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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마넹 - 선거는 민주적인가


선거제도가 바람직한가?

 

 

(사진: 구글)

본론1 : 대의민주제가 진짜 민주제가 아닌 이유.

민주주의 본연의 의미의 탐구를 통해 바라본다면:

현실을 바라보았을 때:

 

본론2 : 추첨이라는 민주주의 방식을 현대에도 적용 가능할까?

 

 

2. 보론2 : 엘리트주의에 관한 입장

여기서 말하는 엘리트라 함은 플라톤적인, 철인적인 것을 의미하고, 그 철인이 많은 인민을, 철인으로서, 엘리트로서 끌어 올려주어야 하고, 즉 동굴에서 강제로 끌고 나오는 것, 즉 이데아를 향하게끔 하는 것, 이것이 본인이 말하는 엘리트다. 그리고 이것이 엘리트 본연의 모습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현재에 발 딛고 있는 존재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엘리트 본연의 모습과 더불어 현재의 엘리트 모습이 어떠한가를 교차시켜 보아야 한다. 만약 지금의 엘리트가 본연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하여도 엘리트들은 그 본연의 기능으로서 엘리트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으며, 불일치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로 엘리트 본연의 기능을 근거로 하여 엘리트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자칭 엘리트들은 실로 본연의 엘리트가 아니며 그저 사이비 엘리트일 뿐이다. 현재의 엘리트라고 정의되어진 것들이 사이비이기 때문에 엘리트주의” ” 라는 논의가 생기게 된 이유이다. 엘리트 본연의 기능으로서 진짜 엘리트들은 지금의 사이비엘리트들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엘리트로서의 본능이다.

이런 흐름에서 당장의 엘리트주의는 (사이비 엘리트로서) 반대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연의 엘리트로서의 엘리트주의를 우리는 결단코 지지할 수밖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엘리트주의라는 이름으로 엘리트가 논의의 것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엘리트에 대한 정의의 차이 때문이다. 엘리트를 문제 삼는 이들은 지금의 속칭 엘리트(사이비엘리트)를 엘리트라 정의내리고 이들의 권위적이고 리더십적인 모습이 바람직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사이비의 것들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들의 권위와 리더십은 정당하지도 않다.

 

3. 보론2 : 지식의 실천과 정치적 실천은 상호 일치되어 있느냐 분리되어 있느냐?

지식의 실천과 정치적 실천은 그 정체가 서로 붙어 있느냐 분리되어 있느냐의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식의 실천과 정치적 실천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분리될 수도 있고 함께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과연 지식의 실천과 정치적 실천이 분립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 하느냐, 혹은 양립되어 있어야 바람직 하느냐 하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게도! 지식의 실천과 정치적 실천은 서로 일치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다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사태가 지식의 실천과 정치적 실천을 분리시켜 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양자가 분립된 데에는 엘리트, 즉 사이비 엘리트의 책임이 아주 크다. 그리고 그 사이비 엘리트를 진짜 엘리트인 양 대한 우매한 민중들 역시 그 책임은 아주 크다.

양립된 상태가 좋은 이유 : 지식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다. 학문 역시 그 자체로는 좋은 것에 속한다. 반면 돌, , 나무 등등의 것들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다.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속성의 것들은 그것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좋아지거나 나빠진다. 그 자체로 좋은 것의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 좋은 것을 지닌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좋음의 속성을 지닌 그것을 수단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나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 자체로 좋음의 속성을 지닌 지식의 실천(내가 생각하기에 지식은 지식이고 실천은 실천이다. 그런데 지식의 실천이라 함은 지식인으로서 그 지식을 물리적 형태로 표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을 예를 들자면 논문, 강의, 저술 등이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실천적 결과물 가운데 좋은 것도 있을 것이며, 그저 그런 것도 있을 것이며, 분명 반동적이거나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즉각 현실에의 반영이 되어야 한다. ‘현실에의 반영이라는 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다. 그리고 반영하는 것은 정치적 실천이다.

분립된 상태가 나쁜 이유 : 그런데 지식의 실천과 정치적 실천 양자가 분립된다면 정치적 실천의 주체자들은 지식이 부재한 채 무엇인가를 현실에 반영하고자 할 것이다. 거기서부터 현실의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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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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