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감독 나름대로의 재해석도 있을 수 있겠다. 결말부같은 경우는 확실히 영화감독의 해석이 들어간 부분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전달매체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소설같은 경우는 분량에 있어서 대체적으로 자유롭다. 능동적이다. 그러나 영화같은 경우는 상영시간이라는 제한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원작에 대해 변형을 가해야 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작방식이나 비용면등과 같은 부분에서도 차이가 난다.
전달매체의 차이로 인해 원작과 영화간의 변화로 시점을 말할수도 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가장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변화는 바로 시점의 변화였다. 원작과 영화 모두 주인공은 분명 야콥이다. 하지만 그 야콥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는 다르다. 원작에서는, 밝혀지진 않았지만, 같은 게토 내에 있는 어떤 한 인물이 야콥을 지켜보면서 야콥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형태로 구성된다. 영화에서는 영화 그 자체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야콥과 게토 내의 생활을 보여주는 형태를 취한다. 글쎄, 이러한 보여주기방식의 차이가 이 전달매체의 차이점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는 확실히 증명할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영화에 있어서는 어느 특정한 인물의 눈으로 특정한 주인공과 특정한 장소를 보여주기에는 아무래도 관측시야가 좁아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는 소설이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 원작에서는 과거로의 이동도 자유로웠으며, 야콥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야콥 주변의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도 풍부하게 드러내주었다.
-원작 또는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
소설을 읽으나 영화를 보나 알겠지만, 게토에서 유태인이 라디오를 갖고있는 것은 중죄에 해당된다. 처음에 야콥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실토했으나, 야콥이 사람들에게 전해준 소식은 그들에게는 너무 희망적였나보다. 영화에서 야콥은 미샤에게 사실을 말하나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야콥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싶어한다. 또한 게토내의 자살률도 현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에 야콥은 죄책감을 느끼는 한편,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자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야콥의 주변인들이 야콥의 희망적 소식에 의해 죽게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절친했던 친구마저 라디오에 대한 진실을 알게되면서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불행속에 야콥은 죽게되고, 게토내의 유태인들은 어디론가 끌려간다. 하지만 마지막에 야콥의 희망은 현실이 되버린다. 정말로 야콥의 라디오가 희망인지 아무것도 아닌지 알려주지 않으며 끝맺게 되는 원작의 내용과는 다른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나 전달매체를 볼때나, 영화와 같은 영상메체가 작가의 주제및 메시지를 더 쉽게 전달해줄 수 있는것 같다. 이 영화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굳이 뽑자면...나는 아마도 희망과 극복의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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