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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1998)

Good Will Hunting 
9.2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로빈 윌리엄스,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스텔란 스카스가드, 미니 드라이버
정보
드라마 | 미국 | 126 분 | 1998-03-21

감명깊게 본 영화 한 편이나,


또는 소설이나?


그런 것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올 수 있을까?


여태 수 많은 영화를 보아 왔으며 또 많이도 감동 받아 왔지만 여전히 내 삶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답답하다. 용기를 가져라. take a chance! 등등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다르다. 혹은 잘못 알고 있기에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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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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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래비티 gravity .


근 몇 년 만에 만나본 최고의 영화!


이렇게 또 아름답고, 그렇게 또 몰입감 있게 보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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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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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넥더키 뉴욕, 모범시민.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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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The Devil Wears Prada 
8.7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출연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스탠리 투치, 에밀리 블런트, 애드리언 그레니어
정보
코미디 | 미국 | 109 분 | 2006-10-25



영화-“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 주인공(앤디)의 직장생활과정에 대한 고찰과 평론.

 

 앤디는 패션잡지사에 입사를 하면서 그곳의 편집장의 명성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채,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면접을 보러 간다. 사회 초년생인 만큼 지원을 한 회사에 대한 기본적 예의를 잊은 듯 보인다. 입사 면접을 보면서 입사를 하는 회사에 대한 비전이나 목적, 인지도가 어떠한지 전혀 모르고 지원한 지원자를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신선한 당당함이 편집장으로 하여금 그녀를 등용하게 만든다. 직장생활을 위해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소신을 버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지 모든 것을 버리지는 않았으며 편집장의 권위에 굴하는 모습보다는 노력을 통한 성공적인 과업 수행으로 편집장에게 당당할 수 있었다.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과업수행에 성공적이면서 동시에 앤디의 외양적 모습도 함께 점점 대담해진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자신의 속내를 감추었다고 볼 수 도 있으며 마지막에 이르러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녀는 진짜 자신의 소신을 발휘한다.

 

2. 주인공(앤디)의 직장인의 이미지메이킹 관점에서 패션코디스타일의 변경전후에 대한 평론.

 먼저 패션잡지 회사라고 하여도 그 회사 내의 직장인들마저 스타일리스트일 필요는 없었으리라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맡은 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상태를 갖추는 것이다. 복장에 있어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군인으로서 훌륭한 과업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윤기가 흐르는 군화와 반짝거리는 바클, 줄과 각이 칼날같이 선 잘 다림질된 군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사광을 차단하는 윤기가 없으며 표면이 거친 군화,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빛나지 않는 무광의 바클, 위장에 효율적일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주름과 구김이 진 군복이 필요하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으로서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윤창출과 지시 받은 과업의 효율적인 수행 등이 그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과업수행자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할 상태인지가 중요하며 그 상태에 복장 역시 포함된다. 과업수행에 방해가 되거나  실용과는 거리가 먼 복장을 입는다는 것은 안될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고 이미지 메이킹의 관점에서 보자면 패션 변경 전 앤디의 첫 인상은 긴 치마와 편안한 스웨터를 입은 편안하면서도 가볍지 않았으며 산만하지도 않았다. 청결과 조화를 갖추었고 특별한 개성은 없으나 과업을 수행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복장이었다. 표정, 인사, 목소리 등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즉 복장이 문제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편집장의 분위기가 그렇지 못하였으며 앤디는 그 분위기에 적응하기로 한다. 패션 변경 후 앤디의 인상은 점점 업무의 효율성과는 상관없이 그 사내의 분위기와 편집장의 비위에 맞추어 겉치레를 중시하는 복장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차림새가 요란해질수록 앤디의 과업수행에 자신감이 붙으며 능력도 인정받기 시작한다. 복장의 변화속도와 업무의 적응속도가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편집장과 사내 직원들은 앤디의 변화된 외양적 모습을 보고 앤디의 능력 역시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변했으리라 여기는 듯 행동한다. 결론적으로, 외모나 복장등의 외양적 이미지가 주변인들의 인식변화에 대한 물리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화학적-정신적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3. 편집장(미란다)의 리더십에 대한 장단점.

 편집장에게는 관료제 조직속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직장에서 부하를 다루고 유지하며 체득된, 자신의 과업수행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고정된 원칙이나 신념이 박혀있다. 이런 배경에서 생긴 그의 리더십은 흔들림없이, 추진력있게 직원들을 이끌어나간다. 권위형 리더십에 해당하는 것이다. 편집장은 암묵적으로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다. 일방적 지시와 일방적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단지 그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신 있는 확실한 행동으로 신뢰감을 준다. 그리고 행동에 대한 보상(신뢰를 줌)을 통해 부하직원에게 내적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편집장의 그런 모습에 대한 장점으로는 관료적 사회에 있어서 신속한 의사결정과 추진력 있는 행동이 있겠다. 어느 정도 신뢰감을 형성하는데 득이 된다. 시간이 돈이며, 또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입장에서는 이러한 추진력있고 빠릿빠릿한 권위형 리더십이 큰 장점이 되겠다. 하지만 인격적 대화가 단절되고 거부감, 적개심, 반항심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에 자기주장이 강한 현대사회에서는 언제나 바람직한 리더십은 아니라는 점에 그 단점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편집장의 일방적 지시와 일방적 평가와 같은 권위적 리더십의 결과가 조직 전체에 부정적 결과가 아닌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때문에 조직원 전체에게서 권위에 대한 반발심이 아닌 권위에 대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4. 편집장(미란다)의 리더의 이미지메이킹 관점에서 외적이미지인 패션코디스타일에 대한 장단점.

 다소 사치스럽고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미지메이킹의 관점에서 보자면 편집장은 어두운 톤이나 고급스러운 계열의 차림새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한층 강화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이는 3번에서 말한 권위적인 모습을 살리고 리더십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이 있으나 역시 3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단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그의 차림새는 친절함, 친밀감, 인상등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것 같다.

 

5. 리더(미란다)의 화법특징과 직원(앤디)의 화법특징에 대한 장단점

 리더인 편집장의 화법특징 : 편집장은 대화에서 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입장이다. 항상 경직되었다고 표현할 수 도 있고 바르다고 표현할 수 도 있는 그런 자세를 지녔으며, 상대방과 눈을 마주보며 정확한 발음으로 명확한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편집장의 화법은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신속정확하고 명료하여 업무효율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명령조로 들리기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느껴지거나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껴 반감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단점이 있다.

 직원 앤디의 화법특징 : 앤디는 대화에서 주로 지시를 듣는 입장이다. 항상 경청하며 밝고 명량한 표정이다. 그리고 대화를 하며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눈은 항상 대화하는 사람과 마주보며 적극적이다. 발음과 표현은 편집장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고 명료한 편이다. 목소리에 힘있고 자신감이 드러난다. 하지만 직장상사에게 예의를 차린 경어나 이와 비슷한 호칭을 쓰지 않고 다소 가벼운 어투를 구사한다. 때문에 신뢰와 자신감이라는 장점이 드러나지만 때로는 가볍거나 건성으로 대답하는듯한 이미지를 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영화가 만들어진 곳의 문화나 언어번역상의 차이로 정확히 앤디나 편집장의 화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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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 (2003)

Good bye, Lenin! 
8.4
감독
볼프강 베커
출연
다니엘 브륄, 카트린 사스, 마리아 사이몬, 슐판 카마토바, 플로리안 루카스
정보
코미디, 드라마 | 독일 | 120 분 | 2003-10-24




트라비에게 갈채를 (1992)

Go Trabi Go! 
0
감독
페터 팀
출연
볼프강 슈툼프, 클라우디아 슈무츨러, 마리 그루버, 콘스탄틴 베커, 바바라 발렌틴
정보
코미디 | 독일 | 95 분 | 1992-02-29



무단 스크립 / 인용/ 참조 금지 
평점
굿바이레닌 : 8점/10점
트라비에게 갈체를 : 6.99점/10점 
 
두 영화 모두 독일의 통일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다. 차이점이 있다면 「굿바이 레닌」은 독일의 분단 시점부터 통일의 시점까지를 서술하고 있는 것에 비해 「트라비에게 갈채를」은 통일 후에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1. 영화 「굿바이 레닌」의 줄거리.
 동독의 열렬한 공산당 가정의 통일전과 통일 후의 변천사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열렬한 공산당원 어머니와, 그녀의 아들과 딸, 그리고 그들의 주변사람들이 등장한다. 통일이 되기 이전에 그들 가족은 잘 살았다. 그러나 아들 알렉스가 시위도중 경찰에 잡혀가는 모습을 본 그의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그 사고가 있은 후 8개월 만에 쓰러졌던 어머니는 일어나는데, 그 8개월이라는 세월동안 동독의 세상은 너무나도 변해있었다. 통일을 한 것이다. 어머니를 처방한 의사는 심장마비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면서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함을 경고한다. 아들은 열렬한 공산주의 교사인 어머니가 공산주의가 사라진 독일의 통일을 알게 되면 충격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모든 사실에 대한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는 이 사실을 모른 채 한동안 침대 위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밖을 나서게 된다. 다행히 아들 알렉스는 어머니를 추스르는데 성공하지만, 얼마 못가 심장병이 재발해서 다시 입원을 하게 된다. 입원한 뒤 알렉스의 여자친구는 알렉스의 어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말한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알렉스는 자신의 연기의 마지막을 계속해서 준비한다. 알렉스의 계획은 국가적 기념일에 맞추어 서독이 동독에 흡수 통일된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뉴스화해 어머니께 틀어준다는 것이다. 이는 아들 알렉스의 꿈이기도 한 것이다. 이 가짜 비디오뉴스를 보는 어머니는 아들과 TV를 번갈아 바라보며 살며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얼마 못가 어머니는 죽는다.

 영화에서는 통일 후 동독의 여러 가지 어려운 실정이 나타난다. 먼저 직업이 있던 사람들은 실직을 하게 되거나 블루칼라 직으로 전락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때 우주비행사로 유명했던 사람이 통일이 된 현재에는 택시운전이나 하게 된다. 동독의 회사들은 많이 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실업자도 많아진다. 주인공 아들은 동독에서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서독의 비슷한 업종의 회사로 재취직하게 된다. 그래서 동독사람들과 서독사람들 사이의 괴리감이 나타나기도 한다.


2. 영화 「트라비에게 갈채를」의 줄거리.
 영화는 독일이 통일된 즈음에, 동독에 살던 교사 우도와 그의 아내 리타, 그리고 딸 리타는 고물자동차 트라비와 함께 이테리로 여행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그러나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트라비를 타고 다니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트라비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 하기도 한다. 로마에서는 날치기 도둑한테 카메라를 빼앗겼다가 오히려 그 도둑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얻게 된다.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하며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 모두 어쨌든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영화는 우스운 상황설정을 통해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 웃음들은 대게 트라비라는 고물 자동차를 통해 발생하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트라비가 고장이 나서 멈춰서기도 하고, 수리할 부품이 없어서 많은 돈을 들여 부품을 사야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세워둔 자동차를 폐차시킬 차로 오인하기도 한다. 또 서독사람들은 트라비를 마치 장난감 보듯 대한다. 그리고 그들을 거지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독사람들과 동독간의 괴리감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서독인들이 동독인들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그런 면이 드러난다. 이는 아마도 서독에 비해 크게 낙후되어있는 동독을 살리기 위해 서독의 많은 재정이 소모되기 때문일 것이다. 서독인 자신들을 위해 쓰여야 할 자본들이 동독에게 투자되고, 그렇게 투자됨에도 실업과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동독과, 그런 동독에서 사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만만 많은 그런 동독인을 바라보는 서독인들... 그런 것들이 서로간의 불신을 만든 것 같다.


3. 두 영화가 시사하는 점.
 그럼 이 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두 영화 모두 앞서 독일의 통일문제를 다루었으며, 영화에서는 통일 후 발생한 않좋은 현상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비추어 주었다. 「굿바이 레닌」은 한 가정을 통해 독일사회의 통일 전후의 변천사와 통일이 동독에 끼쳤던 영향을 보여주었다. 또 어머니를 지키려는 아들의 노력, 그리고 분단에서의 갈등을 보여주었다. 과연 감독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에 비해 「트라비에게 갈채를」은 단순히 웃음만을 유발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내게「굿바이 레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음에 비해 이 영화는 분단과 통일 후의 상황을 너무나도 가볍게 소화시키는 것 같았다. 마치 삼류풍의 영화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러한 영화적 요소를 그렇게 과장되도록 단순하고 가볍게 소화시키는 듯 보이는 연출이 감독의 의도된 역설인 것일까? 그렇다면 감독은 무엇을 역설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답은 찾아내서 개념화 할수가 없었다.


 두 영화 모두 같은 영화적 요소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으나 하나는 진지했으되 하나는 가벼웠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적 요소를 갖고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저 서독과 동독의 분단 상황과 독일통일후의 상황이 비교되었으며, 특히 통일 후의 많은 문제점이 부각되어 드러났다. 나는 그렇게 들추어냄 자체가 영화와 감독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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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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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스크립 / 인용/ 참조 금지

제발좀...
 
이 영화는 이라크의 추운 겨울, 살기위해 힘들고 위험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쿠르드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되는 소년 아웁과, 시급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게될, 아웁의 형제 마디, 그리고 여동생 아미네가 나오는데, 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돈벌이에 뛰어든다. 밀수업을 하는 아버지 혼자서는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후에 밀수업을 하는 아버지가 돌아가고, 삼촌의 집에 맡겨진 아웁은, 형제 아웁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말에 밀수업자들의 심부름꾼이 되어서 돈을 벌기로 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강도들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영화는 아웁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그 대가로 받은 노새를 이라크로 가서 좋은 값에 팔기 위해 국경을 넘는 위험한 모험을 끝으로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아웁은 그 노새를 이라크로 가 좋은 값에 팔아 그 돈으로 마디의 수술비를 마련해주고자 한 것이다.
 
영화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순수한 쿠르드족 토착민들이라고 한다. 나는 첫째로, 비싼 몸값을 내야하는 스타급 연기자가 없이도 높은 가치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데에 이 영화의 의의를 두고 싶다. 우리에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아마도, 우리에게는 연기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소소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어색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크루드족들의  생활상이 담겨졌던 것이다. 그들의 삶 자체가 내겐 연기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 나에게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같이 느껴졌다. 영화의 제목인 ‘취한 말들의 시간’은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는 영화를 보고나면 알 수 있는데, 밀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말에다가 술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들은 혹독한 눈보라를 견디며 전진해갈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쓰기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그저 멍해졌을 뿐이다. 이것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그냥 멍했다. 心이 심히 공허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한겨울의 혹독한 눈보라를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일까? 영화의 배경은 분명 낭만적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있어서, 영화를 보는 관객에 있어서의 무지의 낭만이었을 것이다. 쿠르드족의 힘든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면 그것은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 되버 리는것 아닐까? 혹은 전쟁과, 인간과 인간간의 갈등에 대한 혐오심에 대한 증폭을 불러일으켜 왔고, 역시 평화는 필요하다는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고 해야 할까? 다들 너무 진부한 표현이고, 너무 진부한 느낌이다. 하지만 남들이 다들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느낀 것이다. 다만 언어적 표현 스킬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을 뿐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 10점 만점에 8점.(적극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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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2008)

The Mission 
 8.9
감독
롤랑 조페
출연
로버트 드 니로제레미 아이언스레이 맥널리에이던 퀸쉐리 런기
정보
드라마 | 영국 | 125 분 |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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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게 찾아본 영화다. 어디서 빌려보기도 그렇고 해서 부득이하게 반합법적인 방법으로 영상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내용은 내가 알고있던 선교영화물과는 달리 상당히 가치중립적이고 참신했다. 마지막의, 마치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전쟁장면 또한 영화에서의 영화적인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줄거리를 대충 말하자면ㅡ 과

거 서양사람들의 종교를 미끼로 내세운 서양사람들의 침략정책과, 이로인한 한 부족의 멸종사를 보여주고있다. 서양종교의 침략적 구실이라는 본질을 부각시켜준다.
 
영화 10점만점에 8.5점(적극추천)
 
더 깊은 생각함을 위해 몇가지 질문들을 제시하고 답해보았다.
첫째,복음이 행복을 가져오는가?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도 보여주듯 복음은 피를 요구로 하는 행위다.
  물음음을 생각하면서 이라크에 납치되었던 선교원들의 일이 떠오른다. 처음 이라크로 갈때는 선교라는 명목으로 갔지만, 돌어올때는 자원봉사라는 명분으로 바뀌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돌아온 뒤에는 다시 복음, 즉 선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둔갑해보렸으며 그들은 열렬한 교회신자들에게는 영웅이 되버렸다. 그 얼마나 오만하고 파렴치한 일일까? 개탄할 일이다. 그들의 선교 역시 피를 요구로 했다.
 영화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피를 요구로 했다. 복음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런것 같다. 복음을 통해 얻는자가 있는가 하면 그 복음을 통해 잃는자도 있다는것 말이다. 생각하건데, 나는 복음을 전파받기 전에 밀림에서 생활하던 그때의 원주민들의 삶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십자가때문에 부족이 멸족하지 않았는가?
 
2. 복음화가 곧 문명화인가?
-반은 옳고 반은 틀리다. 복음화는 물질만능주의화다. 그들의 종교와 사상은 자연을 지배하고 짓밟으려는 서양사상과 잘 어울린다. 서양에서 교회와 가톨릭, 기독교와 같은 계통의 종교가 발달한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일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것만이 선교인가?
-일단은 아니다라고 말해야겠다. 선교는 정치적 도구로써 쓰인다. 어째보면 정치적 용망을 내재한 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비단으로 꾸민것이 선교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선교를 하는 사람조차 그러한 선교의 본질일지도 모르는 현실은 모르는것이 현실이다. 선교란 선교사들의 나라에서 선교를 당하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써먹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고 식민화, 노예화 시키는 것이다. 선교는 그들 자신에게서 갖고있는 민족 우월주의에서 행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선교를 하는것에 있어서 그 선교를 하는 사람의 문화, 사상, 관습등이 함께 전파된다.
 
4, 문명화가 원주민을 행복하게 했을까?
-아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문명화가 시작될 처음에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 미래적으로 볼때 그것은 더욱 빠른 파괴로 이르는 길이다. 시공간의 모든것은 엔트로피 법칙대로 간다. 유에서 무로 가는 일종의 소멸의 연속이라고 말하면 쉽겠다. 문명화는 이러한 소멸의 속도를 증대시킬 뿐이고, 문명화된 인간들은 결국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석유부족, 식수부적, 식량부족, 등등 지금의 현대문명처럼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결과다.
 
기독교 선교에 대해서 본인은 크게 부정적이지도 않고 크게 긍정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부정적인 편에 더 관심이 간다. 부정적인 것이 있다는것은 그 자체로서 완벽하지 못하다는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교가 없어졌으면한다. 진정 기독교사상이 진리라면 이종교 저종교 갈라지고 분쟁이 일어나고 하는것이 없어져야 할것이다. 그리고 여타 수많은 고대 종교와 마찬가지로 고대 이스라엘의 시골변두리에서 창조된 종교가 아닌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기독교와 같은 사상이 일어났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서로간에 자신들만의 사상을 주장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자신들이 믿는 진리를 함께 따라줄 사람들을, 전도가 아닌 기다리는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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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 (2004)

Fahrenheit 9/11 
9.3
감독
마이클 무어
출연
마이클 무어, 조지 W. 부시, 벤 애플렉, 바바라 부시, 빌 클린턴
정보
전쟁, 다큐멘터리 | 미국 | 123 분 | 2004-07-22

 

 미국의 부시와, 부시행정부와, 부시행정부의 911 테러에 대한 대응방식과 이라크 침공등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실정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 다큐멘터리의 영화다. 먼저 이 영화는 감독의 주관적인 해석이 매우 진하다는 거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영화는 처음부터 부시 행정부 출범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알지 못했던 사실들였다. 부시家가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해 흑인들에 대한 튜표권을 박탈하는 모습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개념을 가장 많이 써먹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치졸하게 보였다. 911테러는 이슬람의 테러조직이 4대의 비행기를 탈취해서 자살테러를 저지른 사건이다. 이 테러는 고작 수천명의 미국인만을 죽였다. 여기서 감독은 부시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혹 미국이 전쟁을 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수천명을 희생시킨 것은 아닐까? 미국은 이에 보복전쟁을 한다. 표면적인 목적은 테러리스트 숙청, 대량살상무기 및 생화학무기 제거라는 것이지만, 미국이 호언한 만큼 테러리스트들은 쉽게 뿌리뽑히지 못했으며,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무기와 생화학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을 위해 내세운 명분은 미국이 석유자원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기만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을 해보도록 했다. 과거 이스라엘민족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강제로 점거하여 토착민들을 내쫏고 국가를 세운다. 약속받은 땅이라는 절대 비논리적인 명분하에말이다. 침략을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평화스럽게 자연정착을 통해 서서히 땅을 침식해나갔다는 설도 있고 하나님의 힘을 바탕으로 전쟁을 수행해 신속하게 점령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 당시 만들어졌던 이스라엘은 바빌론 포로기를 겪으며 완전히 와해된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이슬람 종교국가에 둘러쌓인 홀로 유대교국가이다. 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스라엘사람들은 그곳에 다시 나라를 세우려고 한다. 반인도주의적으로 재침략을 한것이다. 그때도 역시 약속된 땅이라는 억지를 무기로 감행한다. 당시는 강대국들의 지원, 특히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재건을 했다. 이에 주변의 이슬람국들은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어 중동전쟁을 몇차례 일으켰으나 미국의 방해공작에 이슬람국들은 패배한다.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중동에 있어서의 권력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기반하여 튼튼히 지켜졌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라크전쟁은 자신들의 나라와 자신들의 정당한 주권을 지키가 위한 이슬람권 국가와(그중 이라크), 중동의 패권을 손에 쥐고 석유확보와 군수산업으 부활을 목적으로 한 기독교권 국가(이스라엘, 미국, 특히 미국)과의 종교적 갈등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감독의 눈에 의하면 부시는 부정한 방법으로 집권했다. 그리고 911테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그대로 방치를 했따. 그리하여 결국 원하던 대로 수천명의 미국인이 죽음으로써 전쟁의 명분을 얻는다. (당시 부시는 놀기에 바빴으며 테러발발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 놀고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와있던 테러용의자들인 빈라덴 일가를 출국시킨다.) 이제 미국은 고작 수천명의 의도된 타살을 핑계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라크를 침공한다. 고작 수천명의 죽음때문에 수십만명의 고통받게끔 한것이다. 미국은 UN의 승인도 받지 않고 전쟁을 수행했으며,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지도 못했을뿐더러ㅡ 그토록 정의를 원하던 그들은 역석적이게도 부정의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감독의 시선이 대체로 논리적이라 본다.
 
영상물 평가: 10점 만점에 7.5점(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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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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