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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 종교 정치와 정치 종교
조선일보 2013-11-29일자 오피니언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대통령 퇴진 요구가 정치적 태풍을 부르고 있다. 박창신 원로신부의 천안함·연평도 발언까지 더해져 파장이 일파만파 一波萬波 다. 여야와 시민사회, 개신교와 불교로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폭풍의 계절이 밀려오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인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열린 정치를 외면하고 닫힌 통치로 일관한 탓이다. 대선 댓글 의혹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었따.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의 정도 正道로 풀지 않고 공안정국의 편법으로 대처한 청와대의 단견 短見 이 오늘의 화를 불렀다. 박창신 신부의 발언도 강경 대응보다는 공론 영역의 자정 기능에 맡기는 게 옳았다.

 정의구현사제단 파동은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이는 '성직자의 정치활동을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논젤ㄹ 포함해 신앙과 양심에서 비롯된 사회 참여의 정당성 문제로 확장된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엄혹한 군사독재시절 민중의 십자가를 대신 짐으로써 민주화에 공헌했따.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받던 김수환 추기경의 존재와 함께 천주교를 빛낸 신뢰의 아우라를 쌓은 주역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는 암울했던 그 시대 다른 제도 종교와 성직자 다수가 정치권력과 유착해 종교정치의 길로 치달았떤 것과 대조된다. 사내 社內 정치와 관료정치에서 실세의 줄을 잡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듯 종교정치에 능숙한 종단과 성직자는 권력자와 부자들을 중시한다. 세습과 비리로 얼룩진 개신교 대형교회와 종단정치에 빠진 불교 조계종이 밟았던 바로 그 길이다. 천주교와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런 종교정치에 저항하면서 오늘의 신망을 쌓았다.

 그러나 정의구현사제단은 87년 이후 차츰 한국사회의 진화와 어긋나는 길을 간다. 민주와 독재의 대치구도를 벗어난 다원사회의 출현이 일부 사제의 원리주의적 신앙과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직자가 신앙의 이름으로 각종 현안의 최종 판관을 자임할 때 저치종교가 태어난다. 정치조욕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현실세계를 난폭하게 재단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곧 정치적 진리라고 선포한다. 그 결과가 독선이며 미망이다. 정치종교의냄새를 물씬 풍기는 박창신 신부의 천안함·연평도 강론은 사실과도 맞지 않고 공동체의 원리조차 위협할 정도다

 성직자는 정의를 말할 때 자계 自戒 하며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정의는 원래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의 義라는 말에서는 중국 지식인 이중텐 의 지적처럼 피냄새가 진동한다. 의를 파자 破字 하면 창칼로 희생양을 제사지낸다는 뜻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도 언제든지 칼을 휘두를 자세로 인간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말끝마다 정의를 내세운 정치종교의 궤적이 사랑은 커녕 피비린내로 가득햇던 것은 우연이나 일탈만은 아니다. 

 서양 중세의 마녀사냥과 함께 십자군 원정은 가는 곳마다 약탈과 죽음을 불렀다. 알카에다는 이슬람 십자군의 이름으로 오늘도 대량 살육을 일삼는 중이다. 인도 역사는 정의를 앞세운 불교를 위시한 종교간 갈등으로 홍역을 겪었으며 21세기에조차 힌둑적 정의관인 카스트제도의 멍에에 시달리고 있다. 성리학의 유교 원리주의는 사문난적의 정의관으로 조선 사회를 질식시켰다. 정치종교로 타락한 지배적 종교가 인간의 삶을 파괴한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호소한 이유다. 성직자일수록 남을 쉽게 정죄해선 안된다. 오히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앞에 몸을 낮춰야 한다. 진정한 신앙인은 타인과 세상을 부드럽게 대할 것이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으로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한 곳이 되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모든 종교는 사랑과 자비를 외친다. 따라서 신앙인의 믿음은, 그것이 참된 믿음이라면, 삶의 현장에서 그 사랑과 자비를 증명해야 한다. 신앙은 신앙 자체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믿는 사람이 행하는 사랑의 실천으로 정당화될 뿐이다. 종교정치와 정치종교는 너무나 자명한 이런 삶의 진리를 거부한다. 대선 댓글 논란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정의를 ㅁ라하는 종교인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의 종교 안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단언컨대, 바로 이 질문이야말로 한국의 종교인들이 응답해야 할 최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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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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