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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경제와 삶의 현재인 이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경쟁과 독점은 서로 밀접하게 묶여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경쟁과 독점의 역사적 인과성을 함께 묶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첫째, 경쟁의 개념을 알아보고, 둘째, 독점의 개념을 알아본 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발전 경향성, 즉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성과 함께 경쟁과 독점의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알아보고자 한다.[1]

 

  1. 경쟁의 개념

 경쟁은 언제나 있어왔다. 경제적 개념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등 삶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경제적 측면을 중점으로 서술해볼 것이다. 우선 고전에서의 경쟁개념은 이상적 개념이었다. 즉 초과이윤을 배제하고 시장가격을 실현 가능한 최저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도구로 생각했다. 또 적극적인 가격 경쟁을 통해 재화의 가격을 수요와 공급의 항구적 균형점인 ‘자연가격’에 일치시키는 힘으로써 이해되었다. 마치 자연법칙과 같이 경제사회의 질서와 안정, 도덕적 당위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다.[2] 하지만 이 고전적인 경쟁 개념은 경쟁의 과정적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지 경쟁의 세속적 목적 측면에서 본 것은 아니다. 경제에 있어서 경쟁을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 즉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포석적(布石) 차원의 것이다.

 

 시장 내에서의 경쟁의 구체적 모습은 잠재적 고객을 포함한 고객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매출을 증대시키며 최종적으로는 이윤을 높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예를 들자면 가격인하, 제품차별과, 광고, 서비스 강화, 기술개발, 진입장벽 설정 등이 있겠다.[3]

그리고 경쟁의 상태에 따라 시장의 상태를 개념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완전경쟁시장(무경쟁상태-무독점상태), 독점시장, 불완전 경쟁시장이 그것이다. 완전경쟁은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구매자에 의해 특정 재화의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상태이며 그 특정 재화의 시장에 진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이다. 불완전경쟁시장은 완전경쟁시장과 독점시장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과도기인 시장으로 완전경쟁시장보다 경쟁이 덜한 상태를 말한다. [4] 경쟁, 과점, 독점이 혼재해 있는 상태이며 현실의 상태이기도 하다. 독점시장은 경쟁이 없는 상태로(완전독점의 경우) 시장에 상품을 공급하는 주체가 단 하나뿐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1. 독점의 개념

독점은 말했듯이 어떤 재화, 서비스를 판매하거나 생산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인 상태를 말한다. 어원적으로도 독점(monopoly)은 모노스(monos(only))와 폴레인(polein(to sell))의 합성어이다.[5] 따라서 앞서 말한 것처럼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시장에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없는 것에 가까운 상태다. 독점상태에서 독점자는 생산량과 가격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고 독점적 지위의 보전을 위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독점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해볼 수 있겠는데 좌파적 관점에서의 독점과 우파적 관점에서의 독점이 있겠다.[6] 좌파적 관점에서의 독점은 인민 전체가 주인이 되어 경제적 권리를 “인민 전체로서”, 즉 공유한다는 의미에서의 독점이며 고전파의 이상적 개념에서의 독점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장 궁극적인 경제체제이며 독점은 필연적으로 우파적 관점에서 좌파적 관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우파적 관점에서는 자본가 또는 능력 있는 사람이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 자본가적 입장에서 독점을 바라보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 극단이나 치우침에는 언제나 폐해가 있는 것처럼, 경제에 있어서도 독점은 좋은 점과 폐해를 함께 가지고 있다. 독점을 잘못 통제하게 되면 자원, 재화의 부적절한 배분을 발생시키고 국가 전체나 인민의 행복을 저해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독점 상태에서는 재화의 가격이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상승할 수도 있고, 경쟁이 없기 때문에 품질, 서비스 등에 대한 경영자나 직원의 노력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정경유착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7]

 

이러한 독점은, 독점 자체의 본성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현 시점에서 독점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건대 ‘독점’은, 독점화의 경향은 본성적으로 내재해 있고 더불어 ‘경쟁’을 내부에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경쟁을 지양하는 속성을 지닌 것 같다.[8]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를 시도해보겠지만 어찌 보면 자유경쟁의 귀결로서 독점이 나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우선, 자본가의 입장과 비자본가의 입장에서 독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일단은 독점이 바람직해 보인다. 자본가의 표면적인 존재의 목적, 즉 비본질적이며 억견(doxa, 허상, 상상, 신념)로서의 목적은 이윤을 최대로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 한해 경쟁의 승리와 자본가의 시장독점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본질적이며 궁극적인, 에피스테메(episteme, 최고선, 지식)로의 목적에서 보자면 독점은 바람직할수도 있고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본가의 초월적이며 본질적인 행위 목적은 나를 위해 또는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타심을 위한 것, 전체의 행복을 위한 것, 인민의 ‘행복 표준편차’가 최소화 되도록 하는 것, 공리적 행복의 추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 독점 그 자체를 가지고는 좋다거나 나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전자의 측면에서 보자면 앞서 말한 자본가의 모습은 비본질적 모습을 보이며 억견이며 허상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것이 못되며 후자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가는 최고의 선, 공리적이며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바람직한 것이 된다. 전자의 경우는 재벌기업이 되겠으며 후자의 경우는 공기업이 될 것이다. 이런 기본 패러다임에 입각해 본인은 최종적으로 모든 경제 기반은 후자의 독점적 형태로 나아가야 함이 마땅하다고 본다.[9]

 

사실, 자본가의 표면적 목적으로서의 이윤추구 또한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윤은 무언가를 판매한 뒤 일체의 비용을 충당한 뒤 남은 잔여자본을 말하는데, 재화의 원래 가치에서 얼마만큼의 이윤율을 설정하였느냐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이윤이 어떻게 분배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기계제 공업을 예로 들어 만약 이윤이 투하된 자본(자본가의 돈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력 역시 포함)에 비례하여 정확히 1/n로 돌아가지 않고 일부가 빼돌려져 자본가에게 들어간다면 그것은 즉 자본가의 잉여가치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잉여가치를 남기고자 하는 목적의 이윤추구라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에 있어서 대부분의 자본가는 이처럼 잉여가치를 남겨 왔다.


  1. 자본주의에서의 경쟁과 독점의 관계

 정리하자면 자본주의에서 경쟁과 독점은 상호 배타적이거나 분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10] 경쟁은 본질적으로 독점이다. 경쟁상대를 배제하려는 과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자본가는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효율을 높이고 최종가격을 인하하며 잠재적 구매자를 끌어들이고자 노력한다. 그 일련의 과정이 경쟁이다. 그 과정까지는 소비자에게 바람직한 것이며 법으로 억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만 그 경쟁의 결과로서 독점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리고 독점화된 재화의 속성이 필수재이냐 사치재이냐 등에 따라 억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발전의 흐름에서 경쟁과 독점의 상관성을 보자면 서구의 자본주의는 대체로 19c 말에서 20c 초를 경계로 하여 자유경쟁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바뀌어갔다. 소수의 독과점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나아가 국가 경제를 지배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11] 첫째, 돈을 벌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했으며 그 경쟁에 대한 승리의 결과로 소수 기업이나 자본가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둘째,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조선산업, IT산업, 중화학 산업 등과 같이 자본의 막대한 집적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대자본가가 시장을 꾸리게 되었다.

 

다시 풀어서 설명하자면 자본주의 속의 이 경쟁은 처음에는 생산수단을 지배(독점)하고자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생산수단을 바탕으로 노동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였으며 얻은 후에는 노동력을 지배 또는 자본가에게로 귀속(독점)해왔다. 처음에 이는 자본가 개인적이며 국지적 형태의 소유이자 독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유를 향한 경쟁과 승리가 반복되면 소유는 집적되며 그 집적을 바탕으로 더 큰 경쟁을 하여 승리, 점점 더 증대되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자본가의 몸집은 초기 자본에 비해 대단히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19c 중 후반에 이르면 경쟁을 통한 이런 독점의 획득은 그 경계를 국민국가 전체에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본가는 더 몸집을 불려 국민국가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 다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12] 그 경쟁은 한 국가 내 자본집단간 경쟁을 너머서 초 국가적 자본집단간 경쟁이 되었고 그 모습은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자본은 특정 국가에 핵심성분을 두지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타 국가로까지 영역을, 시장을 확장해나간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성장,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 자본주의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어쩌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하게 되었고 독점을 하게 되었나 그 역사 속 필연성 안의 경쟁과 독점의 인과성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 이유로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성장을 향해가게 되어 있는데, 자본가가 추구하는 이윤, 잉여가치율은 자연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자본주의의 속성인 그 성장경향을 보존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금융자본’이라는 이상한 방법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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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보론으로서 ‘마땅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해야만 할 것 같다. 마땅함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가장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 행위가 올바른 것이다. 즉 타고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자동차라면 안전하고 빠르게 잘 달리는 것, 컴퓨터라면 오류 없이 잘 작동하는 것이다. (어떤 토대나 패러다임으로써의 가정)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목적이나 행위가 무엇이더냐 말하자면 그것은 평등, 그리고 행복함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의사의 경우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자기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치료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선생의 경우는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며, 변호사의 경우는 억울하고 또 법적인 구명이 필요한 사람을 최대한으로 도와 법적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대통령, 정치인은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오로지 인민과 국민의 전체적 행복 증진을 위해 헌신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여기서 지금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자본가나 기업가의 경우는 최저의 가격으로 최고 품질의 것을 널리 퍼뜨리는 것, 그럼으로써 소비 및 소유에 대해 공리적 이익과 행복의 증대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거나 물질적 대가를 얻는 것이 목적(최종적으로)인 직업(또는 행위)은 없다. 아니, 개인에 따라 그런 것에 목적을 두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기능적으로나 이상적으로 생각해볼 때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바람직한 목적을 벗어나 어떤 행위 또는 직업을 그 행위 또는 직업 자체의 최고의 바람직한 목적이 아닌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행하는 행위 자체는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제도적으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경쟁과 독점이라는 주제에서 보자면 이상적 행위에 부합하는 결과를 산출하는 독점만을 제한하는 독점금지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올바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의술을 하는 사람을, 평생직장이라는 비루한 목적을 위해 선생 등의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처벌받아야 마땅한 사람을 변호하고 있는 변호사를, 인민과 국민의 전체적 안위와 행복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수상한 목적과 다른 책동을 위해 일하는 위정자를, 최고의 가격으로 최저의 것을 퍼뜨려 최대의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장사치와 기업가들을 색출해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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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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