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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저자
헤겔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08-04-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 책은 헤겔 법철학의 기본 취지인 독일어 Recht로 총괄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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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눈으로 바라본 세월호>

양심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순수한 자기확신’, 나아가서는 ‘오직 자기를 통하여 무엇이 선인지를 내용적으로 규정’하는 데 있다. 법철학에서 규정된 헤겔의 이 도덕은 칸트의 도덕을 비판하는데. “그러나 이렇게 양심에 의해 규정된 선은 추상적인 데 머무른 채 양심의 자기 내면에 칩거하여 어느덧 자기와는 정반대의 악으로 전화할 수 있는 지경을 맞이하기도 한다.” 양심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순수한 자기법칙이라고 가정한다면, 모두에게 각자의 양심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이 선하고 옳은 것인가에 대한 것. 내 신앙 양심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등등. 헤겔은 양심에 규정되는 선은 추상적인데 머무른다고 말한다. 강력한 말이다. 더하여 자기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자신의 양심적 선이 악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유족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은 그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는 사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온 국민이 지금과 같이, 비유하자면 유가족과 온 국민이 함께 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냉정하게 말하면 여론이 지속적으로 분열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주어라' 라는 식의 것과 '지나치다~ 과유불급이다~ 여야 합의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람들이 극심한 세월호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고, 피로감이 계속 누적되고 있기만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양보, 타협을 해야 한다는 입장'의 두 가지 분열로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세월호 사태는 이미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엄청나게 진입되었다. 이제는 정치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 정치게임이 되어버렸을까? 상상을 하자면 아직 2년이 훨씬 더 넘게 남았지만 이후 총선과 대선에 무엇이 유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면 그 활동기간이 최장 1년 9개월이다. 그래서 지금 즈음 시작하면 차기 총선 직전에 조사가 끝나게 된다.

다시 돌아와,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도 자기 양심에 의해서- 자기 고통에 기반해서 특정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헤겔은 유족들에게 묻는다. 유족들에게... 당신의 고통, 당신들의 고통. 당신들이 양심으로 확신해 마지않는 양심, 즉 진상이 규명되고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관련자가 처벌되어야 한다는 그 양심, 그것이 다냐고 묻는다. "당신의 양심대로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그래서 분열된 반쪽 민심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세월호 유족들만 이 국민인가? 세월호 유족들의 고통만 고통이느냐? 5000만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있다! 하고 말이다.

 

 

그런데 또 보기 안타까운 점은 정부가 이것을 아주 영악하게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세월호 특별법의 쟁爭으로 인해 하나 처리하지 못한 각종 법안, "민생"법안들… 정부는 유족들에게 양보하라 하는 민심의 반쪽 부분(어떤 이유에서인지 불확실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전향하여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을 영악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정부가 그것을 유도하는 측면이 크다. 반면 유족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완강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사태 앞에서의 자신의 입장은 말 그대로 자기 양심이기 때문이다. 나의 양심의 문제에서라면 그 누가 쉽게 양보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쉽게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진짜로 자신으로부터 나온 양심의 토대위에 있는 것이라면 양보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양심은 마지막 선, 마지노선이다. 스스로가 인간으로서 나의 존엄성을 지키는 최후의 선이기 때문에 결코 양보할 수 없다. 헤겔에 따르자면 양심의 속성이 그러하다. 더하여 그것은 혼자만의 양심이 아닌 유가족들 집단의 단체적이자 집단적으로 공유되어지고 있는 양심이다. 그러하니 그 굳건한 양심 은 절대 물러날 수 없는 무거운 것이며 그 이외에 양보할만한 추가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태가 우리 대한민국인 삶의 전부인가? 한국사회의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는 것인가? 과연 세월호 문제가 한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 중요성의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게 과연 올바른가?" 실제로도 희미하게나마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헤겔식으로 보자면 주관적 도덕성이라는 것은 굉장히 비타협적인 것이다. 그리고 주관적 도덕성은 그것을 지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후의 선line 비슷한 것인데 우리 인간은 정치적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이며 인간이란 존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며 서로 어울려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따라서 주관적 도덕성에만 목메는 것으로만은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실의 문제와 결부시켜 헤겔이 지금의 세월호 사태에 던지는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다. 이는 결론이면서 가장 결정적으로 큰 숙제인데, 즉 나의 양심위에 확고히 서 있는 주관적 도덕성이 또다른 양심 위에 서 있는 주관적 도덕성과 부딪히는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세월호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그러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그런 주장들에 동의하면 착한善사람이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주장이 조금은 무리하다- 오버스럽다- 지나치다- 또는 그만둘 때, 즉 타협할 때가 되었다- 유족들의 비타협적 태도와 주장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 - 하고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악惡한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 주장을 100% 받아들이자', '대통령을 포함한 이해관계자 모두를 색출해 처벌하자' 등...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면 도덕적으로 옳은善 것이고, '아니다. 지나치다, 어느 정도 선line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고였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악惡한 것이 된냐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정치적 계산을 가지고 이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분명 더 많이 있을 것이다 . 단식농성장에 폭식투쟁을 하는 등. 그러나 이 문제는 그저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자들의 비열한 짓이 전부인 것만으로 볼것은 아니다. 지금 사정이 하도 딱하고 안타깝다보니 말을 못하고 있을 뿐, 지금에 와서는 속으로 그토록이나 슬퍼하고 그토록이나 공감하는 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속으로, 여태까지 그토록이나 슬퍼했으니 이정도에서 상황을 침작했으면 즉 이제 정리를 해야할 때가 되지 추스릴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할 것이다.

이제는 나라의 성직자, 추기경과 스님도 이 시점이 되어서 이제는 이 사건을 수습하여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좋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도 양보할 부분을 찾아서 양보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했던 성직자들은 도덕적으로 악한 것일까? 이들은 분명 정치적 계산에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다시 결론으로 돌아가 그렇다면 이 도덕적 양심, 이 주관적 도덕-양심의 충돌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에 있어서 칸트식의 방법으로는 해결을 보기가 결코 쉽지 않다. 정확히 지금의 상황인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양심과 주관적 도덕성을 근거로 한다면 그것들은 최후의 보루이기에 타협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도덕성의 차원에서 머무르면 안되며 바로 "인륜성"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륜성이라고 하는 것은 도덕성이 현실의 제도와 조직으로서 구체화된 것, 즉 주관적 도덕성과 주관적 도덕성이 충돌하는 경우에 그것을 수습하고 좀 더 높은 차원의 포괄적인 도덕적 해결점을 찾는 것- 이것이 헤겔에의 인륜성이며 지금의 세월호 사태에 있어서 일말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cf) 지인의 코멘트

포괄적인 도덕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있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도덕성이 현실의 제도로 구체화 되는 게 인륜성이라면, 어쨌든 그 인륜성의 기반이 되는 어떤 도덕성이 있을텐데 결국에는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입김이 작용한 인륜성이 생성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이런 등등의 의문이 듬ㅋ

선악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함.

그런데 개인의 양심과 사회적 도덕이 충돌할 때는? 또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강렬히 느낄 때가 있음. 맹자가 말하듯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손이 가고 아이쿠 소리가 튀어나오고 측은히 여긴단 말이지. 이것이 그저 착각일 뿐일까. 헤겔도 결국은 이성을 중시하는 서양철학의 흐름 위에 있을텐데, 그렇기에 그가 감성을 간과한 건 아닌지도 봐야할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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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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