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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1 엥겔스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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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으로 보는 엥겔스의 생애와 대표 저작>

작성자 : 본인

<참고자료>
「철학사상」 별책 제 2권 제 11호 I 손철성 I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I 2003
「엥겔스 : 최초의 전기」 I 히루쉬, 헬무트 I 아침 I 1990
「엥겔스 평전 :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I Hunt,Tristram I 굴항아리 I 2010


엥겔스(Engels, Friedrich, 1820. 11. 28.~1895. 8. 5.)

 

목차
1. 엥겔스 소개와 후대 평가
2. 연도별 엥겔스의 생애

 

내용

1. 엥겔스 소개
 엥겔스는 19~ 20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상중의 하나인 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스와 함께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인물이며 또한 마르크스의 절친이자 사상적 동반자이기도 했다. 엥겔스에 대해서 「철학대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열성적인 혁명가요 천재적인 과학자인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철학, 정치 경제학 및 과학적 공산주의 등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 및 일체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변증법적 유물론 및 역사적 유물론을 기초함으로써 인류의 철학적 사유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의 발전에 기여한 점 이외에도, 변증법적 유물론 및 역사적 유물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지식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역사, 특히 독일 인민의 역사, 군사 이론, 미학, 언어학, 문학 이론 및 자연 과학의 철학적 문제의 연구 등 다양한 지식 분야에서 탁월한 인식을 획득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 「자본론」의 제2권과 제3권을 완성하여 출판하는 데 특히 큰 공을 세웠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철학대사전」, 860쪽)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함께 자연과 사회에 대한 철학 이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 자본주의의 운동방식과 그 문제점을 규명하는 정치 경제학 이론,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 방법과 관련된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 등을 체계화하였다. 마르크스가 경제학 연구에 집중하였다면, 엥겔스는 자연 과학의 철학적 문제, 변증법적 유물론의 연구에 집중하였다. 또 엥겔스는 마르크스주의를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데도 많은 힘을 쏟기도 하였다. 엥겔스는 이렇게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이론가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노동 운동이나 사회 변혁 운동과 같은 실천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혁명가이기도 하였다.

 

 2. 연도별 엥겔스의 생애
 엥겔스는 1820년 11월 28일  독일 라인란트주의 소도시 바르멘(Barmen)에서 태어났다. 엥겔스의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는 경영주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자랐다. 엥겔스는 엘버펠트(Elberfeld)에 있는 김나지움(Gymnasium)에 입학하였으며, 이때 ‘청년 독일’ 그룹에 가입하여 시사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그는 베를린(Berlin)에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철학 강의를 들으면서 헤겔(Hegel) 철학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자가 되었으며, 청년헤겔학파와 교류하면서부터 포이에르바하(Feuerbach)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에 엥겔스는 사상적으로 급진적 민주주의를 지지하였다. 


  1841년 9월에 엥겔스는 프로이센 군대 소집영장을 받아 1년간의 복무를 자원한다. 프로이센 포병 근위연대 12중대로 배속된다. 이 본부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 있었다.


 1842년 엥겔스는 영국의 맨체스터(Manchester)로 이주했다. 여기서 엥겔스는 공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국의 노동 운동의 지도자들과도 사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가 된다. 


 1844년에 그는 「독불 연보」에 발표한 「국민 경제학 비판 개요」에서 사회주의 관점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사건으로 당해 년에 엥겔스는 파리(Paris)에서 마르크스와 만나게 되었는데, 이후에 두 사람은 평생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 작업을 하는 사상적 동반자가 되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최초의 공동 작업으로 같은 해에 「신성 가족」을 썼는데, 이것은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를 비롯한 청년헤겔학파의 관념론적견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45년에는 「영국의노동 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물질적 생산 활동이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계급투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1845년에서 1846년에 걸쳐서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공동으로 역사적 유물론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독일 이데올로기」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독일 이데올로기’ 즉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관념론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기존의 독일 철학이나 사상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를 비롯한 브루노 바우어(BrunoBauer),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와 같은 청년헤겔학파의 관념론적 견해를 비판하였으며 또한 칼 그륀(Karl Grun)이나 게오르그 쿨만(GeorgKuhlman)과 같은 이론가들이 내세우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과학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역사와 사회를 물질적인 생산 활동을 토대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면서,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하며 나아가 이러한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체가 되는 혁명적 방법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 단계로 성숙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책으로 평가받기도 하는데, 그 동안 원고의 형태로 보관되다가 1932년에 소련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1845년부터 엥겔스는 실천적인 정치 활동에도 직접적으로 뛰어들어서 사회주의자들의 비밀 단체인 ‘의인 동맹’의 주도권을 마르크스와 함께 장악하였으며, 1847년에는 이 단체를 공개적 혁명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바꾸었다. 이때 엥겔스는 이 동맹의 강령 초안을 문답 형식으로 작성하였는데 이것이 「공산주의의 원리」이다. 1848년에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이 초안을 바탕으로 이 동맹의 강령을 밝히는 「공산당 선언」을 썼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Manifest 493쪽)는 유명한 문구로 끝을 맺고 있는 이 책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 대한 분석과 함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를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읽히는 공산주의 문헌이 되었다.


 1848년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 각국에서 왕정에 대항하여 공화정을 세우려는 혁명이 일어나자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함께 「신라인 신문」 등을 통해 노동자 계급과 공산주의 세력의 요구를 대변하였다. 엥겔스는 빌리히(Willich) 의용군의 부관이 되어 팔츠(Pfalz) 전투와 바덴(Baden)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1850년에서 1852년 사이에 엥겔스는 혁명의 경험을 다룬 「독일 농민 전쟁」과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이라는 책을 썼다. 또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적 군사 이론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1864년에는 ‘국제 노동자 협회’ 즉 ‘제 1 인터내셔날’이 출범하였는데,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이 협회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871년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봉기하여 ‘꼬뮌’을 선포하자 그는 이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1876년에서 1878년 사이에 엥겔스는 그의 주요 저작인 「반 듀링론」을 저술하였다. 여기서 그는 듀링(Duhring)의 이론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철학, 정치 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그 동안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이룩한 이론적 성과물을 총괄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 당시에 엥겔스는 자연 과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여 자연의 변증법적 운동을 탐구하면서 「자연 변증법」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유물론과 변증법 이론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처음으로 유물론적 변증법의 세 가지 기본 법칙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법칙, 양질 전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 법칙을 정식화하였다. 그러나 이 저술은 미완성인 채로 남겨져 있다가 1925년에 소련에서 출판되었다.


 1880년 엥겔스는 「반 듀링론」에서 세 개의 장을 뽑아서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사회주의의 발전 과정을 역사적,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간결한 문체와 명료한 내용으로 인해서 그 당시에도 이미 여러 나라의 언어로 출판되었으며 나중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적 입문서로 자리잡게 되었다. 


 1883년 마르크스가 사망한 이후, 엥겔스는 계속 활발하게 이론적 작업을 하였으며 1884년에 「가족, 사유 재산 및 국가의 기원」을 출판하였다. 그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원시 부족 사회를 연구하여 원시 사회로부터 노예제로의 이행 과정을 해명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사유 재산의 형성과정을 토대로 하여 일부일처제의 가족 형태 및 계급과 국가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그 성격을 규명하였다.


 18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독일의 노동 운동을 비롯하여 유럽 각국과 미국 등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1888년에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이라는 얇은 책을 썼는데, 여기서 엥겔스는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적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하였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사망하자 아직 출판되지 않은 마르크스의 주요 저서인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을 정리하여 1885년과 1894년에 각각 출판해 주었다.


 1895년, 엥겔스는 거의 75세가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영국에서 삶을 마감했다. 엥겔스는 영원한 친구이자 사상적 동반자인 마르크스와 끝까지 우정과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인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엥겔스가 없었다면 마르크스의 업적도 없었으리라 평가하기도 한다. 비록 엥겔스가 마르크스와의 공동 작업에서 자신은 단지 ‘제 2 바이올린’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엥겔스의 이론적 성과가 마르크스의 명성에 의해 가려지고 있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엥겔스의 독자적이면서도 중요한 역할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참고자료>
「철학사상」 별책 제 2권 제 11호 I 손철성 I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I 2003
「엥겔스 : 최초의 전기」 I 히루쉬, 헬무트 I 아침 I 1990
「엥겔스 평전 :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I Hunt,Tristram I 굴항아리 I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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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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