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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책 또는 영상물을 보고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라고 하면 나는 항상 적잖이 당황을 한다. 도대체 내가 읽고 생각한것을 어떻게 글로 써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어떤 느낌을 써야하는지, 아니면 그 감상한 것에대한 정보 내지 요약을 해야하는것일까? 많이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이중에도 특히 힘든 부분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는것인데, 그중에서도 내 관심사에 포함이 되지 않거나 흥미유발이 되지 않는 내용, 나의 생각과 반대되는 주장이나, 종교와 도덕, 그리고 역사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접할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생각하야 한다는것에 어이가 없고 회의감마저 들기도 한다. 자 그럼 지방방송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번 장은 저번에 읽은 3장에 이어 바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에 대한 내용이다. 이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기독교에대해 절대적으로, 맹목적으로 찬양하는듯한 인상이 심어져있다. 철학과 학생인 나로서는 기독교뿐만이 아닌 여타 종교에서 요구하는 맹목적인 믿음을 통한 진리추구는 절대 부정을 하는 사람이다. 진리란 인간이 논리적이며 비판적으로, 오로지 끝없는 탐구를 통해 추구하며 얻어질수 있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이 그리스도교와 문화라는 책을 감상함에 있어서 비판적이고자 한다.


 물질과 과학이 인간의 삶과 의미를 규정하는 유일무이한 척도라면, 왜 종교와 정신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와 예술은 인류의 역사오 함께 존속해오고 있난가? 그것은 인간이 물질적인 요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는 물질을 초월하고 시간을 넘어서는 종교적인 가치, 정신적인 진리르 떠나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은 꼭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종교와 신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만 하는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을 끌어들여 종교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것 보다는 철학적인 반성과 비판을 통한 진리 추구야말로 진정 인간이  가져야할 진리 탐구적 자세라 생각하고 이것이 더욱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 선과 악, 사후 세계에 대한 논의는 종교가 아닌 철학에서 다루는것이 더 현명하고 어울린다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과이 인격적인 생명의 관계와 신앙의 빛에서 주려고 시도한다. 그리스도교는 유신론적인 신앙을 지닌 다른 종교와도 뚜렷이 구별되는것이 삼위일체 교의라는데 이것은 또한 내가 가장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부분중의 하나이다. 또한 이것이 내가 성실한 기독교인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며 기독교를 등진 이유이기도 하다.


  책 105쪽의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의 성격을 보자.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그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를 펴현하는 총체적 개념이라고 한다. 즉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과연 절대적인 믿음이 말이 되냐는것이다.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하기 이전에,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썼는지도 모를, 혹은 소설일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성경에서의 이솝우화가 아닌) 지금 현재 현생에서의 절대적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 내지 구원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게 순서가 아닌가 싶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어느 평범한날 A가 길을 가고있는데 생전 처음보는 한 남자가 자신에게 백만원을 하루동안 맏겨두면 열흘뒤에 천만원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과연 그 자리에서 흥쾌히 승낙할 사람은 얼마나 될것 같은가? 즉, 하나님의 정체를 만 천하 만 인류에 밝히고 모든 대중매체와 인간과 대통령과 거렁뱅이들이 볼수 있고,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와 힘을 증명하고 확신시키는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조자시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하나님이라는 존재도 (만약 있다면) 무가 아닌 유라는 것에서부터 탄생한 것이라 말하는게 옳은것이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과 질적으로 다른 초월적인 절대자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인가? 눈과 귀가 먼채, 맹목적으로 신을 추구하고 따르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 아닌이상,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한 나머지 둘러대는 허울 좋은 핑계거리로만 보일 뿐이다. 책에서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언어와 경험, 의식의 세계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하였다고 말할수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왜 인간의모든 것을 초월하였다고 해서 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 역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 내지 증명 내지 밝혀내지 못한 나머지 신학자들이 일반인들에게 둘러대는 술수에 불과한것이라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이 장을 읽고난 나의 감정과 비판적 생각, 그리고 공감가는 부분에 대해 더 말하고 싶으나 (앵무새가 똑같은 말을 되씹는것과) 같이 위에서 내가 말했던것과 같은 내용이 계속 되풀이될듯하여, 또는 마치 비난적인 감상문이 되버릴것 같아 여기서 이만 줄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다소 비판적이면서도 또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진리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4장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앙적 성격 또한 의문과 허점 투성이로 보인다. 아무리 신앙이고 종교이고 신적인 문제라고 해도, (형이상학적 문제) 주장이 있으면 실존적으로 증명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 근거로서 성경을 들면 그것 역시 절대적인 오류를 범하는 셈이다. 성경이라는 책 또한 인간의 손에 의해서 씌여졌기 때문이다. 결코 성경이 진리이고 종교적인 근거가 돼서는 안될 것이며 성경의 말씀을 벗어난 탐구적인 근거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막상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으로써 이 책을 읽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감상평을 쓰고나니 다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혹 이러한 내 사상으로 인해 낮은 평가를 받는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말이다. 하지만 나는 후회는 없다. 감상문에 대해 0점을 맞더라도 내 소신껏 내 생각을 천명했으면 그것뿐인것이다. 비록 내 생각이 틀렸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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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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