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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포털

저자
김기원 지음
출판사
필맥 | 2009-08-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삶의 현실을 경제학 이론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이한 경제학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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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저자
김예슬 지음
출판사
느린걸음 | 2010-04-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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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3일 생각을 다듬고 수정하여 씀.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는 세계적으로 견줄만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우리에게 자원이라고 한다면 인적자원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을 통한 우수한 노동력의 배출이 중요했으며 이는 경제성장의 근간이기도 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우리에게 인재가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과거 우리가 경제성장을 하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외수 즉, 수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수시장의 활성화나 내수시장과 수출시장과의 균형도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교육현실, 경제현실은 그 사항을 반영하지 못하고 오로지 과거의 수출지향 이념에 따라 고학력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듯하다. 경제정책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부동산, 건설, 개발에만 힘쓰고 있다. 순리에 역행해 정책이나 법률을 이용해 억지로 버블경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거품을 더 키우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대학을 졸업만 하면 바로 취직하거나 원하는 바를 이룰수 있는 길이 열린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은 약 7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성세대, 특히 경제적 기성세대가 대학을 바라보는 요즘의 추세는 대학을 하나의 산업, 직업을 위한 곳으로 파악하는 논리가 득세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대학이라는 슬로건, 대기업과 대학 간의 유착이 그 증거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학의 기숙사에는 민간기숙사가 들어서고 있고 그러면서 학생들의 부담은 증대되었다. 학교 안에는 저렴한 식사 대신 브랜드 식당과 값비싼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있다. 신축 건물의 이름은 학교의 교육이념과 학문을 대표하는 이름이 아닌 그 건물을 짓는데 금전적으로 기여한 대기업의 이름이 들어가고 있다. 대학교와 학생간의 관계는 더 이상 학문의 디딤돌,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다. 그저 계약된 관계일 뿐이다. 또한 지금의 대학은 취직을 위한 자격 취득소화 된 것 같다. 다시 말해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게 상당히 효율적으로 소위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급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고 봐도 그렇게 큰 어패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대학은 그 ‘부품’을 공급하는 독점적 사업체로 변화하고 있다. 학위가 없으면 마땅히 취직할 길이 안 보인다. 사람에 대한 신뢰도나 직업 적합성에 대한 보증은 오로지 자격증, 또는 졸업장에 따른다. 자격증과 졸업장 없이는 다양한 어떤 시도를 해보기가 어려운 구조로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시인이 되어 만족스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문창과를 나오거나 거대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야만 한다. 사진작가가 되려면 사진과 관련한 다양한 스펙과 자격증, 학위가 있어야만 인정받기 쉽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으면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증 또는 학위가 필요하다. 요리를 통해 만족스런 삶을 살고 싶으면 해외로 요리 관련 유학코스는 거치고 와야 한다. 선생님이 되어 교육의 참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우선은 자격을 받을 수 있는 학과에 가서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어디를 가든 어느 한 틀에 맞춰지게 되는 것 같다.

 

자격증, 학위, 그 사람의 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한 가장 가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자격, 학위를 통해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제가 따라온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는 자격을 취득하기까지 값비싼 비용과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금껏 들인 정성을 “뽑아내”려 한다. 속칭 나보다 못난 사람보다는 더 노력했고 잘 났으니 그만큼 잘 먹고 잘살아도 된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다 등의 우월감과 자부심, 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 부나 잘먹고 잘사는 양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부족하다고 여겨진다면 부정-비리가 발생할 경우가 다분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판검사-변호사가 되었다면 정의와 법에 대한 순수성, 정치에 대한 순수성, 요리에 대한 순수성, 봉사와 성직관으로서의 공무원이라는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선생님이 되었다면 참교육에 대한 순수성은 잃어버린 채 대입중심의 교육, 경쟁의 교육, 정부나 국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교육을 하게 된다. 이런 자본주의적 성향에 따라 지금 대학에 있는 우리도 학문은 학점에 팔고, 정의는 두려움과 이익에 넘기려고 하는 것 같아 두렵다.

 

결론적으로 나는 모두가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두가 대학에 가며 대학을 궁극적 목표로 생각하는 듯하다. 나 역시 대학을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하나 왜 대학에 가야 하나 명증적인 이유 없이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의 발단은 이렇다. 본디 나는 공부를 안 하던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래서 대학도 상대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급”이 낮은 학교로 가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가야 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완고함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학을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장남이라는 이유-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으로 인해 중퇴를 하시고, 어머니께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학구열을 뒤로 한 채 대학을 가지 않아야만 했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에 가지 못한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고 실적과 능력을 아무리 높여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 의해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솔직히 대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에게 “똥통학교”일지언정 4년제 대학은 무조건 졸업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대학의 진짜 가치는 취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본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대학의 바람직한 모습은 절대 아니다. 숭고하고 신성한, 성직자와 같은 높은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학을 왜 가느냐 하는 참된 의미, 그리고 자기성찰을 통해 그 필요성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교육은 입시가 그 궁극적 목표임이 절대 아님에도 현실은 우리 학생들을 경제적 논리에 따라 입시 전쟁터로 내몰고 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을 살다 갈 뿐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가야 후회가 남지 않을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오래도록 가슴속에 그늘을 드리울 청춘시절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학에 가야 할지, 대학의 궁극적 목적인 학문의 탐구를 위해 대학에 가야 할지, 아니면 다른 나만의 삶을 개척해 나아가야 할지를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한다. 나 역시도 여전히 진행형인 고민이다.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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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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