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만족스러운 제품이다.

가격은 60500원을 주고 샀다. 적당한 가격…

겉감은 면이다. 그래서 흙먼지가 좀 잘 탄다.

물통 자리가 사이드에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아쉬운 점은 물통자리에 보냉시트가 없다는 점이다. 보냉시트까지 있으면 딱인데… 그리고 군데군데 D형고리가 있어 편리하다.

단점: 이 모델은 에깅용이라 그런지 전면부에 수납할 수 있는 부분이 가로로 나열되어 있다.(노란색 동그라미 표시 부분)

그리고 다이와 로고가 검은 회색으로 되어 있어 디자인 포인트가 잘 안드러난다.

나는 바다볼락&민물배스 용으로 구입했다. 씸플하야 마음에 든다.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정말 마음에 드는 펜이다.
닙: 스텐 로즈골드에 ef이다. (물론 f도 샀다..)

사이즈: 남자 손에 쏙 들어온다. 캡을 껴도 좋고 안껴도 좋다.

필감: 플래티넘 프로시언 f와 유사하다. 프로시언이 플래티너므ef~f 라인 중에는 비교적 부드럽거든. 그렇다고 파카처럼 버터필감을 주는 건 아니고, 일제 특유의 까칠함과 파카 특유의 버터스러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잘 이루었다.

파카는 부드러움을 얻는 대신 세필은 희생해야 하고, 세일러는 세필을 얻는 대신 거친 필감을 감수해야 한다. 이 트위스비는 그 사이에 적절히 틈을 파고 들었다.

현재 트위스비 로즈골드(10만원 초반대) 라인업만 총 3자루 가지고 있는데, 품질이 상당히 일관되다. 즉 ef는 ef끼리 일관되며, f는 f끼리 일관된다.

반면 파카를 예로 들자면 파카 펜만 5자루가 있다. (스텐,14k,18k 등) 그런데 파카의 이러한 중저가 라인은 품질이 엉망이다. 일관되지 못하다.  그 점에서는 늘 일관성을 유지하는 트위스비를 칭찬하고 싶다. 디자인도 너무 예쁘다. (세일러도 일관된 품질을 보여준다)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 불편하다.

구입한 모델은 CFCS-145이다.
가격은 8만 4천원이다.

앞 쏠림이 상당히 심하다. 그립부가 상당히 짧아서 파지가 매우 불편하며 사용 시 손목 피로를 금방 일으킨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안정적인 파지감은 저가 라인인 펠릭스 모델(4~5만원대)이 월등히 낫다.. 120을 쓰다가 150을 써보고 싶어 구입한 것이거늘..

신제품인데 이리 실망을 주더냐..

아부가르시아 신제품 개발자는 혼 좀 나야 하겠다.


아래: 기존 저가 라인 펠릭스와 파지감 비교.


혹시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거든, 색이 마음에 안들더라도 색 포기하고 그냥 저가 펠릭스를 살 것을 권한다. 2021 신제품 펠릭스 컬러즈는 가격 값을 못한다.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위: 아부가르시아 케이지필드 펠릭스 낚시대이다.
모델명: CFFS-120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총 길이는 120cm이다.
구멍치기용으로 가장 적합한 길이이며 그립의 안정성을 최적으로 지녔다. 위 사진처럼 파지시 그립부가 거의 팔꿈치까지 커버하여 상당한 안정감을 준다.

좌대 뿐만 아니라 구멍치기에 있어서도 적합하다. 150cm 모델도 있으나, 해당 길이 모델은 색상이 노란색 뿐인데, 일단 노란색은 불호가 큰 색상이었다.

그래서 근래에 새로 나온 아부가르시아 케이지필드 컬러즈 제품을 들여왔다.
모델명: CFCS-145
145cm이다.

단, 그립부가 너무 짧아 사용이 매우매우매우 불편하다.. 후회한다. 색상을 포기하더라도 안정적인 파지를 선택할걸 그랬다.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찐 당황.
CD가 있어야 할 법한 자리에 동그란 종이카드가 들어 있으니.. 요즘은 CD를 종이로도 만드나? 이게 종이처럼 보이는 최신기술 적용 CD인가? 구멍이 없는데 CD-ROM에 어떻게 넣지? 한참을 고민했었다ㅋㅋㅋㅋ

그러다가 뒷면에 무슨 “ILLUU 또는 일루AR로 검색하여 카드 앞면을 촬영할 것”이라 되어 있어서 신형 QR코드가 적용되어 mp3 파일이나 음원을 내려받은 것인줄 알았다.

어쨌든 마지막 바닥의 책을 집으니 그제서애 CD가 나와서 안심..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다이와 19 mc750m 릴과 낚시대.

다이와DAIWA 릴과 낚시대 세트이다:

모델: 다이와(DAIWA) mc750m
길이: 총 길이 71cm
(실측결과: 손잡이 18cm, 그 앞 부분 52cm


얼음낚시 겸 구멍치기 용도로 구입.

일단 예뻐야 하고, 저렴한 상품이라도 최소한의 A/S는 보장되며,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모델을 찾다 보니 결국 다이와(DAIWA)를 사게 되었음. (결국 가성비 보다는 예쁜 걸 찾게 되는...)

처음 배송이 왔을 때 택배박스 뜯고 보니 그냥 투명 봉다리 안에 로드와 릴, 보증서와 일본어 설명서만 달랑 들어 있어 ‘이게 맞아?’하고 조금 당황했다. 부품도은? 릴을 사면 꼭 주는 릴 부품도도 없었다. 한국 다이와와 일본 다이와에서 한참을 찾았지만 릴 자체에 대한 부품도는 없았다.
* 다이와에 문의해보니 이 모델은 원래 그렇다고... (시마노는 5만원짜리 릴을 사도 거기에 보증서와 릴 부품도를 함께 준단 말이야. 게다가 이거는 무려 10만원이라고. 다이와, 보고 있습니까?ㅎㅎ)

보증카드는 로드(1절대)만 해당이 되고..정가의 40%로 신품교환이라고.. 뭐 아직까지는 릴이 못쓸 정도로 고장난 적은 없으니... 릴은 괜찮다고는 생각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시마노는 5만원짜리 릴에도 보증카드를 주는데, 다이와는 릴+로드 세트로 약 10만원인 이 제품에 치사하게 로드에만 보증서를 넣어주다니?

​하여튼, 릴을 처음 돌릴 때 핸들 반대편에 위치한 캡도 같이 돌아가서 사실 조금 당황을 했다. 이렇게 같이 돌아가는 구조는 처음 써보는지라...

어쨌든 나와 오랫동안 고장 없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간만에 마음먹고 새로 구입한 모니터.

 기존에는 23인치의 LG 무결점 블랙 색상의 모니터를 사용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컴퓨터 본체를 흰색으로 바꾸면서 키보드 또한 흰색으로 바꾸게 되었고 이번에는 모니터 역시 흰색으로..! 사이즈는 대대적으로 커진 무려 27인치!! 사실 살짝 적응이 안된다. 너무 크고 빈 공간이 많이 보인다.

 

 (*흰색을 참 좋아한다. 책상도 흰색이다. 마우스도 흰색이다. )

어쨌든 흰색 모니터에 얇은 베젤을 찾는다면 알파스캔에서 서비스하는 필립스가 거의 독보적이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문서와 글씨를 읽을 일이 많은 나로써는 로우 블루라이트 모드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현재 로우 블루라이트 모드+ 밝기를 59%로 해둔 상태이다.

 

 

잘 어울린다...@@

 

AS는 알파스캔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무슨 이벤트인가를 해서 후기를 남겨주면 as기간을 연장해준단다. 그래서 나도 리뷰를 남기게 되었다.

 

그나저나 세로로 사용할 서브 모니터가 필요한데... 고민중이다. 피벗기능이 기본으로 있는 243S IPS 으로 할지, 같은 모델 중 하나인 246E7로 할지... 선택장애가 발생했다. 

 

243s는 시력보호기능이 뭔가 더 추가된 것 같고(하드웨어 블루라이트차단) 화면만 돌리면 자동으로 피벗이 된다. 무엇보다 기본으로 피벗기능이 있어서 좋다. 그런데 지금 있는 순백의 화이트와 색상이 맞지 않는다.

 

246e7은 시력보호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적인 것으로 판단되며, 자동 피벗이 아닌, 디스플레이 설정을 통해 피벗을 해줘야 사용가능하며 피벗 스탠드를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세트와 깔맞춤(?)이 된다는 궁극의 장점이 있다..ㅠㅠ  

 

혹시라도 알파스캔 관계자나 선택계(?)의 김연아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선택장애에 걸린 저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ㅠㅠ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신형 레오폴드

2017년형 레오폴드

뉴 레오폴드

 

무려 거금 137500원 + 전용 키스킨 5000원 + 배송료 2500원을 주고 뉴 fc750r 갈출을 구입했다.

(가격도 1만원 넘게 오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서피스가 서피스 프로5에서 뉴 서피스 프로로 명명된 것처럼, 본인 또한 이를 뉴 fc750r로 명하기로 했다.

 

일단 이전의 구형과 신형을 사진을 통해 비교 해본다. 색상은 훨씬 더 클래식해졌다. 아주 아주 아주 마음에 든다. 어두운 상태에서 보면 베이지라기보다는 회색에 가까운 색이고, 밝은 곳에서 볼떄는 베이지 색상이다.

 

키보드의 글자 인쇄도 훨씬 더 선명해졌다. (가격이 오른 만큼 어느 정도 개선점이 있는 게 당연하겠다.)

 

 

차이점이 보인다: 구형에서는 Capslock과 scrlock에 led불이 보이게끔 표시되어 있지만 신형은 없다. 하지만 led가 없어진 게 아니라 숨어져 있다. 신형에서는 버튼을 누르면 아래에 은은하게 파란 불빛이 비쳐 보인다.

추가: 스패어 키캡 중 구형의 capslock 스패어 키캡은 모양이 딱 떨어지는 상태에서 계단식으로 파여 있는 형태이지만, 신형의 capslock 키캡은 크기가 작다. 그래서 끼웠을때 보기에 좋지 않아 보인다.

 

 

 

 

 

 

색상의 차이: 훨씬 더 클래식해졌다. 구형은 순백의 화이트. 신형은 정초한 베이지색이다.

 

 

 

미끄럼 방지 패드가 구형은 흰색에서 신형은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뭐가 하나 추가되었다. 키 fn기능과 관련하여 조작에 쓰이는 것 같은데, 이런 고급 키보드로 일기나 쓰는 필자로서는 무슨 기능인지 알 수 없는...

 

 

 

선은 구형이 회색(아래: AWM 2725 VW-1 60'C 30V 28AWG/1PR AND 28AWG/2C FT1)이었다면 신형은 흰색(위: AWM E156437 STYLE 2725 80'C 30V GOLDEN BRIDGE)으로 바뀌었다. 온도 표기가 60->80'C로 더 높은 것으로 보아서 고온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타이핑을 비교하는 동영상을 촬영해 보았다. (둘 다 갈축) 타이핑 윤동주 시인의 <코스모스> 이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느껴지겠지만, 구형에서의 청량한 스프링소리가 신형에서는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은 모르겠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뭔가 더 둔탁해진? 혹은 정갈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약간 멤브레인 키보드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멤브레인 느낌은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멤브레인 느낌은 아니다. 다만 스프링 소리가 확실히 잡힌 것 같다. 구형에서 사각사각한 소리가 더 진하다. (*개인적으로 훨씬 더 가볍고 청량한 느낌의 구형 키보드가 마음에 든다)

 

(이거는 하나하나 비교해본 영상이다.)

 

 

 

리뷰 끝.!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근 9년 만에 영화 <매트릭스>를 다시보며, 짧은 에세이를 남긴다. 아마 9년 전의 글이 있다면 그 전과 후의 관점, 영화를 보는 관점, 맥락이 많이 달라져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매트릭스>의 교육철학적 해석 - 극복하는 인간!

  모두가 주지하듯, 매트릭스의 큰 주제는 빨간 약 대 파란 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영화의 모든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없고 그 외 다양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케케묵은 주제를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주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중요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살펴보겠다.

  빨간 약은 진리를 상징하며 파란 약은 거짓을 상징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행복을 목적적으로 추구하는 존재자(최고선으로서의 행복,eudaimonia)라고 가정하고 또 이것이 참이라고 가해보자면 이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행복(치)은 진리(치)와 비례하는가?’ 여기서 만약 행복치와 진리치가 비례한다고 한다면 다시 두 가지 경우가 나타난다. 이는 행복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만약 진실된 행복만이 나에게 참된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빨간 약을 선택할 것이다. 진실된 행복만이 나에게 참된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입장일 것이다(a). 반면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기만 하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일 경우파란 약을 선택할 것이다(b). 아마 극중 인물에서 사이퍼가 이에 속할 것이리라.

  다음으로, 진리치와 행복치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닌 측이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마지막의 최종적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만약 진리치가 행복치와 무관하게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빨간 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c). 반면 진리치와 행복치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규정한 상태에서, 만약 진리치를 선택할 경우 나의 삶에 고통이 야기될 것이 자명한 것으로 결론지은 상태인 자의 경우는 당연히 파란 약을 선택할 것이다(d). d의 경우는 계산되는 행복(쾌락)의 양에 따라 파란 약을 선택할수도, 빨간 약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진리치는 행복치와 비례하는가’하는 질문과 ‘빨간 약 대 파란 약’이라는 선택지를 통해 총 네 가지의 경우를 도출하였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교육철학적으로 주목해야할 바는 바로 (a)와 (c)의 인물상에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경계해야 할 바는 (b)와 (d)의 인간상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밝힌 바와 같이, (a)인물상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다(대전제). 그리고 행복은 참된 실상 속에서 얻어진다고 파악하는 인물이다. 즉 행복이라고 다 같은 행복이 아니라는 바를 함축한다. 전형적인 학자적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공리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a)형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야말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자의, 진정한 쾌락’, ‘고급 쾌락’, ‘지속 가능한 쾌락’이며 (b)형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속박된 저급한 쾌락’, ‘육체적 쾌락’, ‘감각적 쾌락’이 되겠다. 매트릭스 속에 들어간 인간들이 느끼는 쾌락은 사실상 저급한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 전형적인 돼지 같은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맹목적으로 행복(쾌락)만을 추구하는 인간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교육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상의 방향은 다름아닌 a인 것이다.

  다음으로, c인간상을 살펴보겠다. 밝힌 바와 같이, c인간상은 역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다(대전제). 그런데, 그가 생각하기에 진리치와 행복치는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때로는 진리치와 행복이 일치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극중 네오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참된 실상은 성분을 채 알 수 없는 죽을 먹으며 살고 있으나, 가상 세계인 매트릭스에서는 나름대로 인간답다고 할 수 있는 식사를 먹을 수 있다. 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선택한 것은, 곧 진리는 쾌락, 행복 등의 그것과 무관하게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선행되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혁명가적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d의 경우는 기회주의자적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교육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상의 방향은 다름아닌 c인 것이다.

  이를 우리의 현실 역사와 비교해보면 흥미로워진다. 우리내의 역사 속에서 a,b,c,d의 인간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할 시점은 해방전후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해방 전후로 여운형, 김구와 같은 a(학자)형 인간이 있었으며, 전통 대지주 혹은 친일 지주, 해방 후 재벌그룹 등을 대표로 할 수 있는 b(돼지)형 인간상이 있었으며, 이봉창, 윤봉길, 그 외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던 c(혁명가)형 인간이 있었으며,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제파와 친미제파, 親-자본주의파로 대표될 수 있는 d(기회주의자)형 인간이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a와 c의 인간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또, b와 d의 인간상이 득세하였을 경우 벌어진 다양한 역사적 사태들을 반성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을사늑약과 한일합병,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와 미군정기, 미소 분할 점령의 사태, 전쟁 후에는 군 독재정권의 난립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는데, a인간상과 c인간상을 비교하여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상은 바로 c인간상이라고 것이다. 만약 행복이 진리치와 비례하며, 참된 진리속에서 얻어지는 행복만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만을 준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빨간 약을 먹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연역적으로 지극히 타당한 것이 된다. 반면, c의 경우는, 말 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해가 될 것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만행으로부터 투쟁을 해왔고, 나에게 해가 될 것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미제로부터 투쟁을 해왔고, 나에게 해가 될 것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로부터 투쟁하여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 나에게 해가 될 것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로부터 투쟁하며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였다. 나에게 해가 될 것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친일 친미 기회주의자와 독재의 잔재로부터 투쟁하여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시켰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결론 또한 도출되지 않는가? c인간상이야말로 고귀한 격정의 사나움을 쾌락과 고통에 대한 통제(절제)와 인내(용기)로 승화시킨, 즉 c야말로 올바로 양육된 thymos를 지닌 인간이며, c야말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하여 나의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 그러니까 현실의 고통, 쾌락(행복)과 진리치의 불일치성에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결단을 통해 그 고통 앞에서 환하게 웃는 자로 변화된 사람, 즉 반대의 가능성을 향해 능동적으로 기투하는 자! 바로 위버멘쉬(Übermensch, overman)적 인간상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을 통해 우리가 육성해야 할 최종적 인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8&aid=0002365711


니체에 의하면 예술은 현실의 한계로부터 오는 일종의 불안을 대안적으로, 그러니까 임시적 위안감을 안겨 주는 매개물이자 수단이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 지닌 현실의 불완전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고, 비록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할 지라도 예술을 매개로 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이를테면,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인간이 능숙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다는 소망은, 현실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욕구이다. 현실에서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래서 아름다운 말 따위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듯한 그런 생사의 벼랑 끝에서, 비극의 주인공은 이런저런 말과 논거와 웅변적 몸짓, 그리고 전체적으로 맑은 정신을 보여 주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이런 자연으로부터의 일탈은…” 


 여기서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인간은 바로 현실 속의 우리 보통의 인간들을 말한다. '능숙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다는 소망'은 현실적으로는 결코 그럴 수 없는 존재인 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헛된 희망을 뜻한다. 즉 현실에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다. 물론 어떤 신화나, 스토리, 위인전에 등재된 극소수의 인물들은 제외하고 말하는 것이다. 대다수 보통의 존재인 우리는 매 하루 하루를 "생사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 항상 어떤 것이 내게 다가올 것인지, 어떤 위험이 혹은 어떤 긍정 또는 부정적인 것이 내게 다가올 것인지 쉽게 예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를 찾고, 극장을 찾아가고, 헐리우드 액션극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것들은 현실을 잊고 잠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예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니체는 넒은 의미의 예술로 음악, 리듬에 대하여 말을 한다. 음악과 시는, 사실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비합리적 행위속으로 스스로를 던지는 것은 다름 아닌 그것으로부터 "이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진자들의 이익이란.


“인간은, 자신이 음악을 들을 때 경험하는 근원적 압도감에서 이익을 얻고자 했다. 리듬은 말하자면 하나의 강제력이다. 리듬은 그것에 굴복하고, 또 영합하도록 하는 누르기 어려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니체가 우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촌철살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우리의 소비사회, 천민적 자본주의 세상을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해준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광고의 대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마트나 백화점, 기타 소매점, tv에서의 광고, 라디오에서의 광고를 생각해보자. 그곳에는 항상 리듬과 음악이 있다. 그런 리듬은 우리로 하여금 억누르기 어려운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식의 예술들은 비유하자면 “마약”, “아편”과도 같은 것들로, 우리의 이성능력, 지성을 통해 제거하고 없애나아가야 할 속성의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류의 예술, 그러니까 우리로 하여금 억누르기 어려운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예술들은 우리를 도취시키며 우리를 강하고 고양된 느낌의 순간으로까지 강제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한다. 즉 기득권자, 가진 자들의 잔악한 횡포인 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민의 아편”이다. 인간에게 환상의 행복인 가짜 리듬과 가짜 예술을 제거하는 것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인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예술은 우리를 압도하고 휘어잡으려 한다. 현실의 삶에 피곤하고 그런 삶에 소위 말해 “찌들어”있는 우리 존재들에게 그러한 도취 수단은 우리로 하여금 술에 취한 듯, 우리의 영혼을 그렇게 만들어버리고자 한다. 열광하게 하고, 감격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은 나쁘지 않다’, ‘그것은 즐거움이다’, ‘그것은 교양이다’ 라고 말하게끔 조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무수히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다. 현대 예능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를테면, '무한도전', '런닝맨', '라디오스타', '해피투게더', '1박2일' 등이 있다. 이들은 속물적이며, 우리를 도취하게 만든다. 사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구토감을 느껴 마땅한 것들이다. 거기에 자기 삶은 빠져 있으며, 그저 공허한 것, 도취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스스로도 충분히 행복과 아름다움, 기쁨, 즐거움, 유머를 체험하고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과연 그러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필요할까? 단연코 아니다. 자신의 삶이,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갭이 크지 않은 사람들에게, 과연 그 갭을, 그 갭으로부터 오는 불안이나 불완전함의 느낌을 잊게 해줄 어떤 카타르시스감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보자.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에게 그것은 필요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충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내 안에 웃음을 가지고 있다. 즐거움을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아이언맨에게 극장의 아이언맨이 무슨 소용인가?” 이미 충분히 즐거운 자에게 그런 식의 일회성이고 소모적이고, 소비적이고, 허무적이고, 인위적이고, 조약하기 짝이 없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들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천박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즐거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반응형

'실천 그리고 > 지속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반도 중심 동북아 체제 정비론 5단계론  (0) 2021.11.05
Posted by 모순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