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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7-04-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는 무엇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가. 프로타고라스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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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밀의 공리주의 2, 4장 참고하여 씀

 

 밀의 공리주의를 읽었을 때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요지는 무엇인가 하며 상당히 고생했다. 번역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정말로 문장을 그렇게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이 억지스럽다고 느껴질만큼 긴 경우도 있고, 어렵게 나오기도 하며, 이 말이 여기서 왜 갑자기 나오는 것인가 생각하다 보면 단어 하나 하나만 보일 뿐 문장 자체나 글의 전체적인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우선 내 나름대로 요약을 해보도록 했다.  

 

  2장의 제목은 '공리주의란 무엇인가?'이다. 밀의 공리주의는 '쾌락' '행복'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먼저 밀이 말하는 행복이란? 쾌락의 상태와 고통의 부재인 상태를 말하며, 불행이란? 쾌락이 상실된 상태와 고통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밀에 따르면 옳음의 정도(level)는 행복을 증대시킴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하며, 옳지 못함의 정도(level)는 행복에 반대되는 것을 산출하는데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리주의의 행복은 행위자 자신의 최대행복이 아니라 전체 행복의 최대량이 그 기준이라고 말한다. 이 최대행복의 원리에 따라 정리해보자면, 공리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과 질 모두를 고려했을 때 가능한 한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충분히 향유하면서도 개인의 최대행복이 아닌 전체에 대한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그런 쾌락이 그 목적이라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행복을 정하는 쾌락에는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 만약에 기준이 있지 않다면 짐승이 느끼는 쾌락과 사람이 느끼는 쾌락이 같을 수 있고 그렇다면 인간에게 선이 될 수 있음직한 생활준칙은 짐승에게도 선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짐승의 그런 욕정을 넘어 고도의 세련된 능력과 그것을 기준으로 한 쾌락 또는 생활준칙이 있다고 본다. 책에 따르면 에피쿠로스학파는 공리주의적 쾌락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에 더 우월을 둔다고 한다.

 공리주의의 원리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쾌락에는 그 기준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쾌락에도 여러 종류나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밀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공리주의는 어떤 쾌락은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며 한층 더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쾌락의 질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질적 차이를 정하는 기준은 어떤 사람에게 있는데, 그 사람은 두 개의 구분되는 또는 상반되는 쾌락 중에서 양쪽 모두를 경험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거의 모두를 경험한 사람인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도덕적 의무감이나 이해에 관계없이 그저 결연히 선택하는 쪽이 더 높은 가치의 쾌락이라는 것이다. 밀에 따르면, 양쪽 다 알고 있는 사람은 구태여 하등동물이나 바보천치가 되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설명하고 있다.

 만약에 인간이 높은 가치의 쾌락보다 낮은 쾌락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 경우에는 인간 자체가 모질지 못한 탓에 그것이 가치가 더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다 가까이 있기에 선택할수도 있고, 또는 어쩔 수 없게 된 경우(보다 높은 쾌락을 느낄 수 없게 되었을 경우 등)에 선택하는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것을 다시 반복한다면, 두 개의 쾌락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선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또는 존재의 두 양식중에서 어느 쪽이 가장 쾌적한 느낌을 주는지의 문제에 관해, 그 도덕적 속성이나 결과는 별도로 치더라도, 양쪽 모두에 대해 식견을 지닌,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 최종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며,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때는 다수의 판단이 최종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4장은 '공리원리는 어떻게 증명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밀은 행복만이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것이며, 행복만이 유일하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 이외에는 모두 행복으로 향하는 어떤 수단으로서 바람직할 뿐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그렇다면 무엇이 바람직한 것이냐?', '공리주의가 말이 되려면 가져야 할 그 근거는 무엇인가?' 라고 반문을 한다. 이 질문이 바로 "행복만이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그 '행복'은 어떤 기준이며 어떻게 증명되는가?"에 대한 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반적인 행복이 왜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근거가 자기 자신이 행복을 바란다는 사실 그 자체 외에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만으로는 부족한데, 밀이 말하길 행복이 행위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고 행복 이외에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책에서는 갑자기 덕에 관련하여 계속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덕에 대한 매우 길고 장황한 이야기들과 그 공리주의가 충족시켜야만 하는 그 필수조건(행복만을 바란다는 것을 증명하는것)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행복'의 수단으로써 말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론을 말하면, 덕과 관련된 그 장황한 고찰결과 밀은 실제로 소망되는 것이 행복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그 이외의 것은 수단일 뿐이다. 그 행복 이외의 소망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으로 향하는 것으로서 소망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행복이 수단이 되는 '금전'은 반짝이는 금속무더기 그 이상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치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인은 사실 '공리주의'를 읽기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공리주의는 다른 도덕적 기준들에 비해 나름 괜찮은 'ㅇㅇ주의'다 라고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공리주의에는 쾌락이라는 단어가 없었으며 단순히 "최대다수에게 '지속가능' '이익' '행복'을 줄 수 있는 행동이 ''이다"라고 말이다. 어떤 산술적인 도덕이었다. 예를 들자면, 제동기가 고장난 전차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데 멀리서 5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옆 비상철로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1]. 하지만 비상철로에는 인부 1명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대로 질주를 하면 -5, 비상철로로 방향을 돌리면 -1, 그러니까 가치적으로 보자면 비상철로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최대다수에게 지속가능한 이익과 행복을 준다고 본 것이다. 만약에 전 세계 인구가 100명이라고 가정하고, 그 열차사고로 95명이 남는 것과 99명이 남는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99명이 살아있을 수 있는 세계를 택할 것 같다. 그것이 훨씬 그 사회에 전자보다 더 최대다수에게 지속가능한 이익과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만약에 그 죽은 1명이 99명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50명이 죽을 일어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위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 5명보다 그 1명이 더 그 사회의 최대다수에게 지속가능한 이익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에 대한 결과는 앞에서 배운 이중결과 원리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이것이 나는 공리주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그렇게 단순한 공리주의가 아니었으며 이번 계기를 통해 내가 찾고자 하는 도덕적 기준은 어떤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1] 마이클샌델, 이창신 옮김,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p.3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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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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