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정리'에 해당되는 글 177건

  1. 2017.12.25 82년생 김지영 중
  2. 2017.12.21 어느 중학생의 자작소설
  3. 2017.11.03 무미건조함
  4. 2017.02.24 현대 예술의 난해함,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세는?
  5. 2015.03.15 아름다운것은 어렵다..2
  6. 2015.03.10 추억의 망령
  7. 2015.02.19 라디오 감성
  8. 2015.02.16 서양 고대 철학
  9. 2015.02.16 사랑한다면
  10. 2015.01.08 있음의 고통
반응형

"사회는 정글이고, 학교 졸업 후 만난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들 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합리보다 불합리가 많고, 한 일에 비하면 보상도 부족한 회사였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개인이 되고 보니 든든한 방패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도 좋은 사람이 더 많았다."

-p.145, 조남주,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7)-

반응형

'카테고리 정리 > 공 감(共感)'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중학생의 자작소설  (0) 2017.12.21
무미건조함  (0) 2017.11.03
무인양품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먼슬리 노트  (0) 2014.12.25
치과치료 마치다  (0) 2014.02.05
서양철학  (0) 2013.10.12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구세군 1부 (* 2003년 즈음 작성된 어느 중학생의 자작소설이다. 지금은 성인이 되었을,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고 올리다.)

 

서기 2023년, 대한민국은 도덕성을 잃어버렸다. 정경유착과 함께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그리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타락한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국가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졌으나 국민들은 그러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마치 냄비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기업인들과 협잡한 정치인들은 온갖 비리와 악한 짓거리를 일삼았고, 자신의 욕구를 마저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전국 팔도 방방곡곡에서 수탈을 일삼기 시작했다. 정부는 알게 모르게 국민들의 원성만을 사게 된다. 결국 나라의 경제는 파탄되었고 대한민국은 후진국만도 못한 선진국이 되었으며, 일부 부유한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스스로가 알지도 못한 채 빈곤함과 억압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런 무렵, 의정부에서는 윤선덕이라는 이름의 장군이 군사 총 참모부장으로 있었다. 그는 약 25천 명에 달하는 육군 부대를 직속으로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때마침 그를 비롯하여 그의 휘하에 있는 직속 심복 및 장병들은 정부를 비롯한 이러한 천태만상 일반에 대해 분개하며 그 문제를 공감하고 있었다. 이에 그들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큰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

 

202411월의 어느날. 한겨울이다. 윤선덕은 의정부에 위치한 비밀 군사기지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사무실은 반-지하로 되어 있고 미사을 등의 공격에 잘 버티도록 둥근 아치형으로 설계되어 있다. 11시이다. 윤선덕의 사무실이 열리더니 그의 충성스러운 부관들이 말을 건넸다.

 

부관 최소령: 장군님, 회의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윤선덕: 그래, 어서 가자. 분위기에 걸맞게 때마침 눈도 저렇게 내리는구나..”

 

그의 사무실에서 100미터 쯤 갔을까, 의정부 군 회의소가 나타났다. 그가 들어갔을때는 이미 핵심 수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누군가가 외쳤다. “장군님이 들어오셨다

 

모두 일어서 경례를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답례를 한 뒤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앉으며 그가 말했다. “이번 작전명은 구세군이다. 모두 잘 기억해두도록 하라.” 이후 회의는 몇 시간을 더 진행했다.

 

오후 350.

드디어 윤선덕을 비롯한 휘하 사병들의 출격이 시작되었다. 그를 비롯한 휘하의 장교와 부관들은 장병들을 정렬시켰다. 그는 곧 그의 부관과 함께 전술 지휘차량에 탑승했다. 그가 타고 있는 전술 지휘차량 안에는 운전수 한 명, 직속 부관인 최 소령, 전투 중사 1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출발하기 전 본인의 기관단총을 다시 한번 손에 꽉 움켜 쥐었다. 그의 뒤로는 경전차와 반궤도 장갑차 약 100여대가 뒤를 이었다. 공중에는 경 폭격기와 정찰기가 순항 감시를 하고 있었다.

 

1시간을 달렸을까? ‘서울 5km’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표지의 뒤로 서울로 들어가는 톨게이트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로는 수상쩍은 분위기에 놀란 시민들이 자신들의 차량을 버리고 황급히 그 자리를 이탈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윤 장군의 계획을 이미 눈치 챈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부대와 일부 방위군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장군은 즉각 공격 명령을 내렸다.

 

윤 장군: "지금부터 명령을 하달하겠다. 각 군은 전격적으로 나아가 적 부대를 격파하라!"

 

 부하 장병들은 산개하였다. 반궤도 장갑차에서 내려 기관총을 발사했고 장갑차는 12.7mm 기관총을 난사하였다. 옆으로는 장갑차와 경전차가 포를 발포했다. 아무리 장군이라지만 그 또한 군인으로서, 그리고 한 지휘관으로서, 전투에서 죽어나가는 부하들을 무책임하게 바라만 볼 수 없었다. 그 또한 자신의 기관단총을 손에 쥐고 뛰어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상대편 군의 대열은 곧 무너지며 연기 속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패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1시간 즈음 교전을 한 듯하였다. 서울로 진입하는 게이트는 결국 무너졌고, 대항군이 쌓아놓은 바리게이트는 바늘구멍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날 전투에서 수방사 소속의 대항군 약 1378명을 사살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시민들 중 일부는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 군대를 지지하였다.

 

오후 530. 길거리는 낙엽과 눈이 뒤섞인 채 있었다. 그들은 전열을 다시금 가다듬었다.

 

최 부관은 말했다. “장군님, 우리의 첫 계획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윤 장군은 말했다. ”그래 고맙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다음 명령을 내렸다.

 

윤선덕: "모두 들으라. 지금부터 각 군에게 명령을 하달하겠다.

당장 서울의 내부순환도로를 따라 주요 공무시설을 장악 및 포위하라. 핵심 목표는 국방부, 경찰청, 수도방위사령부, 국회의사당, 언론사, 그리고 청와대이다. 나는 직할중대와 2중대를 이끌고 청와대를 향할 것이다. 2중대는 나와 함께 간 뒤 가장 먼저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 핵심 위정자들을 척결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약 25천여 명의 병력은 즉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9, 국회의사당은 헬기의 기총사격과 함께 손 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생포할 수 있었다. 같은 시각 윤 장군이 이끄는 직할 중대의 총대는 청와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가 도착했을 무렵 청와대는 이미 그들을 지지하는 혁명군 세력에게 포위되어 있는 상태였다.

 

보고가 올라왔다

보고: 장군님, 보고드립니다. 현재 청와대는 우리에게 포위되어 있으며, 적 저항군은 대통령을 비롯한 중무장된 중대급 경호요원, 그리고 대통령을 따르는 경비대 및 수방사 소속 저항군 1개 대대가 청와대를 비롯한 인근 요충지에 주둔한 채 대통령을 지키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무장은 박격포와 대전차포, 중기관총 등이 있습니다.

 

윤선덕 장군: 그 정도란 말인가? 그대로 밀고 나가면 우리 측 피해가 막대할 것이다. 지금부터 명령을 하달하겠다. 1진은 야포와 전투기의 정밀 폭격을 통해 요충지와 핵심 방공시설들을 파괴하라. 2진은 헬기를 동원해 기총사격을 가하여 나머지 저항군들을 처단하라. 3진은 보병과 전차를 투입한다. 그리고 야포부대와의 양동작전을 통해 저항하는 잔당 무리들을 제거하라. 마지막으로 특수 임무부대를 4진으로 투입하여 숨은 대통령을 생포하라.“

부관: , 알겠습니다.

 

12, 청와대와 그 주변에서는 화염이 치솟았고 여기저기서 포탄 터지는 소리와 콩 볶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1시가 지나서야 겨우 교전이 끝났고, 일부 저항군들은 북악산 너머 북한산으로 도주하여 끝까지 저항을 하고자 하였다. 대통령은 생포되었다. 윤선덕 장군은 곧 이어서 기 점령된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는 전술차량을 타고 달려갔다. 그의 뒤로는 기관총을 탑재한 모터싸이클이 뒤따르며 그를 경호했다.

 

서강대교 북단을 막 건너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그가 탄 전술차량 근처로 폭발이 발생했다. 서강대교 북단과 그 일대에 매복한 저항군 세력이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예기치 못한 실책이었다. 서울로 입성하는 과정에서 핵심 저항군을 격파하고, 주요 시설물 장악 및 대통령을 장악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것이다. 여전히 서울은 완전 해방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모터싸이클은 곧 전투테세를 갖추어 포탄과 공격이 날아온 지점을 향해 대응사격을 하였으나 적군의 정밀한 조준사격에 의해 이내 하나 둘 파괴되었다.

 

전투 중사가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전술차량은 적에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일단 수풀쪽으로 피하십시오. 최 소령님, 제가 운전하사와 함께 저들의 공격을 일단 저지해보겠습니다. 그 동안 교신을 통해 국회의사당에 위치한 아군에 지원군을 요청하며 피신하십시오. 장군님은 꼭 무사하셔서 부디 대의를 이뤄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전투 중사는 그의 k-1 기관단총을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는 하사와 함께 대응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윤 장군과 최 소령은 반대편 수풀지대로 달려갔다. 달려가며 최 소령은 무전을 통해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몇 분이 흘렀을까? 장군의 전술 지휘 차량은 곧 적의 공격에 의해 완파되었고 마저 저항을 하던 두 장병은 전사하였다. 뒤이어 알 수 없는 수십 명 무리의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런데, 순간 정체 불명의 그 그림자 무리 위로 한 줄기 섬광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들의 사지가 갈갈이 찢기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구원의 정체는 해군이었다. 윤 장군의 대의 소식을 접한 일부 해군 함정들이 그 대의에 감복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윤 장군을 돕기 위해 용기내어 올라온 것이었다. 한강과 강화도 연안을 지키던 일부 해군함정들이었다. 세 척의 경비정에서 일제히 내뿜는 20미리 발칸포 지원사격과 함께 여섯 척의 고속 보트에서는 약 20여 명의 해군 소속 수병들이 변변찮은 무장이나마 한 채 구원을 하기 위해 달려왔다.

 

상황은 정리되었다. 적 저항군은 모두 사살되었다. 한강의 대교 일부를 지키던 수방사 소속의 약 2개 소대 병력이었다. 저항군들이 윤 장군의 차량을 파괴할 때 사용한 무기는 무반동포와 바주카포였다. 해군의 구원 병력은 상륙군 2명이 전사했다. 윤 장군은 난세에 참으로 다행스러운 우군을 얻었다고 생각을 하였다.

다음 날 9, 여의도에 무사히 도착한 윤 장군은 방송 3사를 장악한 뒤 여의도에서 발표를 가졌다. 발표에서 윤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 아아. 나는 의정부에 위치한 군사 총 참모부장인 윤선덕 장군이다. 현 시각부로 대한민국은 의정부 군 총 참모부장인 나 윤선덕이 이끄는 혁명군이 지휘하도록 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의 군권 일부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 규모로만 육해공군을 합하여 10만 명 규모를 상회한다. 또한 정치권을 모두 장악한 상황이다.

우리의 혁명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삐뚫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그 희생을 감수하고 대의를 감행하였다. 이 방송을 접한, 아직 저항하고자 하는 군부와 장병들은 즉각 저항의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라. 나의 새로운 나라를 재건하는데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한 희생만 일으킬 뿐이다.

아무리 머리가 긴 구렁이라도 머리가 잘리면 그만인 법이라고 하였다. 우리에게는 저 파렴치한 대통령과 국희의원, 기타 정당 정치인들이 있다. ... 우리 군의 통치 하에 앞으로 모든 국민은 평등한 존재가 되어 각자의 존엄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차별은 없을 것이다. 경제인과 정치인의 유착도 없을 것이다. 모든 정치적 활동은 엄격한 도덕성의 빛 위에서 평가되어질 지어니. 이 땅 위에 친일을 한 자들, 민족적 전쟁과 분단의 상처 속에서 기회주의적 만행을 떨친 민족의 반역자! 권력의 주구들!, 천민적 자본주의로 알게 모르게 민중의 고혈을 빨아들인 자들!, 외세의 자본에 협잡하여 온갖 추태와 문란한 짓거리를 버린 자들! 독재의 그늘 아래에서 그들에게 기생하며 오직 자신과 자신 가족의 인신의 안위만을 도모한 권력의 개놈들! 주구들! 민족의  반역자들이 이 땅에 들어설 자리는 결코 없게 될 것이다.

 

일장 연설이 끝난 뒤 그는 서울 관악산에 있는 제2 정부 종합청사를 장악하기 위해 혁명군의 총대를 돌렸다. 그곳 역시 저항군의 핵심 방호시설이 구축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들의 무장과 대비 또한 매우 단단하게 준비되었다. 온갖 곳에 벙커와 포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대공방어 시스템 역시 갖추어져 있었다.

 

 

반응형

'카테고리 정리 > 공 감(共感)' 카테고리의 다른 글

82년생 김지영 중  (0) 2017.12.25
무미건조함  (0) 2017.11.03
무인양품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먼슬리 노트  (0) 2014.12.25
치과치료 마치다  (0) 2014.02.05
서양철학  (0) 2013.10.12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누구나 스스로의 나이에 대한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내면서 지냅니다. 10대 때는 거울처럼, 20대때는 유리처럼 지냅니다. 일정 부분 포기하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그러면서 지내다보면, 나이에 'ㄴ'자가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이제는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지도 못합니다."

- 김광석, 인생이야기, 이야기 하나 中-

딱 공감이 되는 요즘이다. 거울... 유리... 깨지기도 깨어지기도 하고. 실감한다. 나는 똑똑하지 못하다. 스스로의 한계를 정확히 실감하고 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OO년생...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겪고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내게 '참'새로움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 공부도, 취미도, 게임도, 사람 만나는 일도... 그 무엇 하나 재미있는 것이 없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앞두고...

반응형

'카테고리 정리 > 공 감(共感)' 카테고리의 다른 글

82년생 김지영 중  (0) 2017.12.25
어느 중학생의 자작소설  (0) 2017.12.21
무인양품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먼슬리 노트  (0) 2014.12.25
치과치료 마치다  (0) 2014.02.05
서양철학  (0) 2013.10.12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현대 예술의 난해함,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세는?

 

 현대 예술이 난해해지게 된 데에는 과학기술 발전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그렇게 설 자리를 잃은 "예술"이란 것, 그 안에서 생존해왔던 사람들의 위기의식, 그 위기의식으로부터 오게 된 생존의 절박함, 그리고 거기서부터 나오는 차별화, "예술"로 포장된 "예술가"들의 객기 역시 예술이 과학과 기술에 설 자리를 잃음으로써 시작된 난해함에 큰 몫을 했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예술의 가장 순수하고 원시적인 형태는 아름다움의 추구, 직설적이고 외적이며, 그렇게하여 즉각적으로 (해석이나 서술을 거치지 않고) 나의 감정과 반응해 심미적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에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원시적이면서 가장 근본적이고 순수한 원본 그대로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어떠한 것으로부터 아름다움, 심미적 만족이나 행복을 느끼느냐는 미세하게 다르지만 그런 차이 속에 교차하는(중립되는) 예술, 아름다움의 접점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화, 습관 교육, 이데올로기, 시대적 지식, 역사 등 후험적으로 주어진 눈 앞의 껍데기들을 모조리 벗겨버린다면 내 눈앞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 예술이라고 느껴지는 그 무엇은 절대 보편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느껴지고, 이것이야말로 예술적인 것이라 생각되어지며 곧 내적인 만족과 행복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고대 사회서부터 지금에 이르면서 과학기술도 발전하였다. 그림은 사진기술과 프린트 기술로 대체되었으며, 조각은 3d기술로, 연극이나 무용, 음악 등은 디지털과 그래픽 기술 등으로 대체되어갔다. 따라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이전에 비해 저금은 더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예술이 아닌 것, 지금의 것보다 예술, 즉 아름다움에 덜 다가서있는 작품들, 그런 표현기법들은 대중들로부터 제거되었고, 진짜 예술에 이르는 길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 "좁아"지게 되었다. 그 만큼 예술로 이르는데 더 먼길이나 잘못된(끊긴 ) 길, 험한 길로 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먼 길, 끊긴 길, 험한 길, 잘못된 길 위에서 그런 표현(행위) 기법으로 전통과 존재의 당위성을 유지해오던 사람들, 예술가 들은 그 자신의 존재 이유, 존재에 대한 정통성, 당위성을 상실해버렸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껍데기에 눈이 가려진 우리들- 그들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따라 속칭 "예술 전문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잘못된" 예술을 행하게 된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부심, 곤조, 고집이라고 표현될수도 있는데, 그 영향으로 지금의 예술은 '자기영역'을 수호하기 위해 점점 더 난해하고 이상해지고, 여러 차례의 해석과 서술이 필요하게 되어졌다(심지어 거부감, 거북함).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가짜 예술가들의 객기인 것이다. 말도 안되는 방법, 창의적이거나 창조적이라고 포장된 엉뚱한 방법으로 특정 행위를 하거나 표현물을 제작하고 '낸시랭'과 같은 한량조차 감히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인간의 진보, 발전이 자연의 순리라면 이런 현상 역시 자연의 순리일 것인데, 주지하듯 현대에 들어서서 예술은, 아름다움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나 귀족 집단에 전속-귀속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일반 대중들의 지적 능력 향상과 기술 발달 등으로 이제는 누구나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예술을, 즉 아름다움을 통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고 대중과 기술자에게 그 영역이 개방되었다. 누구나 "이것은 정말 예술이다!" 하고 평가할 수 있는 지경이 이른 것이고 예술의 궁극에 이르는 길은 더욱 빠르고 좁고 명확하게 열렸다. 이러한 지금의 모습에서 우리는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기술과 과학의 힘, 노골적이며 직접적임의 힘을 통해 예술로 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르면 예술가도 없어져야 한다. 인간 자체가, 삶 전체가 아름다움, 행복의 영역에 귀속(또는 영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예술의 형태를 보며 미래 예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면 지금의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겠다. 점점 어렵게 만들고, 복잡함에서 단순함이 아닌 그 반대의 형태로, '복고'도 '진보'도 아닌 '일탈'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에서 내 눈앞에 씌워져 있는 방해-오류의 필터를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더 덧씌우는 행위이다.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적인 자기학대, 정신적 자기학대 행위이며 변태적이고 정신질병적 행위이다. 질병, 질병은 그 자체로 해악하다. 예술은 특이함이나 특별, 창조, 독창,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것, 그 이전에 없었던 것, 나만의 것.. 등등을 만들어냄으로써 얻는 자기만족-추구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 것을 떠나 예술은 오로지 숭고할 뿐이다. 누가 했던 것이어도 좋다. 모방이어도 좋다. 100년.. 1000년 전의 것과 방식이어도 좋다. 그저 이를 통해 절대 보편적 행복에 이를 수 있으면 된다. 결론적으로 하고싶은 말은 이 예술을 향해가는 우리의 모습은 점점 진보적이고 직접적- 빠른 방법으로 발전되어야 마땅하지 지금과 같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운 것, 난해한 것, 잘못된 것을 추구하는 등의 모습은 예술로써 바람직한 모습도 , 인간상과 우리 삶의 바람직한 모습이 결코 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반응형

'카테고리 정리 > 대충 끄적(한번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기(2021.03.19)  (0) 2021.03.19
출산율 극복 방안  (0) 2021.02.24
추억의 망령  (0) 2015.03.10
사랑한다면  (0) 2015.02.16
사랑과 죽음  (0) 2014.12.12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나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얼마 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의 일을 기억해둔다..

얼마 전 작년부터 같은 수업을 들었던 한 타과생 여학생과 연락이 되었다. 전공 강의였는데 내 눈에는 참으로 수수하고 예쁜 여학생이었다(그 분 스스로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고 말을 했). 첫 학기 수업에서는 그냥 그렇게 눈에만 들어왔다. 실습이 있어 수업을 한달 넘게 빠지기도 했었다.

어쨌든 그렇게 어영부영 한 학기가 지나고 다음학기가 찾아왔다. 그때는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 졸업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교수님을 찾아뵙고 검토를 부탁드리며 연구실과 강의실을 오가며 지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찮게 그 여학생을 또 보게 되었다. 게다가 지하철 같은 칸에서 종종 마주치는 일도 있었으니.

라디오에서 한번쯤 흘러나왔던 적 있던 송창식의 다음과 같은 가사의 노래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돌아서서 말할까
마주서서 말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일주일 이주일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화를 내면 어쩌나
가 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달 두달 세달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화를 내면 어쩌나
가 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달 두달 세달

호감이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사처럼 되어버렸다. 故 김광석씨께서 옛날에 이런 말을 했다. 노래 가사를 계속 들으면 운명이 그 가사처럼 되어버린다는 유머가 알게 모르게 있어 슬픈 노래는 되도록이면 부르지 않는다고. 그 말이 맞았던 것일까? 한달 두달 세달 나는 그렇게 눈치만 보다가 졸업을 해버렸다. 하여 그저 어떤 마음속 신기루이겠거니 잊기로 마음먹는데 그사람이 계속 생각났다. 그래서 참 이래도 되는것인가 싶었지만 그 여학생을 수소문하기로 했던 것이고, 믿기지 않게도 결국 연락이 닿았다.

카카오톡 대화를 했다. 나는 그 여학생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상대는 나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하여 너무 진지하게 말을 걸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반대로 또한 너무 가볍게 이야기를 한다면 마치 장난인 것처럼 생각할것 같아 고민이 컸다. 그런데 내 대화가 그분에게는 너무 가볍게 들렸던 것일까? 아름다운 것은 참으로 어려우며 진심이라는 것도 전해지기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 결론적으로 며칠간 연락이 안되더니 결국에는 대화가 끝이 나고 말았다. 요 며칠간 나 혼자만 쓸떼없는 설렘을 느꼈었구나 싶다.

계속 연락하며 한번 만나보기라도 해달라 이야기해보고 싶었지만, 내딴에 그것은 참 보기 안좋은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지 싶었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을 계속 부담스럽게 하는것 보다는 그 사람의 미래를 축복해주며 마무리하는 것이 상대를 향한 진실되고 바람직한 모습이리라 생각했다. 물론 상대방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설레발을 치는 것이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오늘 나는 설렘과 답답함의 극단의 끝에서 또 다시 외로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총평을 종합하자면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외로운 사람"이란다. 헤겔식의 표현을 유치하게 빌려보자면 나는 뚜렷한 자기 주관이라는 것에서 시작해 좋은 사람이라는 보편성을 얻고 궁극에는 외로움이라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존재인가보다.

사랑고백이라고 하기도 전에 끝난 경우이지만. 계속해서 송창식씨의 가사가 머릿속에 맴돈다. 부탁드릴 수만 있다면 곧 18일에 있을 송창식 선생님의 쏭아 라이브공연때 이 곡 한번만 부탁드려야겠다. 우연찮게도 그 여학생의 성도 송창식씨와 같은 송씨였다. 오늘 저녁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또 만나게 되면 주리라 하며 구입해놓았던 페루산 쵸콜릿을 안주삼아 포도주나 실컷 마시고 잠들것이다. 잠깐이지만 연락이 닿아 설레였던, 그녀의 미래에 항상 축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반응형

'카테고리 정리 > 다시보기(Dairy che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숨 세상  (0) 2021.07.04
라디오 감성  (0) 2015.02.19
좀먹다  (0) 2014.12.21
사랑니 발치  (0) 2014.10.14
한 주가 흐르고  (0) 2013.10.28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의 망령이라고 한다면.

추억은 추억의 망령이라고 할수 있겠다.


이제는 그만 훌훌 털어 버려야겠다.

추억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야지.


일단, 이 망령에 관한 소설 한편, 소설아닌 소설 한편을 써야겠다.

달은 정령 망령이었던 것같다.


있는듯 없는듯.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새벽이 되면 라디오에서 들리는 장작 타는 소리가 정말 좋다. 지금도 라디오를 듣고 있다. PC어플이나 모바일 어플은 아날로그 라디오에서의 라디오 특유의 잡음이 없다. "찌잉-" 하는 고주파 소리나, "자글자글-" 하는 식의 장작 타는 소리라든지.

 라디오를 듣는데 그런 잡음이 없으면 무엇인가가 약 2% 부족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완벽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잡음은 라디오를 듣는데 필요한 하나의 소스와 같다. 그 아름다운 소스가 버무려진 라디오를 청취하기 위해 나는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라디오를 고집한다.

 날씨가 풀리고 봄이 오면 라디오를 듣는 모임을 하나 만들고 싶다. 이 추운 겨울에 산에 올라가 라디오를 듣는 고생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면 족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진행되는 모임을, 한강이나 서울 시내가 어느 정도 보이는 동네 동산이나 한강에서 와인과 맥주, 또는 커피와 커피포트를 싸들고 밤새도록 라디오를 듣는 놀이를 만들고싶다.

 사람이 몇 명 모이면 프로그램도 기획해서, 1. 함께 공감하며 듣기, 2. 직접 선곡하여 노래를 공유하고 공감하기, 3. 일일 DJ가 되어 보기, 4. 단파 라디오를 통해 해외 라디오를 청취하기 등. 말 그대로 새로운 형태의 놀이를 만들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모임이 활성화되면 그 속에서 악기를 함께 연주할수도 있고, 이런저런 담소도 나눌수 있다.

 시간대는, 왜 꼭 새벽이어야 할까? 내 경험상 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가 사람의 감성이 가장 풍부해지고, 또 도시의 감성도 풍부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다소 피곤할수도 있지만, 그 시간대가 어둠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충분한 시간대이며 사람의 마음이 가장 너그럽게 열리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나 이렇게 생각해도 역시나 내게서 사려져간 수많은 기획들처럼 상상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저렇게 말해보아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설에는 (늘 그랬듯이) 어디 갈 일도 없으니 라디오와 통기타를 하나씩 들고 한강과 63빌딩이 보이는 동산에서 라디오를 들어야지.


반응형

'카테고리 정리 > 다시보기(Dairy che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숨 세상  (0) 2021.07.04
아름다운것은 어렵다..2  (0) 2015.03.15
좀먹다  (0) 2014.12.21
사랑니 발치  (0) 2014.10.14
한 주가 흐르고  (0) 2013.10.28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철학을 범주화하자면 1.이오니아 학파(=밀레토스 학파), 2. 피타고라스 학파로 나눌 수 있다.

1. 이오니아 학파에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가 있다.


이 학파의 탐구 대상은 다음과 같다. 영구적인 어떤 것, 외견상의 변화의 무질서르 꿰뚫고 영속하는 어떤 것을 찾고자 했다. 이를 하나의 영속하는 기본 물질(stuff), 또는 원질(substance)이라고 한다.

1-1. 탈레스는 원질을 물 또는 습기라고 했다. 얼음, 물, 수증가와 같은 세갖  형태의 것.

1-2. 아낙시만드로스는 원질을 온, 냉, 건, 습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대립한다. 추가적으로 온, 냉, 건, 습의 원질(기본물질)은 무한자(apeiron)라는 어떤 물질의 최초상태이자 덩어리인 것에서 분리되어 나왔다고 생각했다. 

1-3. 아낙시메네스는 원질을 공기라고 생각했다. 안개, 물, 더 나아가 물이 고체의 물질로 응축된다고 생각했다. 호흡, 혼.

1-4. 결론: 원시적인 생각이다. 


2.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

2-1. 인간의 혼의 불멸성, 혼의 윤회, 전체로서의 우주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믿음.

2-2. 원질: 우주는 무한량의 공기나 숨으로 있으며 이것이 생명을 준다고 생각했다.

2-3. 인간의 목표: 순수 정신과 다시 결합하는 것.

2-4. 목표를 향한 방법: 끊임없는 윤화, 정화.

2-5. 방법의 방법(수단): 수학, 음악을 통해 질서,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1~2의 결론: 원시적인 생각이며, 틀린 생각이다. 이들의 사고를 배우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사랑한다면, "행위(行爲)"하자.

 

단순히 대상을 지향하는 단계에서의 인식은 단지 그 대상을 표상할 뿐이지, 그 인식 작용 자체가 대상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랑함'이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대상에게 그 감정이 전해지고 서로 통(通)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통함의 과정은 행위(行爲)를 기반으로 한다. 행위는 단순히 대상을 향한 인식의 상태와는 달리, 대상과 관계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 대상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할 경우 그것이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랑함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좋음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감정은 내 의식 속에서 표상될 뿐 대상에게 변화를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랑에 행위가 필요한 이유이다. 또다시 다짐한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혹은 호감(好感)을 느끼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 감정을 행하자고.

 

 

어제 오전에 잠을 청하다가 꿈을 꾸었다. 아마 이번에는 정말 지독한 상사병에 걸린듯하다. 내가 짝사랑만 해왔던, 이제는 만날수 없는, 바로 그녀가 나온 것이다. 꿈속에서는 나도 그녀도 어느 도서관의 열람실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침 내 머리맡에의 책읽어주는 라디오에서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흘러나와 꿈과 그 소설과 내용이 약간 섞였던 듯하다. 어쨌든,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결국 말 한마디 제대로 못건네보고 라디오의 낭독이 끝남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조차 눈치보며 있는데 현실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가 온다고 한들 내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다짐한다. 다시는 열차를 놓치지 않겠다고.삶은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를, 이 순간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반응형
Posted by 모순성
,
반응형

깊은 바다가 걸어왔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나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이다 돌아선다


가지마라 가지마라 하고싶다


입이 없네 입을 어디엔가 두고 왔나


입이 없어서 말하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허수경 시인의 '바다가'를 각색하다-. 2015 01 08

반응형

'카테고리 정리 > 누구의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  (0) 2014.12.14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0) 2013.12.13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0) 2013.03.07
이양연, 내가 죽어서  (0) 2013.02.25
Posted by 모순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