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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먼슬리 노트

+ 문고본 스케줄 노트

 

시즌오프로 40-50% 수량한정 세일할때 구입했다.

 

2015년 먼슬리 노트가 나왔을때부터 살지말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좀 늦게 사길 잘했지 싶다. 원래 3만원 이상 무료배송인데 연말이라고 배송비지원? 해서 1만원 이상 무료배송이 떴다. 세일이라 해서 나도 모르게 세일 아닌것까지 마구마구 장바구니에 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다 비우고 먼슬리 2015 노트 1개와 스케줄러 문고본 2개, 그리고 볼펜 2개만 구입했다. 정신차려서 다행. 딱 1만원 하고 천원정도 되었었나?

 

아무튼 무인양품이 가격이 비싸긴 하다. 무인양품 본래의 출발 취지에 걸맞지 않게 국내에 들어오고서는 비싸졌다. 이건 무인양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유통업자들의 문제일 것이다. 불필요한 디자인, 브랜드네임, 로고 등을 제거하여 여타 "이름있는" 상품에 비해 가격적 요소를 대폭 낮추고, 저렴하면서 브랜드 없는 브랜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기능성 상품이라는 그런 취지를 상실한 것이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니 관세, 운송료 등의 비용도 있을테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마진이 과하게 붙어있다고 보여진다. 장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망했어요~"가 아닌이상 손해보고 파는 일은 절대 없다. 즉 지금처럼 시즌오프로 최대 50프로 가까이 할인을 해도 마진이 충분히 남는다는 것이니.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을 통해 실용성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자체 브랜드가 나와야하지 않을까싶다. 그러한게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어떤... 산업이 아직까지는 전체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닝글로리.. 또 뭐 동아... 그런것들만 하더라도 제품에 너무 군더더기가 많고 "애기스타일" 제품이 많다. 모던함, 클래식함, 심플함을 갖춘 브랜드가 없는 것, 있다 하더라도 어떤 "유니크"함이라는 상술에 포장되어 비합리적이게 비싼 가격을 형성한다. 마치 명품이니 하는 것처럼. 군더더기없고 깔끔할수록 가격은 더 저렴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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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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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좀먹게 만든 책들. 탓은 나에게 있지만 굳이 나를 위로할 핑계를 대자면 그러하다는 것이다... 철학, 공부한다고 삶이 달라지는거 없더라. 논문... 열나게 열심히 써서 칭찬받고 학술지에 실려도... 남는것 없더라. (잘쓴건 아니지만.)

이 허무한 기분 느끼기 싫어서 한학기 일주일 내내 학교 도서관에 출퇴근을 했다. 집에만 있으면 살아있는 기분이 안들어서. 공부도 안될 뿐더러. 도서관에 있으면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더라. 그래서 굳이 갈 필요가 없는 도서관까지 일주일 내내 출퇴근했어. 그래서 사람들 온기도 느끼고 내가 살아있다는 감정도 느꼈지. 최대한 내가 살아있음을 알고 싶었어. 곧 다가올 지금의 이 막막함과 후회됨과 허무함을 최대한 늦춰보고 싶었거든.

가장 중요한건 사랑이야. 그것 참 어렵더군. 세상의 진리를 탐구한다는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뭔가 알고 깨우칠 수 있을것만 같았지. 그래서 논문도 그렇게 쓴것이고. 그런데 결과는 영 시원찮더라. 내가 차라투스트라가 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차라투스트라가 되었으면 나의 정체성과 욕망을 잃고 나 아닌 나가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아무튼 철학을 공부해도 용기없는 사람에게 없던 용기마저 생기지는 않더라고. 결국 하루, 이틀, 사흘, 한학기, 말하기로 마음먹었을때가 되니 그녀를 만날수 없었어. 참담했다.

아무튼 이 다가올 허무함에 대해 예감하고 이를 최대한 늦춰보고자 남은 시간을 최대한 느끼고 싶었다. 우선 잠을 줄였다. 늘 도서관에 갔다. 내가 도서관 2차 지박령이 된 이유가 실은 공부가 좋아서 간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또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아무도 모르지.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학교앞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대략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다음 열차를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떠나버린 열차는 아무리 외쳐도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내 인생에 그 다음 열차는 언제 또 다시 나타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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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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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단 하나뿐이었던 촛불이 내일이면 사라진다.


나의 삶은 다시 한참동안 영원한 암흑과 침묵의 시기가 올것이다.


부디 그런 시기가 오지 않게 희망이 되살아났으면 좋겠구나.


내일, 내일 결정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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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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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지성과 욕망 중 하나의 범주에 넣으라 한다면 사랑은 지성이 아닌 욕망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이루다'나 '사랑하다'가 아니라) '사랑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그 욕망을 드러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일테다. 그리고 사랑의 상태는 두가지로 나눌 수 있겠는데 일방적 상태와 소통의 상태가 그것이다. 일방적 상태에서는 욕망의 현현(顯現)이 빠져 있다. 소통의 상태는 즉 사랑을 향한 욕구, 욕망이 현현되어 객체에 이르렀으며 상대 역시 이를 인지하여 주체를 향해 욕망을 현현시킨, 즉 합일의 상태일 것이다. 일방적 상태의 사랑은 반쪽짜리 사랑이다. 그런데 나머지 반쪽을 얻기 위한 '욕망의 솔직한 드러냄'이라는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욕망이라는 의식의 표출을 지성이라는 것이 쓸떼없이 끼어들어 막고 있기 때문이다. 글쎄, 그 표출을 막고있는 것이 지성인지는 분명치 않다. 지성으로 포장된 비겁함일수도 있고, 자기확신 부족일수도 있다. 아니면 이성(理性)일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반쪽짜리 사랑에 나머지 반쪽을 추가함으로써 사랑을 가능태(可能態)에서 현실태(現實態)로, 즉 공상에서 '현실로의 가능성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랑의 대상을 향한 지극히 자연적이고 거친 욕망의 발로(發露)를 방해하고있는 그 기제(機制)를 이겨내야만 한다. 문명이 아닌 야만이 되어야 한다. 그것 참 어려운 일이다. 평생 그 기제를 이겨내지 못할것이 운명이라면 차라리 천장에 목메달아 죽는 것이 나으리라. 왜냐하면 사랑이 없더라도 생존에는 지장이 없을지언정 그 삶을 사랑있는 삶보다 가치있게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삶은 가능하지만 의미있는 삶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귀납적으로 추려내자면 방해기제를 이겨내고 욕망을 현현시킬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은 철학적이나 논리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귀납적 추론과 그로부터 나온 결론 사이의 "비약"을 비약 아닌 것으로, 즉 정당한 것으로 옹호하는 작업을 철학적 실용주의neo pragmatism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실존적 문제이며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기도 한다. 어차피 탐구의 목표를 설정해놓았으니 빤히 보이는 그 결말 앞에서 선택지는 두가지 같은 한가지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바보같이 엔딩 크레딧을(ending credit) 끝까지 보고 문밖을 나서느냐 아니면 현명하게 판단하여 미리 문밖을 나서느냐. 사랑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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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서른

저자
라라윈 지음
출판사
매일경제신문사 | 2014-09-2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분명 아직 젊은 나이지만, 서른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
가격비교



"대학교를 원하는 대로 못간 것부터 내 인생이 틀어진 것 같았다."

 나 역시도. 그러나 나는 "원하는 대학을 못간 것"이 아니라 "너무 실망스런 대학"을 간 것부터 틀어진 것 같았다. 그게 분명 지금의 내 삶에 영향은 있었겠지만 (조금이라도) 그게 전부인지 아닌지, 혹 시작인지는 분명치 않다. 


처음 대학을 갔을때 충격 그 자체였다. 버스가 달리는 길 양옆으로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언제 거름을 쳤다는 듯 똥냄새가 진통을 했다. 이게 대학가는 길이라니. 이럴줄 알았으면 공부좀 할껄. 통학시간도 한시간 삼십분 남짓 걸리니 왕복 세 시간을 거리에 버려야 했다. 


근사한 20대는 고사하고더라도(固辭) 그저 평범하기라도 한 20대 대학생활을 보내고 싶었다. 주변에 수업 끝나고 같이 밥먹을 친구들이 온통 있으며, 방과후에는 멋드러지게 술 한잔하고. 그러다가 썸도 타보고. 연애도 몇 번씩 해보고. 동기들끼리 클럽도 가고 여행도 떠나고 사고도 치고. 대충 토익점수도 취직할 만큼 따놓고. 대충 이 즈음이 평범한 20대 대학생의 삶 아니겠는가.


그런데 졸업을 앞둔 지금에 와서는 어느것 하나 제대로 경험된 적이 없는듯 하다. 모든게 어정쩡하다. 저자가 생각했던 20대의 삶과 내가 생각했던 20대의 삶은 그 레벨이 천지차이지만 역시 괴리감이 있었던듯 하다. 내가 저자였더라면... 이것이야말로 꿈꾸던 삶이구나 했겠지..ㅎㅎ


"사서 고생한 것도 값진 인생공부이기는 하다... 그러나 몰랐다 ...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돈이 없으니 친구를 만날수도, 술한잔 하기도 부담스럽다. 어디 네일로 여행 한번 같이 가기도 어렵고. 과에서 하는 밥자리가 있을때면 언제나 빼기 일수였다. 돈이 없음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자신감 없음과 동치되었다. 그래서 방학때면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런데 이렇게 방학동안 벌어들인 목돈은 결국 나의 아주 사치스런 취미였던 "별보기"생활에 투자되었다. 지금 돌이켜보자면 그때 별보기를 중단하고 그 목돈을 내 겉을 꾸미는데 썼어야 했다. 그래 마땅했다. 나의 정체성은 내 기호로부터 나오기도 하지만 나의 사적 자아창조는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가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인정.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 인간관계도 그런 것이다. 09학번, 10학번, 11..12..13학번 몇몇의 후배들을 스쳐지나가며 보아왔지만 나처럼 무식하게 살았던 친구는 없는듯 하다. 다들 체계적이고 꿈이 있다. 이를 위해 순간의 기호(나에게 있어서는 천체관측, 아마추어 무선통신)는 잠시 포기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다. 그때 내가 공사판을 전전하며 벌었던 수백만원, 아니 천여만원에 이를 돈들을 내게 투자했떠라면. 연애도 제대로 해보고. 주변 친구도 많았을테고, 술자리 밥자리 이리저리 껴다니며 놀기도 놀고 아마 내가 생각한 20대 대학생활의 낭만적 삶에 조금은 더 근접했겠지. 중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인데, 그러한 것은 결국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 저자는 결론적으로 "전부 내 탓인 것은 아니오" 했지나는 여전히 "내탓이오" 라고 말하고 싶다. 공부를 안한것도 내 탓이고, 고백을 못한것도 내 탓이고, 힘들게 벌어온 목돈을 허튼 곳에 쓴 것도 나 자신이요, 또 전공공부를 게을리 한것도 내 탓이오... 모두 내 탓이오... 사람들이 떠나간것도, 그래서 이제 이렇게 혼자 남겨진 것도 모두 내 몸에서 나온 내 탓이오... 라고 말이다.


"피해자 원인제공주의. 힘있는 입장에서 아주 유리한 생각의 틀이다"

 정치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우리가 취업이 안되는 것, 경제가 어려운 것, 정치의 탓이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한다. 혹은 다 내 탓은 아니라고 한다. 이는 단연코 틀린 생각이다. 우리 삶이 힘들어진것은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면서부터이다. 경제가 어렵고 삶이 어려워진 데에 과연 내가 "일부 원인제공"을 했기 때문에 억울함을 감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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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철학 입문

저자
W.K.C.거스리 지음
출판사
서광사 | 2000-04-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고전 이외의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저자가 한 강의를 토대로...
가격비교


밀레토스 학파 1/3


탈레스


탈레스: 생성 변화하는 현상의 배후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제기한 최초의 철학자.


그는 그 원질을 '물'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되는 그 증거로

1. 만물의 자양분은 액체로 되어 있다는 사실

2. 뜨뜻함은 습기에 기인한다는 사실

3. 모든 정자의 본성 또한 액체로 되어있다고 하는 점.(이건 세모)

4. 육지가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


But

탈레스의 철학적 가치는 만물이 물에서 비롯된다는 그 주장에 있는게 아니다.

생성소멸 과정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는 데 있다. 결국 탈레스는 이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세계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물들이 생겨나게 되었는가 에 대한 물음을 묻고 있는 것이다.


*물은 액체로 되어있지만, 고체와 기체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


그리고, 그가 말하길, 曰

 무생물은 살아있다, 만물이 신들로 가득 차 있다. 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다,.

=> 탈레스는 이 세계가 살ㅇ라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듯.


탈레스가 영혼 또는 삶을 운동의 원인과 동일하게 간주하였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

만물이 신들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영혼이 전체 속에 혼합되어 있다'라고 아리스토텔 曰.


탈레스는 이 세계 전체가 프쉬케(생명의 힘)로 침투되어있음. 그것은 신적인 것.


=>통틀어서 물활론적인 사고.



밀레토스 학파 2/3

아낙시만드로스

탈레스 제자


최초로 지구 중심적인 우주관을 생각했던 천문학자.

그 曰,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부동의 상태로 있다. 

       생명체들은 원래 물 속에 들어 있다가 차츰 땅 위로 올라와 유형별로 다양하게 변화하게 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 (apeiron, 무한자) 을 아르케(시작, 근원 원리, 원질, arche)로 설정하고 있다. (최초로 아르케라는 말 썼다고 전해짐)


    그 曰 세계가 생성될 따, 영원한 것(아페이론)으로부터 온(건조한것)과 냉(습기찬것)의 산출적인 힘이 나온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마치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과도 같이, 불의 원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 주위에 형성된다..........

 

 그에 의하면 습한 지구가 증발하여 바람의 원인이 되었고, 태양과 달의 회전 원인이 되었으며 나머지는 바다로 남게 되었다. 블라블라 . 이리하여 온, 냉, 건, 습의 네가지 요소가 나오게 됨.


무한자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 개념: 한계가 없고, 제한이 없으며,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엑 아페이론(무한자)은 항상 동일한 것이며,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무규정적인 것으로서 불멸, 불사하는 올림포스의 신들과 같은 신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밀레토스 학파 3/3

아낙시메네스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아르케를 단일한 원소에서 찾았으며 그것을 공기라고 생각함.

어지보면 다시 탈레스적인 관점으로 후퇴. 


그 생각, 어떻게 해서 하나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사물들이 동일한 것으로 다시 용해되는가?

      

         공기가 가장 근원적인 실체이며 물질의 기본 형태라는 것, 그것은 신성을 지녔다는것, 우리들의 영혼과도 곤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는 가장 잘 균형있게 퍼져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과 습한것과 움직이는 것에 의해 보이게 된다. 그것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움직이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것들은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희박한 것으로 흩어지게 되면 불, 바람은 다시 농축된 공기, 구름은 공기의 집적.. 더 농축되면 흙,  돌. 그래서 생성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온과 냉의 대립자들이다.


그는 이런 주요한 형태의 것들(불,바람,구름,물, 흙, 돌) 은 공기에 의한 농축과 희박의 결과로서 가정되었다. -> 자연현상의 진행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함.


          그는 물이 공기가 농축되어 변화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기를 물보다 더 근원적인 아르케로 생각한 듯.


   중요한게, 공기의 농도가 사물의 질을 결정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아낙시메네스는 최초로 양과 질의 관계를 일원론적으로 정립한 그리스철학자가 됨. 

피타고라스학파 1/1


피타고라스에게 철학은 어떤 퓌시스(자연, 본성, 본질)의 합리적 탐구에마 ㄴ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구제라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생활방식의 기반 의미. 종교적 생활 有.


 피타고라스가 철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혼의 정화를 통해 운명과 출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 사상의 주요한 개념들은 관상(觀想)과 질서(秩序), 정화(淨化)로 압축요약가능


영환의불멸성과 그 윤회를 확실히 믿었다.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음


피타고라스는 종교적인 예식이나 규율, 절제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학이나 기하학, 음악, 천문학등의 학문적 진리 인식의 필요성에 커다란 비중을 둠.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우주창조에 운동의 원인으로 영혼을 도입. 윤회사상을 ...


 피타고라스는 우주자연세계에 대한 통일된 의미를 추구, 그것을 물질과는 완전한 단절은 아니지만 비물질적인것으로 여겨지는 수에서 찾음. 수학과 기하학적 특성에 대한 통찰은 오랜 숙고와 경험을 필요로 하기때문.


피타고라스 사상의 중심은 영혼의 정화를 통한 영생의 추구에 있다. a(그 정화수단 수학, 기하학 음악) 

             윤회사상 가지고 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의 형태로도...


피타고라스학파에게 영혼은 호흡, 공기, 또는 바람의 부분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하며 순수한 물질인 에테르를 의미하는것,


  그리고 육체는 죽음과 같은 것. 


위 a의 영혼의 정화는 두가지 방향으로 추구, 하나는 종교적으로 경건한 신앙행활, 다른 하나는 수학과 기하학을 통한 세계와 인간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 즉 철학에 의해 가능하다고 본다.


          세계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수로 균형 잡혀 있다는 것.  모든 것들이 이 규정되지 않는 비한정자인(아페이론에 해당, 무한자)인 수적인 비례관계에 의해서 규정을(한정)을 받게 됨으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사물들은 자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 그 구조는 수적인 비례에 의해 성립, 그러므로 수학은 질서잡힌 존재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 한 사물이 어떠한 수적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물의 기능이 결정됨.


 "만물은 수이다."  p. 108부터.


p. 113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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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틀렸을 가능성이 있음... 끄응,; 제대로 공부 안하고 대충 쓴거니 혹시 보는 사람은 지적좀 부탁바랍니다.




 19세기 말까지 미국과 서유럽의 몇 개 국을 제외하고는 산업혁명과 헌정을 함께 이룬 나라는 유라시아 대륙 맨 끝 일본이 유일했는데 바로 그 변화의 시작점이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이다. 이는  19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이다. 이번 장에서는 바로 그 메이지유신의 흐름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참고로 명치유신과 메이지유신은 같은 이름이다.


 명치유신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관련된 역사를 간단히 서술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에 죽은 이후 1600년에 이르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 후 상징적이고 권력이 없던 왜왕으로부터 쇼군으로 임명받은 뒤 열도의 실세가 되는데, 흔히 막부라고 일컫는 자가 된 것이다. 이때까지 일본은, 즉 일본의 사무라이 세력은 봉건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12세기 말 실권을 장악한 일본 사무라이 세력 중의 우두머리인 쇼군이 설치한 막부가 중앙정부가 되고 그 아래 각 무사단의 우두머리가 영주(즉 다이묘)가 되어 세습적 통치를 했다. 그 후 약 100년 간의 일본식의 전국시대를 거쳐 방금 말한 도쿠가와 막부(1603~1868)가 수립된 것이다. 이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때까지 존속했으므로 일본은 근 700년동안 사무라이 세력에 의학 봉건제, 즉 막부지배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도쿠가와 막부는 이전의 정권에 비교하면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도쿠가와 막부는 다른 봉건영주들을 압도할만큼 힘을 가지고 있었기 대문이다. 그 힘이라는 것은 군사적 힘과 경제적 힘이다. 군사적 힘은 차치하더라도 그리고 경제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대략 당시 일본 전체 쌀 생산량의 1/4가량을 장악하고 있었다.[1] 당시 전체 생산량이 약 3000만석이었는데, 그 중 막부 직속 할당량만 420만석, 그 휘하 가신인 하타모토, 고케닌의 할당량만 약 260만석, 700만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2] 왜왕(日王) 3만석, 유력한 귀족집안이 3천석, 왜왕 조정의 전체 석고를 다 합쳐도 15만석 이내라고 하였으니 그 규모는 짐작할만 하다. 그 외에 각종 생산, 무역 경제적 요충지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 요충지중 주목할만한 지점은 쇄국 체제하에서 유일하게 서양, 즉 네덜란드와 무역을 하는 도시였던 나가사키이다. 이곳을 막부의 직할령으로 삼아 해외무역을 독점했던 것이다.


 막부사회의 엄격한 신분체계를 기반으로 한 사무라이 세력은 이처럼 17세기 초부터 적과 일왕에 대한 정치적 견제를 성공적으로 이루며, 막부 초 마련된 여러 제도적 장치를 활용해 19세기 초까지 독보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해나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에도 막부시대의 사회적 안정덕분에 상업과 기술, 예술이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도층인 무사들은 자신들의 조직이나 기능을 개선, 쇄신하는데 별 자극을 받지 못했다. 그들의 관료 조직은 고도로 발전해 나갔지만, 군사적 능력은 눈에 띌 정도로 퇴보하였다. 조상의 칼과 갑옷을 가진 이들은 17세기에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전술과 무기 체계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고, 19세기에 이르러 서양에서 새로운 군사 기술과 전술 개념이 도입되니 그제서야 이를 봉건 사회의 특권과 전통에 대한 위협으로만 인식했을 뿐이다. 서양 문물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라고는 시대에 뒤떨어진 검술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된 전통 무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양이 운동이 전부였다.[3]


 군사적으로는 별 진전이 없던 반면 도시민들의 활동은 그 범위와 중요성이 커졌는데, 사무라이나 영주들은 도시에 머물기 위해 자신의 영지에서 거든 가산을 도시 상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소비했다. 도시에서의 무사계급의 생활은 상인들의 협조와 도움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였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무사계급들이 타락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의례적 과시나 장식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들 계급의 부채가 증가했다. 또한 실리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제대로 대체하지 못하였다. 19세가 초반에 이르면 일본 지배계급은 정점에 도달한 사회의 높은 생산력을 그들의 소득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세금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세금을 초과하는 상인, 도시민, 비 무사계급, 농촌지도자, 영주들의 잉여재산 축적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주의 아래에서 영주의 세수로부터 한몫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수밖에 없었던 개인 사무라이들 제대로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신분이나 직위 상승으로 하위 무사들의 희생을 보상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무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무사 계급 일부만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세수가 낮았다. 또 무사들의 수가 증가하며 이는 더 복잡해졌다. 따라서 한 집안의 아버지인 무사들이 자신의 녹봉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힘든 경우가 흔해진 것이다. 게다가 다이묘(영주)들이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사들에게 돌아갈 녹봉 일부를 '빌려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대다수의 사무라이들은 영예롭지만 궁핍한 삶을 살게 되었다. 19세기 초중반에 접어들면서 농민 반란과 봉기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면으로 다 설명 못한 막부 정권의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부조리가 대체로 심화되고는 있었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약 250년에 걸쳐 영속해오고 있었다. 막부 정권은 개혁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막부의 지출이 수입을 상쇄하는 등 실패가 지속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지배 형태는 세 가지 주요 관심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4] 첫째는 유력한 거대 영주(다이묘)를 통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국 내에서 쇼군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차단하는 것이다. 셋째는 유력한 거대 영주(다이묘)가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는 일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막부 정권은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재원적 및 기타 능력을 19세기 초중반에 상실한 상태였다. 상업과 도시의 급속한 발달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미일 화친 조약체결이 19세기 중반인 1853년 강요됨으로써 이를 시발점으로 일본은 개화적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미국과의 개화는 막부의 독단적 처사였기에 개화를 두려워한 반 막부세력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격동을 겪었다. 그러다가 700여 년 내려오던 막부가 1866년 패배하였고, 1867년에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5] 이때의 정부를 메이지 정부라 한다. 메이지 정부는 군사, 정치 등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국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주도(官主導)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일왕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6]



[1] 박훈 저,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p19, 민음사, 서울: 2014

[2] 마리우스 B. 잰슨 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p.93, 푸른길, 서울: 2014

[3]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p.25

[4] 마리우스 B. 잰슨 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p.93, 푸른길, 서울: 2014

[5] 인터넷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2723&cid=40942&categoryId=31787

[6] 인터넷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2723&cid=40942&categoryId=3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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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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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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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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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걸음 | 2010-04-1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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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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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3일 생각을 다듬고 수정하여 씀.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는 세계적으로 견줄만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우리에게 자원이라고 한다면 인적자원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을 통한 우수한 노동력의 배출이 중요했으며 이는 경제성장의 근간이기도 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우리에게 인재가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과거 우리가 경제성장을 하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외수 즉, 수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수시장의 활성화나 내수시장과 수출시장과의 균형도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교육현실, 경제현실은 그 사항을 반영하지 못하고 오로지 과거의 수출지향 이념에 따라 고학력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듯하다. 경제정책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부동산, 건설, 개발에만 힘쓰고 있다. 순리에 역행해 정책이나 법률을 이용해 억지로 버블경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거품을 더 키우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대학을 졸업만 하면 바로 취직하거나 원하는 바를 이룰수 있는 길이 열린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은 약 7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성세대, 특히 경제적 기성세대가 대학을 바라보는 요즘의 추세는 대학을 하나의 산업, 직업을 위한 곳으로 파악하는 논리가 득세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대학이라는 슬로건, 대기업과 대학 간의 유착이 그 증거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학의 기숙사에는 민간기숙사가 들어서고 있고 그러면서 학생들의 부담은 증대되었다. 학교 안에는 저렴한 식사 대신 브랜드 식당과 값비싼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있다. 신축 건물의 이름은 학교의 교육이념과 학문을 대표하는 이름이 아닌 그 건물을 짓는데 금전적으로 기여한 대기업의 이름이 들어가고 있다. 대학교와 학생간의 관계는 더 이상 학문의 디딤돌,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다. 그저 계약된 관계일 뿐이다. 또한 지금의 대학은 취직을 위한 자격 취득소화 된 것 같다. 다시 말해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게 상당히 효율적으로 소위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급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고 봐도 그렇게 큰 어패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대학은 그 ‘부품’을 공급하는 독점적 사업체로 변화하고 있다. 학위가 없으면 마땅히 취직할 길이 안 보인다. 사람에 대한 신뢰도나 직업 적합성에 대한 보증은 오로지 자격증, 또는 졸업장에 따른다. 자격증과 졸업장 없이는 다양한 어떤 시도를 해보기가 어려운 구조로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시인이 되어 만족스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문창과를 나오거나 거대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야만 한다. 사진작가가 되려면 사진과 관련한 다양한 스펙과 자격증, 학위가 있어야만 인정받기 쉽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으면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증 또는 학위가 필요하다. 요리를 통해 만족스런 삶을 살고 싶으면 해외로 요리 관련 유학코스는 거치고 와야 한다. 선생님이 되어 교육의 참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우선은 자격을 받을 수 있는 학과에 가서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어디를 가든 어느 한 틀에 맞춰지게 되는 것 같다.

 

자격증, 학위, 그 사람의 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한 가장 가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자격, 학위를 통해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제가 따라온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는 자격을 취득하기까지 값비싼 비용과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금껏 들인 정성을 “뽑아내”려 한다. 속칭 나보다 못난 사람보다는 더 노력했고 잘 났으니 그만큼 잘 먹고 잘살아도 된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다 등의 우월감과 자부심, 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 부나 잘먹고 잘사는 양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부족하다고 여겨진다면 부정-비리가 발생할 경우가 다분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판검사-변호사가 되었다면 정의와 법에 대한 순수성, 정치에 대한 순수성, 요리에 대한 순수성, 봉사와 성직관으로서의 공무원이라는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선생님이 되었다면 참교육에 대한 순수성은 잃어버린 채 대입중심의 교육, 경쟁의 교육, 정부나 국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교육을 하게 된다. 이런 자본주의적 성향에 따라 지금 대학에 있는 우리도 학문은 학점에 팔고, 정의는 두려움과 이익에 넘기려고 하는 것 같아 두렵다.

 

결론적으로 나는 모두가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두가 대학에 가며 대학을 궁극적 목표로 생각하는 듯하다. 나 역시 대학을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하나 왜 대학에 가야 하나 명증적인 이유 없이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의 발단은 이렇다. 본디 나는 공부를 안 하던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래서 대학도 상대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급”이 낮은 학교로 가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가야 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완고함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학을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장남이라는 이유-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으로 인해 중퇴를 하시고, 어머니께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학구열을 뒤로 한 채 대학을 가지 않아야만 했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에 가지 못한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고 실적과 능력을 아무리 높여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 의해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솔직히 대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에게 “똥통학교”일지언정 4년제 대학은 무조건 졸업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대학의 진짜 가치는 취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본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대학의 바람직한 모습은 절대 아니다. 숭고하고 신성한, 성직자와 같은 높은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학을 왜 가느냐 하는 참된 의미, 그리고 자기성찰을 통해 그 필요성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교육은 입시가 그 궁극적 목표임이 절대 아님에도 현실은 우리 학생들을 경제적 논리에 따라 입시 전쟁터로 내몰고 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을 살다 갈 뿐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가야 후회가 남지 않을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오래도록 가슴속에 그늘을 드리울 청춘시절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학에 가야 할지, 대학의 궁극적 목적인 학문의 탐구를 위해 대학에 가야 할지, 아니면 다른 나만의 삶을 개척해 나아가야 할지를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한다. 나 역시도 여전히 진행형인 고민이다.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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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제3판 개역본)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출판사
까치 | 2012-01-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수많은 정치지도자들, 혁명가들, 그리고 자국의 권력자의 실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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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당시 이탈리아 지역의 역사, 그리고 당시 교황과 군주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아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런 의미에서도 본 텍스트의 부실함을 변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군주와 그 체제에 대해 강조한 것도 이론적 이유라기보다는 당시 이탈리아 및 유럽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 불안요소를 해결하고자 했던 그의 소망에 기인했을 것이라는 다수 사람들의 판단 역시 그럴싸하다. 또한 지금에 와서야 읽고 있는 중인 우리 당사자들은 이미 다른 의미의 민주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치체제에 대한 개념적 괴리가 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점 역시 우리가 그의 책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 생각한다.

 「군주론」은 피렌체의 왕, 로렌초 메디치에게 보내는 마키아벨리의 글이다. 많은 사람이 말하듯이, 이 책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군주의 권모술수들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훌륭한 군주가 되고자 한다면 해야 할 군주교본이다. 따라서 그 속에서는 군주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대부분의 내용으로 할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군주 체제와 군주의 유지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해야 할 정책과 군주의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군주로서 국가적 운영 방법론이나 아니면 인간관계적 처세술, 혹은 군주 처세술 정도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처세술로서 군대와 백성의 다룸을 아주 중요한 측면으로 보았다. 군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우리내의 역사와 현실과 비교해서도 그렇고 세계사적으로 바라봐도 그렇지만 아주 날카롭고 유의미한,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참고할만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와 나는 이 책을 정치 기술적 측면(political technique), 정치학적 측면(politeia 또는 theory of the state적인), 역사학적 측면(A view of the history)에서 그 의의를 논해보기를 시도해 본다. 여기서 주요 테마는 정치 기술적 측면이며, 이 정치 기술적 측면을 발전시키기 위해 역사관적인 방법과 정치학적 이론을 토대로 빌렸을 뿐이다. 즉 나는 이 정치 기술적(권모술수적) 측면을 이 책의 목적이라고 가정하는데, 이 책의 목적에 따라 우선 그 토대가 되는 역사학적 가치와 정치학적 입장을 언급하고 마지막 결론으로써 정치 기술적 입장을 언급하도록 해보겠다.

 먼저 첫째로 역사관적 측면에서 보자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쓰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럽 역사 및 로마 역사를 인용했다. 마키아벨리 당시의 역사적 혼란을 다잡기 위해 과거의 지혜를 빌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음에서 우리는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근거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걸을 때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이 디뎠던 길을 따라 걷고 모방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하지만 타인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을 수도 없고 당신이 모방하고자 하는 사람의 비르투에 도달


할 수도 없으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위대한 사람들이 밟았던 길로 들어서거나 대단히 탁월했던 사람


들을 모방함으로써 자신의 비르투가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들의 냄새는 풍길 수 있어야 하


기 때문이다."  ( 군주론 제 6장 첫 단락 )


 두 번째, 마키아벨리의 정치학적 측면의 의의는 그가 말하는 군대, , 정치체제, 백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군사력과 함께 군사체계의 정비를 중요시하는데 앞서 말한 역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대의 정치적 측면에서도 참고할만 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군주를 향한 외부로부터의 칭찬과 비난, 너그러움이나 인색함, 가혹함과 자비심 등에 대한 그의 언급 역시 의미 있다고 여겨진다. 칭찬과 비난, 너그러움과 인색함, 가혹함과 자비심의 사이를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참고 삼아 위태롭게 넘나드는 모습은 마치 공자의 중용(中庸)을 보는 듯 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들은 군주론 제 15,16,17,18,21장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위 둘을 근거하여 그는 훌륭한 정치적 처세술을 완성한다. 그 완성의 결론의 내용은 앞서 말했듯이 군주로서 국가적 운영의 방법론 / 아니면 인간처세술이 아닌 군주처세술 정도로 볼 수도 있는데, 나는 여기서 앞의 두 번째에서 말한 인색이니 가혹이니 자비니 하는 백성으로부터의 평판을 전혀 무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했다. 이 점이 주의할만하다고 여겨지는 이유가 그가 말하는 군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군주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군주론」의 정치기술적 처세들은 기존의 군주체제처럼 군주 스스로, 또는 군주와 그 일당들의 영구적 이익만을 위하여 제시된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안위와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공리주의적이라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권력에도 유용하지만 또한 백성을 포함한 국가 전체로 보았을 때에도 유용한 테크닉으로써 「군주론」을 제시한 것 같다.

 첨언하여, 그의 정치 기술적 수사술의 이면에는 역사관과 정치적 이론 외에 그의 운명론적 사고관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의 증거로써 그의 책에서 아주 비중 있게 다뤄지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비르투'인데, '비르투'는 대체로 능력(타고난 능력, 덕성)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싶지 않은 까닭에 운이 우리 행동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사실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운의 여신은 그 나머지 절반 또는 그 가까이를 우리가 지배하도록 남


겨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 전적으로 운에 의존하는 군주는 운이 변함에 따라 멸


망한다... 시대 변화에 자신의 행동방식을 맞추는 사람은 성공하고 마찬가지로 시간과 일치하지 않게 


처신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군주론 제 25 p.125~126)



 마키아벨리는 역사적 근거를 들며 이상적인 세계(국가)를 향한 통치의 과정에서 다양한 방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데 또한 해결책으로써 이를 능력의 측면의 비르투로써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여우와 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대목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이상적이게 다스림에 있어서 단순히 그런 정치 기술적 측면만을 바라본 게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 나머지 절반을 위한 테크닉을 필요로 한다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가 이 책을 써낸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 정리하자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제 통치의 효율적 측면을 찬양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는 점은 분명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여타의 다른 지점들을 볼 때면, 「군주론」은 단순 권모술수라는 딱지로부터 벗어나 우리 삶 속에서의 지침서로 쓰일 여지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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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육 : 칸트의 영구평화론>

(*위 사진: 위키피디아 임마누엘 칸트)


영구 평화론: 하나의 철학적 기획

저자
임마누엘 칸트 지음
출판사
서광사 | 2008-1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영원한 평화만이 정치상의 최고선이며, 인류가 이성을 지니고 있는...
가격비교

 

영구평화론은 서언(유보조항), 1(예비조항), 2(확정조항), 1추가조항(보증), 2추가조항(비밀조항), 부록1(도덕-정치간 대립), 부록2(도덕-정치간 조화)로 구성되어 있다.

 

1. 서언 영구평화를 위하여 - 유보 조항

-유보조항 : 서언은 유보조항으로, 칸트는 여기서 이론적인 정치학자(탁상이론가)와 실무에 종사하는 실천적 정치가를 언급하면서, 그러면서 이들(칸트와 같은) 이론적 정치학자의 언명들은 실제로는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으므로 어떠한 악의적 비판을 거부하고 있다.

2. 1장 국가 간의 영구평화를 위한 예비조항 6가지 ; 칸트는 영구평화를 위하여 금지해야 할 조항으로 6개 항목을 두었는데, 이것이 예비조항이다.

2-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조약도 결코 평화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1]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전쟁의 여지가 남아있는 조약이라면 평화조약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칸트에 의하면 평화란 적의의 종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

2-2. "어떠한 독립국가도 (크고 작고에 관계없이) 상속, 교환, 매매 혹은 증여에 의해 다른 국가의 소유로 전락될 수 없다."

국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있다.[3] 국가란 (마치 인간처럼) 국가 자신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국가는 인간의 사회이고 국가 자체 이외에 아무도 이 사회에 대하여 명령하거나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국가는 도덕적 인격이기 때문에 물건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3. "상비군은 조만간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상비군은 타국을 위협하므로 (마치 chicken game과 같이)[4] 이로 인해 쌍방은 군비경쟁의 과잉지출 발생하여 궁극에 이르면 군비경쟁의 과잉상태(냉전 같은)보다 차라리 단기간의 전쟁을 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 상태에 이른다. 그런데 외부의 적에 대항할 민병 대만큼은 허용하고 있다.[5] 추가하여 재화의 축적은 다른 나라에게 전쟁의 위협이 비춰지기에 그 자체는 전쟁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이상주의적이다.

2-4. "국가간의 대외적 분쟁과 관련하여 어떠한 국채도 발행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국채란, 한 나라의 정부가 외국 정부 또는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국채, 즉 자본은 전쟁을 위한 자금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을 내포한 국채는 안 된다.

2-5.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와 통치에 폭력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2항에서 말했듯이) 국가라는 것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보는 대목 같다. 국가 상호간은 각자의 내정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것. ab에게 나쁜 본보기를 보여준다고 하여 그것이 곳 a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 그러나 c가 내부적 불화에 의해 a b로 분리되어 각자가 c전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칸트는 한 나라가 내부의 불통일로 인하여 둘로 분열하여 제각기 독립된 별개 국가로 생각하고 전체의 권리를 주장하는 상태를 무정부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내부 갈등이 판결 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간섭은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분단 국가

"한 국가가 내부의 분쟁에 의해 붕괴되었을 경우, 이것은 다른 어떤 국가에도 예속하지 않는 한 국민의 자기의 내부의 질환과 투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분쟁이 아직 결말이 나지 않는 한 외부로부터의 폭력적 간섭은 이 국민과 국가의 자율의 훼손일 것이고 따라서 모든 국가의 자율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 국가정체?[6]

2-6. "어떠한 국가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동안에 장래의 평화 시기에 상호신뢰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적대행위-암살자나 독살자의 고용, 항복 조약의 파기, 적국에서의 반역 선동 등-을 해서는 안 된다."

6번 조항을 최소한의 신뢰도라고 판단한다. 만약 이러한 최소한의 신뢰도마저 사라진다면 상호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으며 또 "평화"시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평화의 의도를 전적으로 절멸시킬 가능성이 있다.

2-※ 엄격한 조항과 느슨한 조항

-엄격한 조항 : 주위 여건에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적용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1,5,6항이 이에 해당된다

-느슨한 조항 : 제외될 수는 없지만 사정여하에 따라서는 주관적으로 확장하여 시행의 연기가 허용되는 것으로 2,3,4항이 이에 해당된다.

3. 2장 국가 간의 영구평화를 위한 확정조항 3가지

 앞에서 말한 예비조항이 금지법칙의 형식인 반면 이 확정조항은 '하여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적극적 조항이다. 여기서 칸트는 자연상태는 전쟁의 상태라고 말한다(평화가 정초되지 않은 상태. 시민법 상태에 있는 사람만이 평화의 가능태에 있는 사람이다). 자연상태는 오히려 전쟁상태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자연의 전쟁상태에 대한 공포로 인해 우리가 인위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것이 자연의 어떤 순리이며, 또 인간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다. (자연상태에 있는 사람은 누군가 주변에 있을 경우 실제로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잠재적으로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이때는 상대방을 나와 함께 시민법의 적용을 받도록 강요하거나 그를 추방할 수 있다.) 그러면서 칸트는 아래 세 가지 확정조항의 수립을 통해 평화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래는 확정조항 3가지의 구체적 내용이다.

3-1.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 체제는 공화 정체이어야 한다."

 -"이 시민적 체제는 1. 인간으로서 한 사회 구성원의 자유의 원리에 의해, 2. 모두가 단 하나의 공통된 입법에 의존하는 원리에 의해, 3. 국민으로서 평등의 원칙에 의해 확립된다... 이 유일한 체제는 원초적 계약의 이념[7]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

 -공화정 체제 이외의 체제에서는 전쟁에 대한 결정이 신중하지 못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때의 지배자는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소유자로서이며, 전쟁으로 인한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3-1-※ 국가의 유형[8](각주참고)

3-1-※※ 대의적이지 않는 모든 정부 형태는 정확하게 말해서 형식을 갖춘 것이 아니다. [9] 입법자가 입법자이면서 동시에 의지의 집행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10]

 -칸트는 민주정치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무시하고 혹은 동의하지 않는 한 사람을 반대해서까지 의결할 수 있다고 비판, 즉 민주제는 필연적으로 전제정체라고 하며 비판하는데, 이는 (사전적 의미에 따르자면 국민전체 혹은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인) 공화정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한다.

 -칸트는 대의적 통치형식이 가장 바람직한 통치방식이라고 복 대의제도에 맞는 통치방식은 공화적 통치방식에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대의적 통치형식도 결국 전제제로 귀결되지 않나?

 -공화적 체제는 제도적으로 확정된 통치방법을 말한다. 공화적 체제는 개인적인 정직성이나 현명함을 지니 뛰어난 지배자의 선량한 통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배자 1인의 훌륭한 선정은(마치 마키아벨리와 같이) 지배자의 죽음과 함께 끝나 버리는 통치이기 때문이다.

3-2.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 체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상태에 있을 경우 서로 이웃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서로서로 해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고.(p.25 참고) 따라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공민적 체제와 비슷한 체제에 귀속되기를 요구할 수 있고 또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아마 국제연맹일 것이나 이것이 국제국가일수는 없음을 주장한다.[11] 무법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자연법을 준수하도록 하는 한편 자연 상태를 청산하도록 요구할 수 있지만,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요구를 국가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12]

*교재 p.36[13]

 칸트는 국제국가가 아닌 국제연맹을 제시한다. 칸트는 초강대국들에 의한 전반적인 평화를 배척한다. 가장 무서운 전제정치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14]

3-3.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 국한되어야 한다."

우호란 적으로 간주되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우호 속에는 일시적인 방문의 권리, 교제의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지구 땅덩어리를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그런 권리를 갖는다.

결국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한다.

지구의 표면에 대한 공통의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교제를 하게 된다.

(자문 p.52)인간 자신의 이성이 인간에게 의무로서 부과한 목적을 위해서 자연은 무엇을 해왔는가? (자답 p.52-56)

세계 공민법은 세계 시민법을 말하는 것 같다. 자유로운 여러 국가들의 국제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국제법과 국제시민법의 차이를 모르겠다. 국제법도 법이고, 국제시민 법도 ""이다. 그리고 국제시민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제법, 즉 국제국가일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어떤 ""에 두는 것은 다를 바 없다.

4. 1추가조항 영구평화의 보증에 대하여

 책에 따르면, 영구평화의 보증은 "자연"이 해준다. 자연의 기계론적 과정에는 인간 상호간의 불화를 통해 인간 사이의 화합을 창출해 내려는 합목적성?이 맹백히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이 영원한 평화를 보증하는 것은 운명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15]

자연의 예비적 설계는 다음과 같다.

1. 자연은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

2. 전쟁을 통해 모든 지역에, 극히 불모의 지역에까지 인간을 쫓아 보내 그곳에 살도록 하였다.

3. 역시 마찬가지로 전쟁에 의해 인류가 다소간이나마 상호간 법적인 관계에 들어가게 했다.

5. 2추가조항 영구평화를 위한 비밀조항

공적인 평화의 실현 가능한 조건에 대한 철학자들의 준칙을 전쟁을 위해 무장한 여러 국가들은 충고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가 법률가보다 철학자의 원칙을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는 것일 뿐이다.

6. 부록1 : 영구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16]

7. 부록2 : 공법의 선험적 개념에 따른 정치와 도덕간의 조화에 대하여

준칙의 공개성 원칙 - "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관련되면서 그 준칙이 공개성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정의롭지 않다"

7-1. 국법, 즉 국내법에 관하여

7-2. 국제법에 관하여

7-3. 세계 시민법에 관해서

<토론>

1. 칸트식 영구평화는 가능한 이야기인가 허황된 이야기인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2. 국가 정체 : 국가를 인격적이라 할 수 있을까? 국가가 최초의 존엄성이나 정당성을 확보하는 시점(절대 침범 불가능한)은 언제로 보아야 할까?

3. 평화를 위한 선택 - 국제연맹이냐 국제국가냐

4. 힘에 의한 평화 ( 정의나 올바름에 대한 생각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5. 전쟁은 악인가?



[1] 사전에 알 방법이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그러니까 인간이 만든 조항 치고, 평화를 향한 의도적이면서 순수한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에서 회의적이며 따라서 1번의 내용에 회의적이다.

[2] -소 협정, -북 불가침조약

[3] 국가 자신을 말할 때 그 "자신"이 무엇을 지칭하는가, 국가에는 인격이 없다. 국가는 통치자를 필요로 하는데 통치자를 말하는 것인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전체를 칭하는 말하는 것인지.

[4] 어느 한 측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 그런데 치킨게임도, 어떤 정의나 올바름에 대한 심판이 목적이라면 견뎌야 마땅하다.

[5] 그런데 칸트는 상비군은 반대하면서 민병대는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민병대 역시 군으로의 속성을(잠재적이든)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과연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6] 도의적 차원에서의 내정간섭은 납득할만하지 않을까? 추가하여 한국은 무정부상태인가? 칸트가 말하는 국가 정체는 무엇인가?(국가를 경계하는 기준) 이 주장에 따르자면 중국 대륙의 경우는 수 개의 것으로 다시 분할되어 마땅할 것만 같고, 소련 대륙 역시 몇 개의 것으로 분할되어 마땅할 것만 같다. 여기서 나는 영구적 국가의 원본판?으로 인정받는 그 시작점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이 발생. 국가를 정의내리는 시작점(즉 그 기준에 따라 한 국가의 정체성이나 인격성을 정의내리는 그런 시작점이 되는 boundary)을 찾기란 너무 애매하다. 도시국가? 민족도 애매하고, 태초에 있어왔다고 말할 신화적, 관습적 국경선도 애매하다. 한 국가의 정당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어느 것 하나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든 국가는 다른 이질집단의 간섭이나 폭력으로부터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 그 집단 내에서 평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7] ?

[8] 칸트는 (교재 p.29) 체제의 형태를 분류하는데, 권력소유자의 정체에 따라 군주제(지배자 1), 귀족제(연합된 소수의 지배자), 민주제(모든 구성원 지배) 그리고 통치방식에 따라 공화정체(입법과 행정을 분리시킨 상태), 전제정체(지배자 자신의 의지로 국가가 취급되는 상태)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정체의 분류를 공화정체(국민 전체 혹은 국민 일부가 주권을 갖는 형태), 군주정체(1인 정치지만 법제가 성문화?되어 있다), 전제정체(1인 정치지만 법제가 군주의 의지에 따른다) 3가지로만 분류하고 있다.

[9] 대의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선거권이 있을 때에만 주권자로서 존중 받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10] 입법자는 법을 제정하면서 동시에 그 법의 제약하에 들어간다.

[11] 어째서?

[12] 연방 체제(다양한 주권을 보유한 단위가 보다 큰 지배하(이들을 연방으로써 묶는 하나의 원칙-법이나 필요성, 요구 등)로 통합되어 가는 하나의 구조가)야말로 하나의 법에 의존하는 것 아닌지? 국제법이나 국제시민법이나 어차피 ""이라는 이름 하에 귀속되는 것.

[13] 결국 칸트가 영구평화론을 의도한 이유나 궁극적 목적이 이것 때문이 아닌가? 칸트는 이론적으로 국제 국가는 마땅하다고 보나 실천에서는 거부된다고 주장한다(p.37).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국제 국가가 평화를 실현시켜지지 못한다면 연방제 역시 평화를 실현시켜줄 수 없을 것 같다.

[14] 강제력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아닌가?

[15] 칸트는 자유의지를 부정하나? 어차피 평화로의 귀결이 자연에 규정된 것이라 한다면 굳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영구평화는 언젠가는 완성된다는 입장인 것 같은데, 이것은 마치 언젠가는 완성될 공산주의를 보는 듯 하다.

[16] 이 부분에서는 자연스레 마키아벨리가 떠오른다.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고 있다. 같은 말이지만 있는 것(현실정치)과 있어야 할 것(당위, 도덕의 영역)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본다. 칸트의 경우는 도덕과 정치는 양립가능 관계라고 한다 있다. 칸트는 전쟁의 폐기와 평화의 실천, 확립을 도덕적 의무로 보고 있다.

 영구평화론에서는 무정부상태가 나오는데, 이 상태에 대한 대처 역시 마키아벨리와 대립될 수 있다. 칸트는 이 무정부 상태와 그 상태로부터 나오는 공포에서의 반동을 통해 평화로의 향함을 자연의 이치 정도로 보았고, 즉 그런 흐름에서의 극복가능을 이야기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비르투로 그런 자연이라는 포르투나를 극복 또는 보완하여 이겨낼 것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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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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