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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는 교육의 사회통합 기능 내지 정치적 기능이 중지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던, '개천에서 용난다' 라는 말이 더 이상은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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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본연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통용된다.


1. 건강한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과 수준 높은 전문지식 함양 기회 제공

2. 사람됨의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변화에 헌신하는 동량을 길러냄

  ->교육의 어떤 내재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현실은? 학교나 대학에서 교육 본연의 기능의 상실된 채,

1. 경제적 기능만을 강조

2. 자연 공교육의 정치적 기능 부정, 교육 본연의 기능이 외면되는 환경 조성.

3. 교육의 계급화를 격화시키는 장소로 변화됨

->교육의 어떤 내재적 가치가 중시 안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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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향으로 인해 발생되는 지금 교육현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1. 교육의 계급화로 사회통합 기능을 약화시킨다. 이는 교육이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는 커녕 격화시키게 된다.

2. 교육 본연의 가치가 뿌리내릴 여지를 원천적으로 말살한다. 이로 인해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에 필요한 사상과 지식을 생산, 전파, 인재육성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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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앞서 가장 처음 서술하였다시피 교육에는 그 본연의 기능이 있는데 지금의 교육현실은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여 두번째 경향과 같은 교육현실의 문제가 발생하였. 이처럼 지금의 교육현실이 위와 같이 내재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1. 기업의 탐욕 : 정부가 공교육 재정을 감축하게 되면 자연스레 공교육의 양질이 지금의 교육현실과 맞물려 떨어지게 된다. 이는 곧 피교육자들의 '교육'이 민영화, 시장화 될 것이다. 곧 말할 부유층의 탐욕으로 인해 학교는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게 되고, 그 학교의 탐욕코스를 통과한 부유한 자녀들이 채워진 기업들은 역시 그 동안 탐욕을 위해 소비한 것을 채우기 위해 또 '기업' 또는 '경제인'으로서 탐욕을 행하거나 지지하게 된다.


2. 부유층의 탐욕 : 정부의 공교육 재정감축으로 인해 공교육의 양질이 저하된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교육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속칭 부유층의 가정에서는 이런 사교육을 충분히 부담할 수 있게 된다. 또 학교의 탐욕에 따라 등록금도 비싸질 것이다. 부유층은 이러한 비용 역시 부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부자학교, 부자대학이 탄생하게 되고, 이것은 또 탐욕적 기업과 탐욕적 학교와 연결되어 부자계급의 지속이 가능하게 된다.


3. 학교와 대학의 탐욕: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교육현실로는 공교육만으로는 어림없고, 등록금은 너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기 위해서는 가정배경이 높은 집안의 학생이거나, 어떻게 해서든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게 된다. 이는 곧 가정배경이 높은 집안의 학생이거나 어떻게든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만이 기업이나 지배계급에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학교는 부유층의 탐욕을 이용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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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보자면, 보면 인간의 탐욕이 가장 근본적인 시작점이며, 애초에 교육이라는 것이 그것을 통제하고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가는 순기능을 해야 하지만, 그 기능을 해내지 못하는 교육에 의해 인간의 탐욕은 억제되지 못하여 계속 사회속에서 '사람의 탐욕~>정부~기업~부유인~학교~등등' 돌고 돌며 악순환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세대의 선인들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그 삐뚤어진 상황을 방치한 채 오히려 계속 진행해왔다. 바로잡기 위해서는 잘못된 단추에 껴진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한 것인데, 그 이미 껴진 채 자리잡은 기득권자들은 희생하기를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잡기는 더 힘들어지며 힘들기에 바로잡기를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고 시간은 또 계속 흘러간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삐뚤어진 단추는 점점 더 멀리 나아갈 것이며 그럴수록 바로잡기는 더 힘들어진다는 악순환에 또 빠진다. 더 나아간다면 과연 이게 삐뚤어진 것인가(옳은 것인가), 굳이 바로잡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결국에는 그 삐뚤어진 게 옳은 것이 되어 버리는 '새드엔딩의 지속'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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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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