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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의 정치 철학

저자
정달현 지음
출판사
영남대학교출판부 | 2007-10-30 출간
카테고리
교재/전문서적
책소개
개인주의와 경제행위의 자유를 지향했던 경험론자 로크. 그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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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여는 말

2. 로크의 소유론 

3. 로크 비판

4. 비판점과 대안

5. 참고문헌

 

 

1. 여는 말 

 소유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또 다가올 미래에 있어서나 참으로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수의 사람들에게 소유가 집중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서는 소유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소유의 극단은 소유를 어떻게 보느냐에 관한 경제체제적 관점의 차이에 따라 보는 관점과 해결법이 다르다. 예를 들면 사적 소유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의 입장과 그 입장에 부정적인 입장이 있겠다. 본인은 이번 장(場)에서 로크의 소유이론을 통해 현대의 소유형태는 정당성을 지니는가, 그리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소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우선 로크의 소유론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그리고 로크의 관점에서 현대 소유상태에 대한 입장을 밝혀보고, 비판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보겠다.

 

 

2. 로크의 소유론 

 로크의 소유론은 그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자연법론, 사회계약론, 정치 권력론에 이어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사회 계약론과 정치 권력론을 세워주는 기둥으로서의 자연법론과 소유론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구체적 개념은 아래와 같다. 

 

 소유는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이다. 자연권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유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 소유의 대상은 대지와 대지에 속하는 모든 것이다. 자신의 생명, 재산, 그리고 그것들을 스스로 책임지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또 만물은 공유물이다.  

 

 또 소유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소유에 속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만은 절대 의심할 수 없이 완벽한, 밀접한 개인의 천부적 소유이다. 나 자신 그 자체이며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고 죽기 전까지 영구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완전한 소유이다. 소유의 시작이기도 하고 근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육체와 정신으로부터 나온 노동, 그리고 공유물인 자연과 자신의 노동 간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어떠한 것'도 역시 그자의 소유가 된다. 

 

 로크는 그 외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 즉 소유에 속하는 것들을 생명•자유•재산의 총체라고 정의한다. 개인에게 고유하게 속한 것이라는 뜻이다. 생명에는 개인의 생명을 말한다. 이는 자연법에 근거한 것이다. 자연법에 근거했다는 말은 즉 우리가 아는 것보다 넓은 의미의 소유개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생명(또는 생존)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것이기에 생명권의 소유 또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다. 더불어 생명을 보전하는 것은 개인의 자연법적 의무이기도 하다.

 

 자유는 무엇을 행할 자유를 말한다. 얻거나 처분하는 등의 행동이다. 그에 따라 소유물 즉 생명(노동력)이나 재산(토지, 재화) 등을 버리거나 양도할 수 있다. 또 자유는 다른 사람의 구속 하에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또 자유라 함은 어떤 강제로부터의 의지의 자유일 뿐더러 행위에 대한 의지를 방해 받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권리이다. 다시 말해 자유롭게 자기의 의지를 행하는 것이다. 이 자유 역시 자연법으로부터 보장받는다. 그런데 이 자유에는 제한이 있다.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된다면 개인의 소유는 물론 사회의 유지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로크는 개인적 자유를 사회적 자유로 확대한다. 이 사회적 자유는 해당 정치체의 실정법 내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 같다. 또 로크는 이런 말을 한다. "자유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떤 구속과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이므로 법이 없는 곳(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어서 재산은 즉 재산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신체, 노동, 정신적 물질적 산물, 토지, 화폐, 물건, 자연물(공유재) 등의 재화를 말한다. 이것들이 나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체로부터 나오는 노동의 산물이 기반되어야 한다. 마지막의 자연물은 로크에 따르면 '누구의 것'일 수 없는 만인의 공유물인 상태의 것이며 인간의 부양과 안락을 위한 것이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이 상태에서 자신의 노동이 섞이면 사유재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이 재산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땅, 즉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로크는 이 자연을 어떤 차별 없이 인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인간의 생존과 편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런 소유물은 태초에 누구의 것일 수 없는 만인의 공유물이었다. 혹은 그로부터 창출되었다. 그럼 소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런 공유물로부터 정당한 소유는 어찌 성립되는가, 공유물에서 어떻게 사적 소유가 생기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로크는 그 근거에는 앞서 말한 불변의 것으로의 사적 소유물인 바로 '나 자신'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자기 신체의 노동과 정신적 작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야말로 그 행위 주체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진짜 논의는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즉 근거는 인간의 노동이다. 공유물에 자신의 노동을 섞어 무엇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그 자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공유물과 사유물이 섞이면서 사적 소유권의 근거가 형성된다. 자신의 것을 보탠다는 말의 의미는 나로부터 나오는 모든 형태의 노동을 통해 공유물을 변형 또는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로크에 따르면 노동을 통하지 않은 소유는 결코 인정될 수 없다. 

 

 추가로 로크가 모든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분제에 기초한 약탈적 소유 방식을 비판하고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적 소유의 틀을 세우고자 했다. 그런 사적 소유의 정당화에 대한 비판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 비판의 내용은 뒤에서 다룰 예정이며 아래는 소유에 대한 로크의 제한이다. 

「(1). 인간은 타인을 위해 '충분히 그리고 양질의 것'을 남겨 놓은 만큼인 만큼만 점유할 수 있다. 

   (2). '어떤 사람이든지 그것을 부패시키지 않고 삶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만큼'만 이용해야 한다. 바로 그 만큼만 그의 노동력에 의해 재산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을 초과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몫보다 많은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다.'

   (3). 정당한 점유는 인간이 자기자신의 노동력으로써 산출할 수 있는 양으로 제한된다.」  

 

 그럼으로써 로크는 모든 사적 소유를 옹호하지는 않으며 노동을 통하지 않은 소유는 결코 인정될 수 없으며 신분제에 기초한 약탈적인 소유방식만을 비판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로크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제한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길을 마련해놓는다. 우선 로크에게 두 번째 제한(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만큼 또는 부패되기 이전에 그 산물을 이용하는 것)은 화폐의 도입을 통해 극복한다. 금과 은은 썩지 않으므로 무제한으로 정당하게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특정 산물이 썩기 전에 그것을 화폐로 교환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로크는 토지와 화폐의 자본주의적 점유, 축적을 정당화한다. 

 

  첫 번째 제한의 경우는 로크는 특별한 논증을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로크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토지를 자신의 소유로 삼는 자는 인류 공동의 재산을 감소시킨 것이 아니라 증가시킨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금 더 풀이하자면 타인을 위해 남아 있는 양질의 토지를 점유함으로 토지가 부족해진다 하더라도, 점유된 그 토지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 실제로는 타인을 위해 남겨질 총량(사회적 총량)을 증가시켜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토지의 부족을 메꾸어 준다는 식이다. 여기서부터 토지 없는 자들의 노동에 의한 생계 유지 형태, 무산자의 형태가 나오는 듯 보인다. 

 

  마지막 세 번째 제한(자신의 노동력이 섞인 것만 가질 수 있는 것)은 화폐도입과 임금관계의 성립을 통해 극복된다고 보았는데 로크는 이에 대한 명백한 논증을 남겨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 부분에 대해 탐구해보자면 앞에서 다루었던 소유중의 가장 궁극에 속하는 것인 신체, 신체의 소유, 자유의 소유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임금을 대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 자기의 소유인 '신체'와 그로부터 나오는 '노동력',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을 처분(양도)할 수 있는 '자유'의 소유가 자신의 노동력을 임금을 받고 자유롭게 팔 수 있게 된다. 이를 기반하여 더 많은 노동을 하여 더 많은 정당한 소유물을 얻으며, 더욱 적극적으로 자유를 행사하여 소유를 늘리는 식으로 생각된다.

 

 

3. 로크 비판 

 로크의 이론에 대한 비판점을 축약적으로 제시하자면 첫째, 이론 속 가정의 허구성, 둘째, 앞서의 것처럼 제약의 도약을 허용했다는 점, 셋째, 불평등을 옹호했다는 점, 넷째, 상속에 관한 부분이다. 로크 이론 속의 가정으로서 있는 개념인 자연상태는 이를 가정하는 다른 사회계약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로크 역시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의 상태, 구체적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한 검토와 논리적 전개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크다. 로크 말고도 루소, 홉스에 이르는 사회계약론자들 역시 기저에는 이런 자연상태라는 비현실적이고 비역사적인 이론적 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비판점이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위적 원리를 추론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원론적 과거의 상태가 아니다. 달성해야 할 미래의 상태이자, 그 상태를 추구하기 위한 현실적인-현실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닌 삶을 위한 이론이 되어야 한다. 또 모든 이론은 일상에서 증명되어야 하며 또한 이론들은 이론어가 아닌 일상어로 환언되어야 마땅하다. 이론어는 이론과 삶을 연결해주기 위한 매개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로크 사상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자연법'과 '자연상태'에 대한 개념은 큰 비판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로크는 사적 소유의 제한을 너머 극복의 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비판의 여지가 있다. 앞서 말했듯 사적 소유에 대한 제한을 극복하고자, 즉 제한의 도약을 정당화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나 권력가의 끝없는 사적 소유를 정당화하는데 그 길을 터준 셈이다. 얼핏 보기에는 로크의 이론은 평등주의인듯한 인상을 가지나 실제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자본가의 무한한 탐욕, 권력의 무한한 탐욕, 그런 것들의 양극화 등을 옹호하며 재산 또는 권력 소유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보수적 모습을 강하게 띠고 있다.

 

 

4. 비판점과 대안 

 앞서 언급된 것처럼 로크는 소유의 제한을 두면서 동시에 제한의 극복을 주장했다. 현실의 모든 문제는 바로 이 제한의 극복가능성을 둔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듯 하다. 따라서 온건한 형태의 바람직한 소유형태를 말할 것 같으면 제한의 극복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소유형태가 있겠다. 로크가 말한 것처럼 정당성 있는 소유는 자신의 노동이 투하된 소유물이어야 한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자급자족, 가내수공업부터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기준으로 모든 소유가 자신의 노동을 거쳐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자본가의 잉여가치와 자본축적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일단 자본가는 자본주의적 집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즉 더 적은 시간(비용) 투하로 더 많은 더 많은 생산물을 창출하고자 하는데 현실에서 그로 인한 이익 대부분은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이는 노동자의 노동시간 가운데 일부가 자본가의 이윤으로 빼돌려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투하비용 중 노동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윤을 최대화하는 방법은 본질적으로 노동착취와 다름이 없다. 이런 자본주의적 착취가 그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본가의 노동이 거의 투하되지 않은 이익이다. 생산하는데 필요한 절대적 노동력의 대부분은 노동자로부터 나왔으며 그렇기에 로크에 따르면 대부분의 이익이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로크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노동이 포함된 것만이 소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자본가에게 남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로크의 원칙을 이용해 상속의 문제도 살펴보자. 간단하게 생각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나 자본이 있다면 그 속에는 나의 노동이 섞여 있을까? 전연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로크에 따르면 시초적 노동을 통해 정당하게 축적된 자본은 그 소유자가 어떻게든 처분할 '자유'를 가진다. 자신이 축적한 땅이나 자본을 타인에게 판매하든 상속하든 자유인 것이다. 그래서 제 3자나 자식에게 양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런 상속의 축적으로 벌어진 소유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로크는 개인마다 능력, 근면성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상속을 인정하게 되면 로크의 초기 원칙과는 모순되는 듯 보인다. 

 

 소유에 관한 로크의 초기의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즉 자기의 것이 되려면 그 근거,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연결고리를 생각해보자면 오로지 자신의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그 무엇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자신의 외부의 것으로부터 그 연결고리를 찾으면 말 그대로 외부의 것이기에 자신과의 단절이 발생한다. 만약 외부의 것을 들어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게 된다면 타자 또한 같은 형태의 외부의 것을 근거 삼아 자신의 소유임을 피력할 수 있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수히 많을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희소한 어떤 것을 앞에 두고 상호가 소유하고자 할 경우 외부의 기준을 두고 근거를 제시할 경우 중복이 되어 다툼이 발생한다. 그런 중복과 다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유의 근거는 고유한 것으로부터 이어야 한다. 그 시초가 오직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이 생각해볼 수 있는 유일한 하나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의 육체이다. 그리고 그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형태의 산물이 오직 나로부터 출발하는 고유한 소유의 근거가 된다. 정신적인 것, 육체적인 것, 육체와 정신의 결합적인 것이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산출물만이 나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정신적인 것의 결과는 나의 소유라고 할 수 없다. 정신적인 것, 즉 관념은 외부로 표출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 들어가 있는, 형태가 없는 것, 즉 존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의 그 정신적 노력의 산출물인 관념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신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소유물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나와 형태를 지녀야 한다. 예를 들면 문자라든지 정신적 아이디어의 결과로서의 어떤 원리의 기술, 형태의 완성이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적 표출물도 온전히 나의 육체적 노력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야만 순수한 나의 소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정신의 노력물의 표현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노동이 섞인다면 그것은 온전한 나의 것일 수 없으며 더욱이 나의 노동이 전혀 섞이지 않은 채 오직 정신적 노력의 표현물일 뿐이라면 그것은 결코 나의 소유물임을 주장해서는 아니된다. 그 표현되어 나온 결과물에는 나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고 타인의 흔적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입장에 입각하여 현대의 삶에서 소유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모든 소유의 형태를 나열하며 생각해볼 수 없으니 대표적인 자본주의에서 기업가의 소유형태, 상속을 통한 소유의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 먼저 자본주의에 있어서 기업가의 소유의 모습은 결론적으로 온전한 자기의 노동의 결과물로서 이득을 얻는 형태가 아니라 타인의 노동의 결과물을 통한 이득의 일부를 착취하는 형태이다. 현대의 경제에서 자본가는 노동을 투하하지 않는다. 말 또는 정신적인 형태로서 특정 산출물에 '입김'만을 불어넣을 뿐이다. 자본가 자체에서 나오는 육체적 노동력이 그 산출물과 섞이지 않는다. 그러면 자본가는 어떻게 해야 소유를 할 수 있을까? 자본가로서 자신의 소유물을 얻을 수 있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묘사해보겠다. 

 

 자본가 1이 자본집적적 공업을 행하기 위해서 자본을 모은다. 만약 특정 공업을 행하는데 100의 자본이 투하된다고 가정하며 이 100이라는 단위는 1인이 모으기에 빠듯한 단위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얼만큼의 이익을 얻고 싶은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초기 자본이 필요한데 이 때 자본가 1은 자신의 순수한 노동을 통해 10만큼의 초기자본을 모을 수 있다. 그 이후 이 자본가는 9명의 자본가(또는 10의 양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모아)를 모아 총합 100의 자본을 만든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200의 자본을 회수하면, 자본가 1은 200을 1/n하여 나누게 된다. 자본가 1은 20의 자본을 얻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형태의 소유와 분배이다.  

 

 하지만 현대의 자본가는 그러하지 않을 뿐더러 현실적인 자본주의의 시초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협업을 통한 200의 자본이 회수되면 자본가 1은 다른 자본가(또는 10만큼의 노동력을 투자한 노동자) 에게 20을 주는 것이 아니라 18만을 되돌려 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9명에게서 각각 취합된 2의 자본이 모여 18의 자본이 완성되는데, 그리하여 자본가 1은 20의 자본이 아닌 38의 자본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말하는 잉여가치, 자본가의 불로소득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본가는 비약적으로 시초자본을 집적할 수 있게 되며 동시에 소유 불평등의 시초가 된다. 그런데 보이는 것처럼 이 38의 자본 중 18만큼에는 자본가 1의 노동이 묻어있지 않기 때문에 절대 정당성을 지닐 수 없는 부당한 취득이다.

 

  이어서 로크의 소유론의 비판과 함께 새로운 대안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상속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앞서 주장했듯 상속은 정당성이 없다. 상속은 사회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원인이다. 상속을 통한 소유의 문제도 가장 앞에서 생각했던 소유의 원칙에 입각해서 논의해보자. 첫째, 정당한 방식으로 축적된 소유물을 상속받았을 경우, 둘째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축적된, 즉 착취를 통해 축적된 소유물을 상속받았을 경우의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어쨌든 두 방법 모두 '자신의 노동을 섞는다'라는 원리에 따르자면 정당하지 못한 소유이다. 정당하게 축적된 소유가 선대로부터 내려왔다고 가정했을 때 그 소유물에는 누구의 노동의 흔적이 묻어 있을까? 후대 사람의 노동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 소유물에는 선대와 후대 간 시공간적인 단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대의 소유물의 경우 그 당사자가 죽는 순간 뜬 돈이 되어버린다. 그 누구의 소유일수도 없다. 따라서 양도를 통해 받은 사람의 경우는 그 소유물의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정당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뜬 소유물의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이에 앞서 왜 후대는 선대의 소유물을 상속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왜 후대는 선대의 소유물을 받아야 할까?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생존을 위함일 것이다. 자립생존, 자아실현 등을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서 원할 이유뿐이 없다. 그 외의 것은 욕심, 욕망, 과한 욕구이며 욕심 등은 그 자체로 추구되어서는 안될 못된 성질의 것이다. 이는 로크의, 소유에 관한 두 번째 제한에 입각해서도 정당화할 수 있으며 그 외의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들어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상속을 받는 이유를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이유와 함께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그 이유에 가장 부합하게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로크는 정치체의 존재 목적을 그 사회의 평화와 개인의 소유를 보전하기 위함으로 보았다. 보론으로 왜 소유를 보전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상속을 받아야 하는 이유와 유사할 것이다. 상속은 즉 소유이니 소유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상속을 받고자 하는 이유와 동치될 것이다. 다시 돌아와 로크에 따르면 정치체는 각 구성원들의 소유를 자연상태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도 지킴으로써 이익을 도모하는 등 안정적인 하나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 각 구성원 개개인의 소유보전은 그 사회의 소유보전이기도 하다. 개인주의이면서 동시에 집단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제 3자인 국가가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뜬 돈을 맡길 수 있는 주체는 제3자 개인, 선대의 계보로부터 내려오는 후대 사람, 국가(정부), 마지막으로 초월자, 이렇게 네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겠는데 제 3자로써의 개인, 그리고 상속의 당사자는 모두 남용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며, 초월자 또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차선으로 국가 또는 정부가 남게 된다. 정부는 상속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게끔 사회의 토양분으로써 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립이나 노동의 시작을 위한 시초적 에너지로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소유의 축적이 아닌 소유의 선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선 순환적 구조야말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소유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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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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