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정리한다. 졸업 후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여... 오늘의 글은 시장의 철학의 핵심 논쟁에 관한 글이다.
'시장'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문명이라 할만한 인류사회의 태동 이래로 계속 함께 해온 것이라 할수있다. 그 긴 인류의 역사이자 시장의 역사 속에서, 시장의 철학에서의 중점적 논쟁은 19세기 전 후의 것인데, 시장에 관한 이론이 나온 시기가 이때이기도 하다. 당시 19세기의 대세는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시기였으며 산업혁명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때의 시장질서에 관한 사상은 자유방임주의, 자유에 입각한 고전적 자본주의가 토대를 이루었다. 이는 프랑스혁명 등 시민 스스로가 쟁취한 사적 소유, 상업의 보장이라는 자유의 쟁취, 즉 자유주의적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러한 고전적 시장질서에서는 심각한 모순점이 있었으니...
맑스에 따르자면 빈익빈 부익부, 빈곤과 기아, 인간소외 등이 그러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반(反)시장적 사회주의, 그리고 질서 자유주의 등이었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여러 모순점과 고전적 경제체제의 성장한계에 따른 대안은 사회주의나 질서 자유주의가 아닌 케인즈식 수정 자유주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역시도 문제가 있었는데, 국가가 개입하여 통화를 조절하고 수요를 창출하는 등 국가가 시장을 밀어주는 형식의 이 수정자유주의도 모순점을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문제를 극대화시키기에 이른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나온 대안이 지금의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허나 이 신자유주의 역시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경제, 그리고 여기서 기인하는 '돈으로 돈을 버는 현상' 등이 더 심화되면서 폐해를 극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시장의 변천사를 보자면 사실 지금까지의 시장문제에 대한 대안적 방법들은 시장의 모순점(이를 인간적 모순점이라 표현하고 싶다)을 극복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내재된 '성장의 한계', 그리고 '이윤율 하락의 법칙'이라는 필연적 경향성의 구조적 모순점을 해결하기 보다는 애써 때우는 식의 처방이었다. 종합하여, 시장에 대한 위와 같은 일련의 방법들은 공통적으로 '큰 국가, 작은 시장' 과 '작은 국가 큰 시장'이냐에 관한 것이었으며, '자유가 먼저냐, 평등이 먼저냐'에 관한 논쟁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유질서가 먼저이냐 평등의 민주질서가 우선이냐 하는 것이리라.
'시장의 철학'에서 바라보는 이 문제는 다음과 같다. 현대 사회의 자유민주주의라 일컫는 정치 및 경제 체제는 그 자체로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으로 인해, 모순을 에너지 삼아 현대사회가 역동성 있게 진보해나간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와 민주는 서로 동 근원적이지만 서로가 가고자 하는 지향점은 결코 공약불가능하여 갈등이 있을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개로 있던 자유와 민주의 이념이 한께 가는 순간, 그래야만 진보가 있을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또한 있는데, 자유가 먼저이냐 민주질서가 먼저이냐는 대립이 있다고 할때 자유가 가장 선차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와 시장, 자생적 시장질서를 망각한 한국진보와 한국 보수들이 행하는 지금의 난맥상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시장질서에서 말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유와 자유시장이 지닌 자율성, 시민사회, 신뢰, 계약 등의 속성은 현대 인류의 "현대"성을 구성하는 아주 근본적인 것, 즉 자유와 시장은 곧 현대성과 같다는 말인다. 따라서 이들을 잠시 유보한 채 진행되는 어떠한 대안적 이론들도 결국 현실성과 현대성이 결여된, 실현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시장의 모순과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라는 근본이념을 함께 가져갸아 한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자생적 질서와 위계적-인위적 질서를 비교했을때 자생적 시장질서는 위계적 환경(이를테면 소련이나 북한)에서조차 자생하였으며 결국에 인위적 위게질서는 역사적으로 실패했음이 증거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의 시장철학이 문제가 없고 설득력이 충분한가를 생각해보았을때 꼭 백퍼센트 그러하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내려가 자유주의의 핵심인 재산권, 소유의 문제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유주의에서 발생하는 "모순"들이 과연 모순이라고 불려야 마땅한지, 아니면 자유라는 것 자체가 모순덩어리는 아닌지 고민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시장의 철학'에서의 갈등이 꼭 평등, 즉 민주주의와 시장, 즉 자유주의간 대립의 구도를 그리고 있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볼만한 것이다. 우선 자유주의의 핵심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유권, 그리고 자유의 행사가, 말 그대로 열린 자유인가 했을 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순간 분명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자유' 대 '자유'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유의 제한으로써의 법률과 계약이다. 이 역시 자생적 질서(cosmos)에 해당한다. 즉 공생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유의 제한이 있을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에서는 자유와 제한이 본성적으로 공존할수밖에 없음이 자명함이다. 자유시장에서의 가격의 문제도 그러하다. 가격을 자생적 질서에만 맡긴다면 '가격'이 물건의 순수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원가 이하 처분'이라던가 독과점에서의 '거품 가격'이 그러하다. 사실상 '가격'이라는 것은 물건의 순수가치를 반영해야함이 마땅한데 자생절 질서에만 기댄다면 그 반영이 불가능하다. 하여 계획경제, 즉 자유의 제한이 필요한 이유가 나온다.
결론적으로 시장의 철학에서 말하는 자유, 자생성, 자율성의 개념은 아주 중요한 근본이념이며 무엇보다도 선차적이라는 것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알아두어야 할 것은, 현대 시장질서에의 문제는 사실 자유와 평등의 대립구도가 아닌 자유를 바탕으로, 즉 자유의 발판위에 선 이기심과 비 이기심의 대립구도로 보아야 하며, 또는 개인성 또는 개인주의와 공공성과의 대립이라는 사실이다. 자유라는 중핵적 이념이 없는 상태에서는 논쟁조차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바로 앞서서의 '법률'이나 '계약'을 통한 자유의 제한이 자유시장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필연적이며, 자유를 얼마나 제한할 것인가와, 그리고 이를 통한 공공성, 공동체주의, 인간성의 회복을 향한 투쟁이야말로 시장의 철학에서의 핵심적,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자본주의와 시장의 철학에 남은 핵심적 과제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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