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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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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2007)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7.9
감독
톰 티크베어
출연
벤 위쇼, 더스틴 호프먼, 알란 릭맨, 레이첼 허드-우드, 비르기트 미니히마이르
정보
스릴러, 드라마 | 독일, 스페인, 프랑스 | 146 분 | 200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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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단 스크립 / 인용/ 참조 금지 
 
1.원작의 전반부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은 그루누이다. 그는 파리의 더럽고 악취나는 생선가게에서 태어난다. 그루누이의 어머니는 생선가게에서 일하는데,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신의 자식을 생선내장, 쓰레기더미에 버려버리지만 그루누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어머니는 참수형에 처해진다. 사람들은 그루누이를 싫어한다. 그루누이에게는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과, 엄청난 식욕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냄새가 안 난다고 외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과연 내 냄새의 기준은 무엇인지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내 냄새란 과연 무엇일까? 단지 내 몸에서 나오는 냄새라면, 너무 불분명하지 않을까? 분명 땀 냄새, 기름 냄새, 기타 분비물 등의 냄새로 그것이 인간의 향이라고는 정의내리기 힘들 것 같다. 그루누이는 땀 냄새, 입 냄새,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분비물냄새나 기타 이유로 나는 냄새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 모든 외적 요건을 제외한 순수하게 사람의 살의 냄새를 말하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사람 살 그 자체의 냄새라면 나는 그 냄새의 존재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냄새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냄새가 안 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루누이에게는 냄새가 없는 반면, 코가 매우 발달했다. 보통 인간이 맡지 못하는 어떠한 냄새도 다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불행인지 행복인지는 모르겠다.


 그루누이는 진드기같이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 그는 조금 더 젊어진 해에 무두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예전에 길러주던 유모가 팔아버린 것이다. 무두공장에서 일하면 얼마 못가 죽는데, 역시나 주인공 그루누이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주인에게 인정을 받는다. 어느 날 그루누이는 루브르 궁전의 행사를 보러 가는데, 그곳에서 어떤 향기를 맡게 된다. 그 향기는 어느 여인의 향기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향기가 언급된다. 레몬, 유자, 몰약, 계피 나뭇잎, 박하향, 자작나무, 장뇌, 솔이파리, 감귤, 실측백나무, 사향, 재스민, 수선화, 모과나무, 붓꽃, 호두기름, 수련 꽃다발, 살구꽃 향기 등등 책을 읽는 나로서도 이러한 냄새들을 맡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아무튼, 그루누이는 그 여자의 향기에 엄청난 황홀함도 느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그리고 결심한다. 프랑스 향수제조가인 발디니의 조수로 일하면서 가장 위대한 향수 제조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2. 영화에서의 「향수」
 영화에서 시점은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물론 소설도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영화는 중간 중간에 해설자가 나와 이야기를 서술해 주는데 이것이 영화 「향수」에서 눈에 띄는 형식적 특징이다. 아마도 소설의 전지적 작가시점을 해설자로 대체한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다른 부분도 있고 그루누이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이 다르다. 영화의 그루누이가 광장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처음 살인을 저지른 여자를 생각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본질적으로는 가질 수 없는 그 여인과 향기에 대한 그리움, 사랑 받고 싶음에 대한 슬픔일까? 그렇지만 그의 눈물은 후회로는 보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흉악하고 인간에 대해 냉소적였던 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잠시나마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영화에서는 소설과는 다르게 주인공을 다소 미화시키는 것 같았다. 주인공의 생애에 대한 동정심을 끌어내고자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은 ‘중립’을 지키고자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그루누이가 그라스로 가는 도중 들린 동굴에 대한 이야기가 많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짧게 나오고 생략되는 부분도 있다. 소설에서는 첫 번째 희생된 여자가 오이를 팔았으나, 영화에서는 자두를 팔았다. 마지막 광장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 또는 증오가 강한 것 같았다. 그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싫어했고 도망치고 싶어했다. 영화에서는 소설에서의 ‘분노’와는 반대되는 그루누이의 모습이 보였다.


 소설이나 영화나 향수에 대한 표현은 매우 뛰어난 것 같았다. 영화보다는 원작이 향기를 표현하는 면에서는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언급된 향을 맡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영화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향수를 만든 가게로 화면이 이동하는 순간 매우 화려해진다. 그 전에는 다소 어둡고 칙칙하면서, 습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마도 주인공 그루누이의 심리적 변화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바로 그루누이의 삶의 목적을 찾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루누이는 스스로 그 목적에서 무의미함을 도출해 낸 듯하다. 또 영상이 갑자기 화려해졌다고 했는데,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밝게 변한 시점은 아마도 그라스로 향하는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3. 그루누이와 인생의 실존주의/회의주의에 대한 경고?
 영화에서, 광장에 선 주인공은 어찌 보면 실망한 듯도 했다. 아니 만족을 못한 것 같았다. 분명 최고의 향수를 만든다는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열렬한 환호와 사랑을 보낸다. 하지만 그루누이가 향수를 묻힌 손수건을 날려 보내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은 그 손수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루누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서로 행복을 나눈다. 사람들의 관심은 본질적으로 그루누이가 아닌 향수의 ‘향’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그루누이는 지금까지 한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내가 볼 때 영화에서 광장의 그루누이는 마치 군중들 속의 외톨이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최고의 향수에 도취되나 그루누이는 그렇지 못했다. 딴은 그 향수로 인해 살인자인 자신에게 사랑과 바보 같은 존경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증오를 느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결국 그는 더러운 악취가 풍기는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향수를 온몸에 바르고 거지들 틈에서 산화한다. 이렇게 자살함으로써 끝내는 것은, 나는 그가 향수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의 허무함이랄까? 작품을 보고 읽은 뒤 내게 가장 크게 남는 것은 과연 그루누이는 여태껏 어떤 목적을 위해 살인을 하면서 최고의 향수를 만든 것일까?에 대한 것이다. 목적에 대한 목적 내지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아마 주인공은 이러한 실존적 위기가 너무나 심각하여, ‘의미 없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편안한 자살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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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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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아주 공들여 작성한 것입니다. 무단 스크랩, 퍼가기, 과제용 단순 복사 붙여넣기를 저는 반대합니다. 우리모두 출처를 표기합시다. 우리는 지성인입니다. 최소한 이 글을 찾고 있다면 우리는 지성인입니다. 지성인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끝까지 책임을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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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팔레스타인-이스라엘간의 전쟁으로 중동지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감자다.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기 이전 나는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종교적 분쟁으로서 바라볼수는 없을까 하여 레포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이를 나는 지역분쟁과 종교라는 강의에 레포트로 제출했다. 이를 이곳에 감히 공개해본다.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요약이다. 비록 2000년 이후 사건들에 대해서는 상세하지 못해 '최신자료'축에는 들지 못하지만, 나는 이를 통해 잘 모르던 여러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좀 더 사실적 이해를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돈을 등에 메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들 유대인은 반성해야 한다. 세계의 경찰국가 행세를 하는 미국역시 반성해야 한다. 모든 세계의 역사를 바라볼 때 진정한 악의 축은 바로 미국이다. 핵확산 금지조약, 전쟁, 자본 등을 통한 국권침탈.
 
팔레스타인분쟁-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나는 팔레스타인 분쟁을  1)분쟁의 당사자들이 둘 혹은 그 이상의 뚜렷하게 구분되는 종교적 성향 혹은 정체성을 지닌 집단들로 구성되고, 2)대립하는 각 진영에 가담한 인구의 종교적 구성이 상대적으로 동질적이거나, 갈등의 과정에서 점점 동질화 되어가며, 3) 당면한 대립과 갈등이 종교적으로 해석 또는 정당화가 되고, 4)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자들, 조직, 리더십, 신학 등 종교적 자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원되는 5)폭력적이고 지속적이며 조직적인 갈등이 발생함의 종교분쟁의 5대 성립요건1)에 따라 중동지역, 그중 팔레스타인분쟁을 선정해 보았다. 


 중동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유대적 공동체, 곧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간의 대립이며,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 간의 대립이다. 나는 이 두 갈등을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유대교와 이슬람교
 1) 이슬람교를 부정한 유대교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모두 일신교의 계율 종교이며, 그 원전으로 삼는 것이 바로 율법(모세5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약성경)이다. 그리고 이슬람교도 역시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같은 신을 신앙하는 종교 동지가 되겠지만 본가인 유대교로서는 그렇게 보지 않으며, 이슬람교 역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교조 마호메트가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신의 아들이라고 내세우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마지막 예언자’로 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예언자가 또는 구세주가 등장하여 유대민족을 신의 이상국가로 반드시 인도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유대교로서는, 이것은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는 망발이며 마호메트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그 마호메트가 신을 아라비아어로 알라라고 부르고, 그 알라가 새로 자신에게 강림해서 말씀을 전하여 코란이 성립되었다고 공언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에게 이 코란의 계율이야말로 신의 계율이기 때문에, 마치 신이 두 곳에 존재 하는듯한 환상을 준다는 것도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이모두가 유대교에게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스러운 행위로 보이는 것이다.

 

2.팔레스타인 지역-예루살렘
 1)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중동에서 탄생했다. 또한 천지를 창조한 유일신을 숭배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는 공통된 구조를 갖고 있다. 세계의 시작과 끝이 있으며 최후에 신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종말관도 같다. 그러므로 이 세 종교는 한 뿌리에서 나온 유일신교로서 서로 형제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유대교도에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은 신이 내려준 ‘약속의 땅’이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 민족이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시오니즘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의 명칭이다. 예루살렘에는 유대교 신전의 터인 ‘신전의 언덕’이 있으며, 그 일부인 ‘통곡의 벽’은 유대교도에게 가장 중요한 성소다. 


 한편 이슬람교도에게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에 이은 제 3의 성지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 따르면, 예언자 모하메트가 메카로 돌아갈 때 알아크사 사원 앞의 바위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를 타고 승천했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처형된 골고다언덕이 있으며, 그 위에 각 종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성묘교회가 있다.
 이렇듯 세 종교의 성지가 성벽을 둘러싸인 가로세로 약 1킬로미터 규보의 좁은 시가지에 밀집해 있다는 사실에서 예루살렘의 특이성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76년의 제 3차 중동전쟁으로 점령한 동예루살렘을 병합했는데, 그 결과 반경 수 킬로미터 이내에 이들 3대 종교의 교회, 모스크, 성지 등이 26개소(국제연합 조사)나 밀집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비탄의 벽, 성분묘교회, 알 아크사 이슬람 사원, 바위의 돔, 에티오피아 교회, 콥트교회 등 소수종파의 것까지 합하면 ‘성지의 박물관’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구약성서 창세기 15장 18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집트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준다고 약속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오늘의 팔레스타인이다. 


 히브리족은 4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와 B.C. 18세기부터 16세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족장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히브리민족이 이후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이다. 그 후 이들이 기나긴 이산의 고통을 겪게 된 것은 A.D. 72년경 로마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받고 완전히 패망하여 고향에서 쫓겨나 세계를 방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19세기말까지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들의 독차지가 되었다.
 유태인에게 예루살렘은 ‘3000년 전부터의 수도’였다. 어쨌든 다윗왕이 이곳을 수도로 정한 것은 기원전 1000년경. 그 후 다른 종교의 교도들에게 몇 번이나 파괴되었는데, 그 첫 번째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네브카드네자르 2세의 정복이다. 이때 유태인은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소위 ‘바빌론 포수’이다. 그리고 ‘네브카드네자르의 재림’을 자칭하는 후세인 대통령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은 적도 있다.

 

 3) 과거 기독교 로마 교회에 의한 십자군 원정은 사실상 이슬람교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피해자라는 관계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대하여 공동으로 투쟁한 것은 아니다. 사실 당시의 유대교는, 굳이 이슬람교가 유대교를 상대할 만큼 큰 교단이 아니었다. 때문에 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평화롭게 공존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은 유혈의 연속이었다. 유태, 기독교를 극복하는 종교로서 등장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이슬람 군단은 638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리고 뒤이어 1099년에는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어 다수의 주민들이 학살당하였다. 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1187년, 아랍의 영웅 살라딘이 이곳을 다시 탈환하여 예루살렘을 기독교도와 유태교도에게도 개방된 도시로 만들어 간신히 이 거리도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19세기 이래의 제국구의 열강의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암투와 시오니즘의 대두에 의해 예루살렘은 한층 복잡한 문제를 안게 되었다. 1948년의 이스라엘 건설,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독립국가 건설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이스라엘은 1980년의 ‘예루살렘 영구 수도법’으로 ‘예루살렘은 다시는 분할되지 않는 이스라엘의 항구적인 수도’라고 규정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정면으로 맞섰다. 예루살렘에 수도를 둔 것은 역사상 유태인뿐이고, 예루살렘은 유태인에게는 유일무이한 성지라는것, 이슬람교도에게도 성지이지만, 그들에게는 메카, 메디나에 뒤이은 세 번째 성지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우익연합인 리쿠드는 물론 여당인 노동당까지 이 전적으로 같은 입장이다.

 

3. 본격적인 갈등의 서막-시오니즘
 유대교와 이슬람교 종교 대립의 무대가 팔레스타인이 된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유대교가 현실적인 영토로 삼고 있는 곳이 이 지역 외에는 없고, 또 이 땅에 3대 일신교의 공통 성지인 예루살렘이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을 캐보면 영토문제에서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종교분쟁이 아니었다고 한다. 선주 팔레스타인인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에게 강제로 빼앗긴 영토를, 또는 국제연합에서 선주민 정착구역으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점령한 구역을 돌려받으려는 데서 발생한 영토분쟁이었다. 
 

 선주 팔레스타인인의 종교는 대부분이 이슬람교지만 그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섞여있고,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을 이끄는 하바슈등은 그리스 정교도이다. 그 영토분쟁이 서서히 유대민족 대 아랍민족이라는 민족분쟁 또는 종교분쟁의 색체를 띠게 된 배경은 유대민족국가인 이스라엘의 독선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16세기 이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1918년 이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1881~82년,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의 유대인 배격이 심해져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 내의 유대인에 대한 집단적 반유대운동을 계기로 헝가리 출신의 오스트리아 거주 유대인이자 언론인인 헬센이 세계의 유대인에게 호소하여 1897년에 스위스의 바젤에서 제 1회 시온이스트회의를 소집, 유대인들의 조국복귀운동(Sionism, '시온으로 돌아가자')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족하였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 한 까닭은 역사적으로 볼 때 기원전 1000년경부터 서기 1세기 무렵에 걸쳐 이 땅에 유대교도들의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20년부터 1945~1946년까지 ‘유대국민기금’과 ‘팔레스타인,유대식민협회’의 기금모금으로 토지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세계 각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탄압을 겪고 나서 유럽에서 백인들에게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자신들이 2000년 전 쫓겨났던 팔레스타인 땅으로 모여들어 이곳에 조국을 건설하겠다며 시온이즘을 내세우고 유대인들의 결집에 나섰다. 유대인들이 20세기 중반에 ‘귀환’을 실행한 것이다. 자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롯한 아랍인들과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4. 팔레스타인 분쟁의 배경-영국
 현재의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아랍과 이스라엘과의 대립, 즉 팔레스타인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이중적인 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 영국은 아랍과 협정을 맺는 한편, 몰래 프랑스와도 협정을 맺어서 ‘삼중사기’라고 비난을 받는다. 유대인들이 현재의 이스라엘 땅에서 살았던 것은 사실이나, 하지만 로마가 폭력적으로 이들을 탄압하고 추방한 이후 이 땅에는 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았다. 


 영국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인도에 대한 통제력을 확실히 유지하기 위하여 수에즈 운하 및 그 수로 좌측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확보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더구나 제 1차 세계대전 개시와 더불어 터키가 독일, 이탈리아 측에 참전하게 됨에 따라 영국은 오랜 기간 오스만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던 아랍세력을 독려하여 오스만에 대항하도록 하여 터키를 내부어세부터 붕괴시키려고 했다. 이는 친영 세력으로 하여금 영국의 식민전략상 요충지를 점령시키고 그들에게 전쟁 후 독립을 약속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서신은 카이로에서 근무하던 이집트총독 맥마흔이 1915년 7월부터 1916년 3월 사이에 당시 하심가문의 좌장이자 아라비아 반도 히자즈 지방의 통치자였던 후세인 국왕에게 10여회에 걸쳐 보낸 편지로서 터키에 대항하여 참전할 경우 영국은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며, 전후 아라비아의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서신은 사실상 제 1차 세계대전시 아랍의 희망을 담보하는 중요한 서신이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모호하여 그 후 계속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그 이유는 영국으로서는 반 터키 전선형성이 시급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협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황급히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은 아랍권에는 별다른 언질도 주지 않고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영국은 프랑스 대사에게 후세인-맥마흔 교섭을 알리고 영국과 프랑스 간의 의견조정을 제의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폅정이다. 이 아시아-터키의 분할에 관한 밀약에서 오랫동안 분쟁의 불씨가 된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의 지역은 영, 프, 러 3국이 공동으로 신탁통치할 것을 비밀리에 약속되었다. 이는 후세인-맥마흔 서한에 약속되었던 아랍인에 의한 아랍국가 수립 약속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외교적 배신행위였다. 이 협정은 분명 전리품 분배협정으로서 영국과 프랑스양국은 이 협정에 근거하여 터키 소속의 아랍지역을 분할하였다. 이 비밀협정은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다가 10월혁명 이후 1917년 출범한 소비에트 정부가 이를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으며, 특히 아랍인들의 강렬한 의분을 자아냈다. 


 그 후 영국은 유대인들의 전쟁장금 지원을 얻고 미국 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 미국을 제 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고 전쟁협력을 얻기 위하여 1917년 11월 당시 외상 발포어가 시온주의자들에게 아랍세계의 심장부인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국가를 건설해 주겠다는 발포어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후세인-맥마흔 서한, 사이크스-피코협장, 그리고 발포어 선언등은 각각 상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영국의 교활한 국익추구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이고 표리부동한 행위로 인해 아랍세력은 영국 등 서구 열강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심을 갖게 되었고, 중동지역에서 반서구 제국주의 운동이 싹튼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결국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의 대 터키 강화조약에서는 맥마흔 서한은 완전히 무시되고 발포어 선언만이 존중되었다. 문제의 팔레스타인은 터키령에서 분리되었고, 1920년 국제연맹은 동 지역을 결국은 영국의 뜻대로 영국의 위임통치령으로 결정하였다. 그 뒤 영국의 위임통치규약에서도 유대인의 민족국가 건설의 근거를 승인하였다. 당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64명, 유대인 5만600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더불어 독일에서의 학살을 피하여 독립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처절한 결심으로 팔레스타인에 몰려들면서 늘어났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기고, 유엔은 1947년 11월 ‘결의안 181호’를 채택해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을 ‘국제관리지구’로 한다는 분할안을 채택하였다. 당시의 유대인은 60만, 아랍인은 129만명으로 인구상으로는 아랍인이 2배 이상 많았으나, 동 분할안은 아랍국 대 유대국의 영토를 44%대 56%의 비율로 유대인 국가에 오히려 많이 배정하여 유대인에게 유리하고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고 불공평한 것이었다. 이에 이스라엘인들은 이 안을 받아들였으나 아랍인들은 이를 당연히 거부하였다. 그 후 아랍인들과 유대인들간의 충돌과 테러가 격화된 가운데 영국군은 위임통치의 종결을 선언하고 군대를 철수해 버렸다. 유대인의 지도자 벤구리온이 다음해인 1948년 5월 14일 국경선도 부분명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공화국을 선포하자, 자신의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5. 4차례의 중동전쟁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에서 탄생한 팔레스타인 게릴라와 그 대표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섬멸하기 위해 국외인 요르단과 시리아, 레바논까지 공격하고, 한편 국내에서는 예루살렘의 완전 독점을 노리고 이슬람교의 성역을 모욕하는 등 아랍지역의 전 이슬람교도를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팔레스타인인 측에 이슬람교의 전투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이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해 아랍제국은 어디까지나 아랍인의 토지에 유대인이 침입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스라엘의 주권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생존권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 독립 직후부터 불과 20년이 못되는 기간에 이스라엘과 4차례의 전쟁을 하게 된다.

1차 중동전쟁은 1948년의 팔레스타인전쟁(독립전쟁)인데, 이스라엘의 독립선언 다음날 이집트를 위시한 아랍 5개국 군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시작되었으나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약 100만명이 난민이 되고 16만명이 이스라엘 영역 안에 남게 되었다.   

 2차 중동전쟁은 1956년 소위 ‘수에즈전쟁’(시나이전쟁)이다. 이스라엘은 독립 후 재외 유대인들의 경제원조와 미국의 지원으로 국가건설에 노력하여 아랍 국가들과 의 격차를 더욱 확대했다. 그러던 중 1656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출병하였는데, 이스라엘도 이에 참전하여 8일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측이 승리하였다.


3차 중동전쟁은 소위 ‘6일 전쟁’으로 1967년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 아래 첨단 무기를 앞세운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전쟁 첫날(1967년 6월 5일) 새벽 이스라엘 공군은 공격 3시간 만에 아랍제국의 비행기 400여대를 폭파하였다. 이집트는 아랍 국가들의 맹주국 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의 주 대상이 되었고, 폭격당한 전투기 중 286대가 이집트의 비행기였으니 이집트는 초기에 이미 완전히 기선을 제압당했던 것이다. 이 때 이스라엘의 비행기 손실은 19대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전쟁발발과 동시에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스라엘군은 이집트령 사나이반도와 시리아령 골란고원을 지나 수에즈운하까지 진주하였고, 요르단령 예루살렘 구시가지(동예루살렘)를 포함한 요르단강의 서안지구를 점령하고 그 지역에 군대를 배치하여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최근 중동평화협상의 최대 난제로 떠오른 동예루살렘마저 요르단에게서 빼앗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독립 당시보다 통치지역이 4배로 증가하였다. 즉시반환과 팔레스타인국 건설을 의결한 유엔 결의안이 1967년과 1973년, 2차례나 나왔지만 안보리에서 미국은 줄기차게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4차 중동전쟁은 1973년의 중동전쟁으로, 아랍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OPEC의 석유무기화가 이루어지고 서구제국들이 이에 굴복하여 서방측의 이스라엘 지원이 어려운 가운데 종결되었다. 따라서 네 번의 전쟁 중 세 번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고 한번은 비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네 차례의 전쟁으로도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 핵개발을 끝낸 이스라엘은 1867년 6일 전쟁 때 2개의 핵폭탄 사용을 준비했고, 1973년 제 4차 중동전쟁에서 패배의 기미를 느끼자 20킬로톤 규모의 핵탄 13개를 조립하도록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강경정책의 배후에는 물론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 공약은 미국 외교, 안보 정책의 의무 중 최고의 신성불가침 조항이다. 미국은 중동전쟁 당시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까지 했으며, 중동국가들의 석유수출 금지 조치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재고하지 않았다. 


 6. 중동전쟁 후 팔레스타인
 •1978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평화협의서를 체결하면서 협상에 의한 해결의 싹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1987년 12월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에 대항해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중항쟁인 1차 인티파다가 일어났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폭력적으로 대응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1990년대 초부터 이스라엘 노동당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오슬로 평화협상은 그런 배경에서 추진되었다.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자치를 핵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과도정부로의 통치권 이양과 이전 영토의 대강을 합의한 오슬로협정(팔레스타인 잠정자치에 관한 원칙선언)에 도달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이 서로의 생존을 인정하고 만성적인 분쟁지역인 중동 땅에 이른바 ‘두개의 국가 해법’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땅과 평화의 교환’이라는 오슬로협정의 원칙은 제 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 점령지의 일정 부분을 기정사실화하는 대신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년 살아온 땅 위에 독립국을 세울 수 있도록 보장하면서 평화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테러공격으로부터 벗어나는 평화를 얻고, 팔라스타인은 이스라엘군의 무단통치로부터 벗어나 땅을 되돌려 받는다는 약속이었다. 이 협정에 따라 이후 5년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임시자치정부‘가 구성됐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망명지를 떠돌던 야세르아라파트는 1994년 열렬한 박수와 환영 속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고, 1996년 실시된 팔레스타인 최초의 선거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으로 당선되었다. 오슬로협정에 따라 처음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일은 1999년 5월로 정해졌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협정체결 2년 뒤 라빈총리는 이스라엘 극우파 청년이 쏜 총에 숨을 거두었다. 라빈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개인적 비극일 뿐 아니라, 중동의 비극이었다. 이스라엘의 한 온건파 정치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날의 극우테러 총성은 숱한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고난의 길을 걸어가라는 죽음의 메시지였다. 


 라빈 암살사건 뒤 실시된 1996년 이스라엘 총리 선거에서 그동안 오슬로평화회담을 맹렬히 비판해왔던 리쿠드당의 벤야민 네탄야후가 당선된 뒤부터 중동평화는 침몰 위기를 맞았다. 네탄야후의 반 평화노선과 이스라엘 총선 등의 이유로 독립국가 선포일은 2000년 9월 13일로 늦춰졌다. 그러나 협상은 타결을 보지 못했고, 독립국가 선포 시한을 다시 2개월 연기했다. 이 협상에서 노동당정부는 많은 지나친 요구를 내세운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는 완전히 부정했다. 이것이 2000년 9월 28일 팔레스타인인들의 2차 인티파다가 발발하게 된 원인이다. 그 여파로 아라파트는 2001년 12월부터는 신체적 자유도 박탈당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라파트 수반과는 더 이상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시의 자치정부청사 내에 연금해 버렸다. 그리하여 자치정부 수립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협상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이처럼 중동평화의 중요한 이정표였던 오슬로협정을 먼저 손상 시킨것은 이스라엘 강경파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분쟁의 불씨만을 키우고 있는 상태이다.

 7. 정리
 지역분쟁과 종교전쟁을 생각할 때 조정자, 중재자로 나서야 하는 곳은 분명 유엔이다. 그러나 미국이 유엔의 상임이사국인 이상 유엔의 결의에 미국의 강한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걸프전쟁이나 이라크전쟁이 그것이다. 안보리에서는 무력을 사용하고 조취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이렇게 5개의 상임이사국 중 한 국가라도 반대를 하면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는다.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는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껏 유엔은 국제분쟁 문제에서 이렇다 할 큰 공헌을 못한 것 같다.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참고문헌
빌프리트 뢰리히 저,『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 서울 바이북스 2007
후쿠오카 마사유키 저,『21세기 세계의 종교분쟁』 서울 국일미디어 2001
강인철 저,『전쟁과 종교』 한신대학교 출판부
이사가와 준이치 저, 『종교분쟁지도』 자작나무
세계정세를 읽는 모임 저, 『지도로 보는 세계분쟁』 이다미디어
조순구 저, 『국제문제의 이해』 법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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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예수

저자
정찬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07-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상급. 010-8893-8819. www.obestboo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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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의 『빌라도의 예수』 감상문
1 책 내용 요약.
소설은 10개의 파트로 나뉘어 구성되어져 있다. 나는 편의상 소설의 줄거리를 각 파트별로 분류, 연결하여 설명하겠다.

제 1장인 필라투스산은 작가가 소설 빌라도의 예수를 쓰게 된 배경을 말한다. 여행사를 경영하는 친구의 제의로 유럽 관광을 가게 된 것이다. 소설의 ‘이야깃 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작가 정찬은 이번 관광에 대해 이내 실망했다고 말한다. 빡빡하게 정해져 있는 스케줄로 인해 시간에 쫓겨 다녔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중에 취리히의 알프스 영봉 필라투스 산 등정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작가는 소설을 쓸 아이디어거리를 생각해 낸다. 바로 빌라도다. 빌라도가 그 산에 은거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제 2장,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여기서부터 빌라도의 예수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의 식민지로, 유대지역 식민지 총독은 그라투스라는 사람이다. 로마의 황제는 티베리우스다. 로마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세야누스라는 사람이다. 세야누스는 빌라도를 불러들인다. 후임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기 위해서다. 세야누스는 여러 인종들중 유대인이 가장 특이하다고 한다. 복속된 상태로 살면서도 그들만의 독자적인 형태를 유지한 채 산다는 것이다. 즉 로마로의 완전한 흡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즈음 유대 북부지방 갈릴리에서는 청년 예수가 살고 있었다. 예수는 목수고 예수의 아버지도 목수다. 어머니는 마리아다. 빌라도는 전직 유대 총독 안니우스 푸루스에게 조언을 듣고자 만난다. 거기서 그들은 비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그 즈음, 예수와 마리아는 유월절날을 위해 예수살렘으로 간다. 그들은 갈릴리인으로 예루살렘 사람들이 멸시를 한다. 그래도 그들은 갔다. 그들은 제물로 바칠 양을 사야하는데 사지 못한다. 왜냐면 장사꾼들이 그들을 갈릴리인이라 하며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인의 조언을 듣고 성전 안에서 재물을 사기로 한다. 그러나 성전 안은 생각과는 달리 장사꾼들이 난립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파는 재물은 바깥에서 파는 것보다 수배에서 수십배나 비싸게 거래되었다.

제 3장, 봉인된 진실편에서 빌라도는 드디어 유대로 향한다. 한 8월 즈음였다고 한다. 여기서 빌라도는 자신의 아내 프로쿨라에 대한 소개를 한다. 빌라도는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파로스에 가서 또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무슨 이시스라는 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곳에서 이집트의 총독 갈렐리우스가 빌라도를 직접 맞이한다. 그 후 빌라도는 아내랑 같이 이집트 관광을 한다. 거기서 그는 무세이온이라는 곳을 방문한다. 그곳은 일종의 학술연구소다. 거기서 중요한 인물을 만나는데 그 인물은 도서관 사서이자 지리학자인 멜레스다. 빌라도는 그와 달이며, 고대인들이 생각한 지구의 형상,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이론,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둘레 측정, 의학, 신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뒤 빌라도는 오시리스 신전을 간다. 거기서 그는 사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대표적으로 무슨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다. 이집트를 떠나기 전 그는 유대인 거주지역의 유명한 철학자 필론을 만나러 간다. 빌라도는 계속해서 형이상학적 물음들을 제기한다. 또 그런 이야기를 즐겨 찾았다. 필론과 빌라도는 로고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로고스는 일종의 신과의 만남의 통로라고 한다. 나는 이를 모든 종교행위는 그 이름과 방식만 다를 뿐 결국에는 한 신을, 즉 하나의 점, 즉 진리를 만나게 된다는, 뭐 그런 뜻으로 이해했다. 그의 말은 필론을 만나기 전에 이야기했던 오시리스 예배자 입문 과정과 흡사했다. 필론에 따르면 오시리스도 로고스다. 즉 신을 만나는 방법인 것이다. 여기서 그는 또 중요한 인물을 만난다. 바로 사울이다. 사울은 뒤에 나오는 예수의 사상을 따르게 된다.

제 4장, 카이사리아편에서 빌라도는 유대의 행정수도이자 지중해 항구도시인 카이사리아에 도착한다. 카이사리아는 예루살렘 북서 103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있다. 빌라도가 거처하는 곳은 헤로데 궁이다. 그곳에서 그라투스는 자신의 퇴임을 기뻐하며 빌라도를 극진히 맞이한다. 그라투스는 유대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이 유대인들이 가진 ‘꿈’이라고 한다. 이제 완전히 유대총독으로 정착한 빌라도는 총독 보좌관으로 이루어진 총독 자문단을 만나는데 거기서 메테리우스라는 사람을 주목하게 된다. 아마 이 사람도 소설전개상의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유대에 있는 여러 수많은 파가 거론된다. 그리고 가야파를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을 만난다.

제 5장, 예루살렘. 여기서는 빌라도가 총독이 된 이후 처음으로 맞는 큰 위기가 닥친다. 하지만 다행히 빌라도는 물리적 충돌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문제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안토니오 요새였다. 그곳에 로마군대가 군기를 메달아 놓았는데, 그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일종의 우상숭배로서 받아들여져, 신성모독이 되었던 것이다. 유대 유력자들은 항의단을 이끌고 카이사리아로 몰려간다. 그들은 몇일간 계속해서 시위를 벌인다. 빌라도는 적당히 있으면 해산할 것으로 생각하나 그렇지 않았다. 결국에 빌라도는 군병력을 동원해 그들을 해산하고자 한다. 빌라도는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남은 사람들에 대한 처형을 집행하려고 하나 도중에 변심하여 빌라도는 그들에게 항복한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 있던 병력을 교체하기로 언약한다. 그 일이 있은 날 저녁, 빌라도는 메테리우스를 찾아간다. 그 둘은 종교와 성경,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은 성서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서가 권력과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라 꾸며지고, 조작,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즉, 창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메테리우스와 사울이 만나게 된 이야기도 한다.

제 6장, 유혈사태. 카이사리아에서 일이 있은 후, 비라도는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가장 중요한 방문 이유는 예루살렘의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다가오는 유월절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그 문제가 더 심각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루살렘 성전에 쌓여있는 어마어마한 돈을 이용해 예루살렘 멀리에 있는 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로를 건설한다. 물론 성전에 있는 돈을 썼다는 사실은, 여러 유대당원들을 포함하여, 되도록 숨기려고 했다. 그러나 수로가 완성되는 날 누군가에 의해 그 사실이 유출된다. 그 유출은 헤로데측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하야 유대에 폭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튼, 그 시위는 무력진압된다. 그리고 또다른 사건에 의해 수로사건은 묻혀버린다.

제 7장, 광야 편과 8장, 사람의 아들편에서 드디어 예수가 나타난다. 예수는, 새로은 신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한의 밑에서 활동을 한다. 기존에 부패한 신앙적 근거를 버리고 개혁을 하려는 것이다. 예루살렘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려는 것이다. 또한 이들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래서 빌라도와 그 주변인들, 특히 안티파스라는 인물은 긴장을 한다. 안티파스는 기회를 보다가 요한을 체포한다. 그러자 2인자였던 예수가 득세한다. 안티파스일당과 빌라도일당은 예수를 더 경계한다. 예수는 엄청난 속도로 떠돌아다닌다. 그래서 체포하기도 쉽지가 않고, 그를 지지하는 민중들도 엄청나게 많아진다. 그래서 함부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빌라도의 지원자였던 세야누스가 더욱더 득세하게 된다. 로마로부터 지원을 받아낼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제 9장, 나무십자가편에서 예수는 유월절 전날에 체포되어 죽는 것으로 장이 끝난다. 제 10장, 세월편에서는 빌라도를 한 노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즈음은 예수가 죽고난 후 신흥 종파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예수가 신격화된 것이다. 그 배후에는 앞에서 언급된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빌라도의 아내마저 그 신흥종파에 전염되어 있었다. 빌라도는 어느 날 벌어진 유혈사태에 대해, 학살죄라는 명목으로 로마로부터 귀환명령을 받는다. 당시는 이미 빌라도의 후원자였던 세야누스가 로마황제의 계략에 의해 없어지고 난 후였다. 이는 빌라도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다. 그렇게 로마로 항해하고, 필라투스 산으로 은신함으로써 소설은 끝난다.

나는 믿음 또는 신앙 또는 1:1의 속성(기도)을 통해 다가오는 신과 종교에 대해서 그것의 사회적 유용성은 인정하되 그들이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사람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모든 것’들은 논리와 이성을 통한 지식과 탐구를 통해 알아가야 한다. 하지만 신과 종교라는 것은 그러한 속성을 잃어버린, 또는 거부한 부류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어떠한 활동도 나는, 다른 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가치(低價値)한 일이라고 본다.

책은 잘 읽었다. 단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작가가 알고 있는 지식적 배경과, 작가의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력이 서로 혼합되어 만들어진 소설 그 자체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이라는 매체를 빌렸을 뿐,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추론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책인지를 말이다. 때문에 나는 잘 읽었지만, 그저 잘 읽었을 뿐이지 여기서 나는 종교와 역사와 성경과, 그리고 그것들의 사실과 이 소설과는 그 무엇을 연관시킬 수 없었다. 그럴 뿐더러 저 멀리 이국땅에서 벌어진 일들, 로마와 이스라엘 지역의 역사와 사건에 관해서 나는 전혀 알고자 하지 않으며 알지도 못하며 알 필요성도 못 느낀다. 내게 다가오는 이러한 의미속성은 하나님과 예수를 중심사상으로 한 그 종교와, 그것의 사상이 숨겨져 있는 성경도 같은 의미로서 다가온다.

이 책 빌라도의 예수를 읽고 난 뒤 내가 느꼈던 것은 이 책은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루살렘지역의 정치적 복잡성을 설명하는데 더 많은 잉크를 소비했다. 작가는 아마도 나름대로 중립과 보편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쓴 것 같다. 유럽의 여러, 많은 신화들을 채용하면서, 또 기존에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성경제작에서의 성격과 예수와 이스라엘에 대한 이미지를 변화시켜 주었다. 그중 나에게 가장 새롭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성경에 대한 이미지다. 그것은 여태까지 신성한, 고귀한 이미지만을 가진 채 배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애초에 성경의, 감히 의문을 품을 수 없어야 하는, 그러한 신비주의적 이미지가 버려졌더라면, 지금의 ‘십자가사상’은 이처럼 크게 사회적 패권을 움켜쥐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에서 본 성경의 이미지는 정치적 상황과 힘(力)에 따라, 그리고 서로의 이익에 따라 조작된 것이었다.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아니면 소설적 요소인지를 떠나서 말이다. 그것들 중에 단 1할이라도 사실인 점이 있든, 아니면 모두가 밝혀지지 않은 추측이든지간에, 성경이라는 소설은 윤리서, 철학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신론자의 눈으로 볼 때 조작여부를 떠나 그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본 것은 ‘인간예수’다. 한번 죽으면 무無로서 비존재하게 되는 한 ‘생명체’인 것이다. 예수는 부활도 없었다. 그저 죽었을 뿐이다. 죽은 후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소문) 신화화된 것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누구도 예외없는, 누구 말대로의 ‘무(無)로의 기투(企投)’인 것이다. 나는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라는 인물은 사실 한명의 사상가, 철학자로서 본다. 당시 자본에, 권력에,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기 위한 예수의 모습은 마치 위대한 혁명가와도 같았다. 마치 공자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서. 하지만 예수라는 인물은 운 좋게도, 엄청난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깊고 깊게, 아름답게 포장되어 권력화 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내게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바로 로고스다. 길은 달라도 목적은 하나로써 보는 그런 로고스. 이로써 나는 소설 「빌라도의 예수」에 대한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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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좀...
 
이 영화는 이라크의 추운 겨울, 살기위해 힘들고 위험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쿠르드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되는 소년 아웁과, 시급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게될, 아웁의 형제 마디, 그리고 여동생 아미네가 나오는데, 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돈벌이에 뛰어든다. 밀수업을 하는 아버지 혼자서는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후에 밀수업을 하는 아버지가 돌아가고, 삼촌의 집에 맡겨진 아웁은, 형제 아웁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말에 밀수업자들의 심부름꾼이 되어서 돈을 벌기로 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강도들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영화는 아웁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그 대가로 받은 노새를 이라크로 가서 좋은 값에 팔기 위해 국경을 넘는 위험한 모험을 끝으로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아웁은 그 노새를 이라크로 가 좋은 값에 팔아 그 돈으로 마디의 수술비를 마련해주고자 한 것이다.
 
영화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순수한 쿠르드족 토착민들이라고 한다. 나는 첫째로, 비싼 몸값을 내야하는 스타급 연기자가 없이도 높은 가치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데에 이 영화의 의의를 두고 싶다. 우리에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아마도, 우리에게는 연기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소소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어색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크루드족들의  생활상이 담겨졌던 것이다. 그들의 삶 자체가 내겐 연기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 나에게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같이 느껴졌다. 영화의 제목인 ‘취한 말들의 시간’은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는 영화를 보고나면 알 수 있는데, 밀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말에다가 술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들은 혹독한 눈보라를 견디며 전진해갈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쓰기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그저 멍해졌을 뿐이다. 이것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그냥 멍했다. 心이 심히 공허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한겨울의 혹독한 눈보라를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일까? 영화의 배경은 분명 낭만적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있어서, 영화를 보는 관객에 있어서의 무지의 낭만이었을 것이다. 쿠르드족의 힘든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면 그것은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 되버 리는것 아닐까? 혹은 전쟁과, 인간과 인간간의 갈등에 대한 혐오심에 대한 증폭을 불러일으켜 왔고, 역시 평화는 필요하다는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고 해야 할까? 다들 너무 진부한 표현이고, 너무 진부한 느낌이다. 하지만 남들이 다들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느낀 것이다. 다만 언어적 표현 스킬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을 뿐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 10점 만점에 8점.(적극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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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의 거짓말 (2000)

Jakob the Liar 
8.1
감독
피터 카소비츠
출연
로빈 윌리엄스, 한나 테일러 고든, 밥 발라반, 마이클 제터, 알란 아킨
정보
전쟁, 코미디 | 프랑스, 헝가리, 미국 | 114 분 | 2000-09-23




거짓말쟁이 야콥

저자
유레크 베커 지음
출판사
| 1990-06-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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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져가면 찾아서 죽여버립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 : 10점만점에 8점(적극추천)
원작에 대한 평가 : 10점만점에 7점(별로)
 
이 영화는 특별히 감상평이라고 쓸만한'거리'가 없다. 하지만 애써서 끄집어내어 보았다. 먼저 원작을 읽어보고 그 다음 영화를 시청했다. 굳이 줄거리를 쓰진 않겠다. 재미없어지니까. 읽어보면 알게될것이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
- 영화는 감독의 시각에 따라서 시점, 인물의 성격, 내용등이 달라질 수 있다.
 영화에서의 처음 시작과 끝이 원작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 예로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리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리나를 등장하게 하는데, 원작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원작에서는 먼저 글을 읽는데 있어서 알아야할 기본적인 뒷배경이 될만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다음 중간중간에 시점이 과거로 바뀌어 등장인물이나 여태껏 읽혀지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드러낸다. 또 야콥이 통금령을 어기게 되어 붙잡히게 되는 과정도 다소 다르다. 영화에서는 소식을 듣기위해, 바람에 날아가는 신문지를 따라가다가 붙잡히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원작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붙잡히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가벼운 웃음거리나 해학적인 표현은 없었다. 붙잡힌 이후에도 영화와 소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통금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붙잡힌 야콥은 원작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말도 잘하고 자신의 생각과, 처한 상황을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말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독일군에게는 다소 가소롭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원작에서의 야콥의 성격은 다소 어리숙하다고 느껴졌다. 또 원작에서 야콥의 라디오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던 교수도 영화에서는 야콥의 활동에 대해 이해를 해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성격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부분도 많았는데, 야콥 뿐만 아니라 야콥 주변의 등장인물도 역시 그러했다. 대표적으로 미샤의 행동을 들 수 있다.: 야콥이 미샤에게 사실 자신에게는 라디오가 없었다, 너를 위험한 행동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꾸민 일이다, 라고 사실을 말했을때 미샤는 오히려 그 말을 거짓말로 믿으며, 야콥의 라디오 보유설을 게토내에 퍼뜨리게 된다. 상당히 어리숙한 미샤이다.


 내용면에서 볼때 비교되는 점은, 영화라는 매체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원작의 많은 내용이 생략이 된다는 것이다. 또 원작에서는 없었던 이야기가 감독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예로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저항조직이 결성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교수의 죽음도, 방식은 같으나 다르게 표현되며, 같은 장면에서 나온, 게토를 관할하는 독일장군 역시 원작에서는 심장병으로 죽게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심장병으로 죽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그 장군이 직접 야콥을 총살하게 된다. 야콥이 총살을 당하는 장면은 원작을 보고난 후 영화를 봤을 때 느껴진 가장 큰 반전이다. 영화의 결말에 가서는 야콥의 꾸며낸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러시아군에게 구출되며 끝나게된다. 이 장면은 아마 예측가능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남겨놓고 끝났던 원작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킨듯 했다. 이러한 내용적인 면에서의 변화는 아마도 영화감독이 원작을 감상하고 난 후의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토대로 해서 재해석했기 때문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차이점으로 인한 내용의 변화
 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원작과 영화간의 차이점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감독 나름대로의 재해석도 있을 수 있겠다. 결말부같은 경우는 확실히 영화감독의 해석이 들어간 부분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전달매체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소설같은 경우는 분량에 있어서 대체적으로 자유롭다. 능동적이다. 그러나 영화같은 경우는 상영시간이라는 제한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원작에 대해 변형을 가해야 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작방식이나 비용면등과 같은 부분에서도 차이가 난다.


 전달매체의 차이로 인해 원작과 영화간의 변화로 시점을 말할수도 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가장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변화는 바로 시점의 변화였다. 원작과 영화 모두 주인공은 분명 야콥이다. 하지만 그 야콥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는 다르다. 원작에서는, 밝혀지진 않았지만, 같은 게토 내에 있는 어떤 한 인물이 야콥을 지켜보면서 야콥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형태로 구성된다. 영화에서는  영화 그 자체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야콥과 게토 내의 생활을 보여주는 형태를 취한다. 글쎄, 이러한  보여주기방식의 차이가 이 전달매체의 차이점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는 확실히 증명할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영화에 있어서는 어느 특정한 인물의 눈으로 특정한 주인공과 특정한 장소를 보여주기에는 아무래도 관측시야가 좁아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는 소설이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 원작에서는 과거로의 이동도 자유로웠으며, 야콥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야콥 주변의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도 풍부하게 드러내주었다.


-원작 또는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
 소설을 읽으나 영화를 보나 알겠지만, 게토에서 유태인이 라디오를 갖고있는 것은 중죄에 해당된다. 처음에 야콥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실토했으나, 야콥이 사람들에게 전해준 소식은 그들에게는 너무 희망적였나보다. 영화에서 야콥은 미샤에게 사실을 말하나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야콥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싶어한다. 또한 게토내의 자살률도 현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에 야콥은 죄책감을 느끼는 한편,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자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야콥의 주변인들이 야콥의 희망적 소식에 의해 죽게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절친했던 친구마저 라디오에 대한 진실을 알게되면서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불행속에 야콥은 죽게되고, 게토내의 유태인들은 어디론가 끌려간다. 하지만 마지막에 야콥의 희망은 현실이 되버린다. 정말로 야콥의 라디오가 희망인지 아무것도 아닌지 알려주지 않으며 끝맺게 되는 원작의 내용과는 다른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나 전달매체를 볼때나, 영화와 같은 영상메체가 작가의 주제및 메시지를 더 쉽게 전달해줄 수 있는것 같다. 이 영화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굳이 뽑자면...나는 아마도 희망과 극복의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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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인의 방문

저자
뒤렌마트 지음
출판사
예니 | 1999-07-26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1921년 스위스에서 출생한 작가의 희곡집. 미국으로 간 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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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저의 글이오니

 

『노부인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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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노부인의 방문」 줄거리
 젊었을 적 임신을 한 채 애인(알프레드 일)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 차하나시안, 수십년이 흘러서 다 늙어버린 그녀는 엄청난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되돌아오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향은 전쟁의 여파로 인해 과거의 명성은 모두 잊혀 졌으며, 가난해졌다. 그런 고향을 그녀는 자신을 배신하고 버린, 자신이 창녀가 되게끔 원인제공을 했던, 그 알프레드 일을 죽이고자 온 것이다. 차하나시안은 시장과 마을주민들에게 한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자신의 고향에 대한 막대한 경제적 부흥을 약속한다. 정의라는 이름을 외치면서 말이다. 이에 시장과 마을주민들은 정의와 인도주의의 이름하에, 단호하게 그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곧 돈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에 마을주민들은 돈을 흥청망청 쓰고 빚도 지게 된다. 일의 가게에도 많은 빚을 지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 시민들은 알프레드 일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한다. 그들이 엄청난 액수의 돈 앞에 변한 것이다. 그들은 알프레드 일을 속이기 위해 마지막까지 다가올 일의 죽음에 대해 부인한다. 심지어 신부, 경찰, 서장까지 변한다. 결국에 가서 알프레드 일은 여태까지 믿어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미명아래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로서 일의 죽음을 외치는 차하나시안과, 처음엔 정의로서 이를 거절한 시민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정의로서 일을 죽이는 시민들...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2. 원작과 연극의 비교
 원작은 대본과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일의 대사가 나오고 뒤이어 차하나시안의 대사가 나오는 식이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특정한 대사를 반복적으로 쓰는, 다소 해괴한 방식을 쓴다. 내용상에 있어서의 원작과 연극에서는 크게 다른 점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원작의 내용을 묘사함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었으며, 원작에서 상상되었던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캐릭터 역시 연극에서는 다소 다르게 나왔다. 극에서는, 원작에서 상상되었던 배경과는 너무 달랐다. 솔직히 말해서는 초라하고 어설펐다. 건물이나 일의 가계, 또 숲과 광장은 관객의 입장에서 그저 의미만 지각할 수 있을 정도로 장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연기도 또한 깊지 못했는데, 중간 중간 끊어지는 대사와 행동, 딱딱한 형식의 말투, 그리고 원작을 그대로 배낀 대사며, 대체적으로 연기다운 연기를 해주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연극을 보고 있구나 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겠다.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는 관객이 이것은 연극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사실을 보고 있는 것처럼 관객을 속이도록 노력하는데 비해,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임을 절실하게 지각했던 것이다. 글쎄 이것이 연극을 기획한 감독과 연기자들의 능력부족일지, 그들의 의도된 연출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의도였음은 확실한 것 같다. 극을 보면서 지루함을 많이 느꼈는데, 그것이 내용상의 큰 기복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와 같은 극 자체의 연출방식이 어설펐고 지루한 방식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가, 일반의 영역을 벗어난 극을 보니 이러한 상상의 차이가 발생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악한 이미지의 차하나시안, 고향에 돌아온 차하나시안을 보면서 내심 불안해하면서 반기는 모습을 보이는 알프레드 일, 그리고 이중적인 태도의 시민등 극에서의 캐릭터 연출은 대체로 원작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종일관 어둡고 칙칙했던 연극의 분위기도 캐릭터들의 이미지를 한층 더 살려주는 듯 했다. 또 비극적 결말에 대한 암시와, 부정의한 현실에 대한 반감을 담은 듯 했다. 그러나 그러한 연출에 보는 나로서는 답답함을 많이 느껴 불편했다.


3. 차하나시안은 정의를 원하고, 시민들도 정의를 원한다?
 과거에 알프레드 일은 법정에서 편법을 통해 차하나시안이 임신한 자식이 일의 자식이 아니라고 속였다. 그로인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뒤로한 채 고향을 떠나게 되었으며 창녀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일의 죽음만이 정의를 위한 것이라 말한다. 분명 일은 잘못을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도 소급되지 않을 만큼 오랜 기간이 흘렀으며 잘못을 인정했다. 죽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정의를 원한다고 말하는 차하나시안은 역설적이게도 부정의했다. 그녀가 원하고자 했던 것은 정의가 아니고 복수였을 것이다. 
 시민들은 너무나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의 태도에 나는 화가 나면서도 소름끼치기조차 했다. 이는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속물적여서 비판받아 마땅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돈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을 절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아니 혹 될 수 있다. 어이없게 죽음을 택한 알프레드 일에게도 너무 화가이는 인간의 무력함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단지 비정상적이게도 타락한 인간일 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의와 부정의가 복잡하게 얽히고 얽혀 정의를 만들기도 하고 부정의를 만들기도 하고, 이러한 복합적인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은 ‘자기합리화’가  난다. 또 부정의를 정의로 둔갑시킨 군중들이며, 민주주의를 통한 부정의의 행사, 진정한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의 부재, 그리고 너무나도 현실적이게도, 부정의에 패배해버리는 정의에 화가 났다. 원작과 연극을 통틀어 이 작품은 비극 그 자체다.
 
작품에 대한 평가 : 10점만점에 9.5점 (매우 적극 추천)
연국에 대한 평가 : 10점만점에 6점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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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http://hitop.net/jbcgi/board/?p=detail&code=board10&id=56825&page=1&mode=srch&what=subject&request=portable&acode=0&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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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은 잘못된거같다. 옳은 방식으로 제주기지 반드시 건설되길 바란다.
 
 부지선정 문제, 정부의 일방적 진행, 환경파괴, 기지 불필요성 등등 있지만
이거 하나만은 진리인데.->분명한건 제주도 어딘가에 멀지 않은 시일내 군기지가 반드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해군기지 뿐만아니라 공군비행장도 있어야 한다. 공군없는 해군은 이빨없이 손톱으로만 싸우는 호랑이.
 
 태평양전쟁 공군을 재대로 활용하지 못해 패배한 일본 해군의 무기력함과, 공군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미 해군의 승리가 이를 증명한다.
 
(제주도에 해군을 운용하게 된다면, 충분한 전력의 공군 역시 운용해야한다. 공군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제주도에 공군 전용 비행기지를 건설하거나, 제주도 해역에 항공모함을 운용해야한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항모를 운용할 능력이도 없고, 현재 눈앞에 보이는 주적이 북한인 만큼 항모에 대한 활용도는 적자. 그렇기에 공군비행기지가 적합.)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의 제주 해군기지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춰 국가안보를 담당할 초석이 되어야만 = 추후에 여러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속에 우리의 주권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태껏 살아봐서 알겠지만 복잡하게 이해가 얽힌 이놈의 국제관계라는건 정말로 냉정하고도 차가워 얼어 죽을것만 같다. 어느 순간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전쟁, 경제제재... (이라크전쟁도 그 일례다)
 평화평화만 외치며 진짜 평화롭게 살다가는, 평화롭게 살았던 과거 조선말기~대한제국시기의 역사가 우리에게 반복될 수 있다. 중국에게 무력 강제병합된 티벳민족의 역사가 우리에게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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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2008)

The Mission 
 8.9
감독
롤랑 조페
출연
로버트 드 니로제레미 아이언스레이 맥널리에이던 퀸쉐리 런기
정보
드라마 | 영국 | 125 분 |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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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게 찾아본 영화다. 어디서 빌려보기도 그렇고 해서 부득이하게 반합법적인 방법으로 영상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내용은 내가 알고있던 선교영화물과는 달리 상당히 가치중립적이고 참신했다. 마지막의, 마치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전쟁장면 또한 영화에서의 영화적인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줄거리를 대충 말하자면ㅡ 과

거 서양사람들의 종교를 미끼로 내세운 서양사람들의 침략정책과, 이로인한 한 부족의 멸종사를 보여주고있다. 서양종교의 침략적 구실이라는 본질을 부각시켜준다.
 
영화 10점만점에 8.5점(적극추천)
 
더 깊은 생각함을 위해 몇가지 질문들을 제시하고 답해보았다.
첫째,복음이 행복을 가져오는가?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도 보여주듯 복음은 피를 요구로 하는 행위다.
  물음음을 생각하면서 이라크에 납치되었던 선교원들의 일이 떠오른다. 처음 이라크로 갈때는 선교라는 명목으로 갔지만, 돌어올때는 자원봉사라는 명분으로 바뀌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돌아온 뒤에는 다시 복음, 즉 선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둔갑해보렸으며 그들은 열렬한 교회신자들에게는 영웅이 되버렸다. 그 얼마나 오만하고 파렴치한 일일까? 개탄할 일이다. 그들의 선교 역시 피를 요구로 했다.
 영화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피를 요구로 했다. 복음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런것 같다. 복음을 통해 얻는자가 있는가 하면 그 복음을 통해 잃는자도 있다는것 말이다. 생각하건데, 나는 복음을 전파받기 전에 밀림에서 생활하던 그때의 원주민들의 삶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십자가때문에 부족이 멸족하지 않았는가?
 
2. 복음화가 곧 문명화인가?
-반은 옳고 반은 틀리다. 복음화는 물질만능주의화다. 그들의 종교와 사상은 자연을 지배하고 짓밟으려는 서양사상과 잘 어울린다. 서양에서 교회와 가톨릭, 기독교와 같은 계통의 종교가 발달한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일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것만이 선교인가?
-일단은 아니다라고 말해야겠다. 선교는 정치적 도구로써 쓰인다. 어째보면 정치적 용망을 내재한 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비단으로 꾸민것이 선교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선교를 하는 사람조차 그러한 선교의 본질일지도 모르는 현실은 모르는것이 현실이다. 선교란 선교사들의 나라에서 선교를 당하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써먹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고 식민화, 노예화 시키는 것이다. 선교는 그들 자신에게서 갖고있는 민족 우월주의에서 행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선교를 하는것에 있어서 그 선교를 하는 사람의 문화, 사상, 관습등이 함께 전파된다.
 
4, 문명화가 원주민을 행복하게 했을까?
-아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문명화가 시작될 처음에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 미래적으로 볼때 그것은 더욱 빠른 파괴로 이르는 길이다. 시공간의 모든것은 엔트로피 법칙대로 간다. 유에서 무로 가는 일종의 소멸의 연속이라고 말하면 쉽겠다. 문명화는 이러한 소멸의 속도를 증대시킬 뿐이고, 문명화된 인간들은 결국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석유부족, 식수부적, 식량부족, 등등 지금의 현대문명처럼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결과다.
 
기독교 선교에 대해서 본인은 크게 부정적이지도 않고 크게 긍정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부정적인 편에 더 관심이 간다. 부정적인 것이 있다는것은 그 자체로서 완벽하지 못하다는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교가 없어졌으면한다. 진정 기독교사상이 진리라면 이종교 저종교 갈라지고 분쟁이 일어나고 하는것이 없어져야 할것이다. 그리고 여타 수많은 고대 종교와 마찬가지로 고대 이스라엘의 시골변두리에서 창조된 종교가 아닌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기독교와 같은 사상이 일어났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서로간에 자신들만의 사상을 주장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자신들이 믿는 진리를 함께 따라줄 사람들을, 전도가 아닌 기다리는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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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 (2004)

Fahrenheit 9/11 
9.3
감독
마이클 무어
출연
마이클 무어, 조지 W. 부시, 벤 애플렉, 바바라 부시, 빌 클린턴
정보
전쟁, 다큐멘터리 | 미국 | 123 분 | 2004-07-22

 

 미국의 부시와, 부시행정부와, 부시행정부의 911 테러에 대한 대응방식과 이라크 침공등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실정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 다큐멘터리의 영화다. 먼저 이 영화는 감독의 주관적인 해석이 매우 진하다는 거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영화는 처음부터 부시 행정부 출범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알지 못했던 사실들였다. 부시家가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해 흑인들에 대한 튜표권을 박탈하는 모습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개념을 가장 많이 써먹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치졸하게 보였다. 911테러는 이슬람의 테러조직이 4대의 비행기를 탈취해서 자살테러를 저지른 사건이다. 이 테러는 고작 수천명의 미국인만을 죽였다. 여기서 감독은 부시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혹 미국이 전쟁을 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수천명을 희생시킨 것은 아닐까? 미국은 이에 보복전쟁을 한다. 표면적인 목적은 테러리스트 숙청, 대량살상무기 및 생화학무기 제거라는 것이지만, 미국이 호언한 만큼 테러리스트들은 쉽게 뿌리뽑히지 못했으며,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무기와 생화학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을 위해 내세운 명분은 미국이 석유자원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기만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을 해보도록 했다. 과거 이스라엘민족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강제로 점거하여 토착민들을 내쫏고 국가를 세운다. 약속받은 땅이라는 절대 비논리적인 명분하에말이다. 침략을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평화스럽게 자연정착을 통해 서서히 땅을 침식해나갔다는 설도 있고 하나님의 힘을 바탕으로 전쟁을 수행해 신속하게 점령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 당시 만들어졌던 이스라엘은 바빌론 포로기를 겪으며 완전히 와해된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이슬람 종교국가에 둘러쌓인 홀로 유대교국가이다. 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스라엘사람들은 그곳에 다시 나라를 세우려고 한다. 반인도주의적으로 재침략을 한것이다. 그때도 역시 약속된 땅이라는 억지를 무기로 감행한다. 당시는 강대국들의 지원, 특히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재건을 했다. 이에 주변의 이슬람국들은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어 중동전쟁을 몇차례 일으켰으나 미국의 방해공작에 이슬람국들은 패배한다.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중동에 있어서의 권력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기반하여 튼튼히 지켜졌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라크전쟁은 자신들의 나라와 자신들의 정당한 주권을 지키가 위한 이슬람권 국가와(그중 이라크), 중동의 패권을 손에 쥐고 석유확보와 군수산업으 부활을 목적으로 한 기독교권 국가(이스라엘, 미국, 특히 미국)과의 종교적 갈등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감독의 눈에 의하면 부시는 부정한 방법으로 집권했다. 그리고 911테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그대로 방치를 했따. 그리하여 결국 원하던 대로 수천명의 미국인이 죽음으로써 전쟁의 명분을 얻는다. (당시 부시는 놀기에 바빴으며 테러발발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 놀고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와있던 테러용의자들인 빈라덴 일가를 출국시킨다.) 이제 미국은 고작 수천명의 의도된 타살을 핑계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라크를 침공한다. 고작 수천명의 죽음때문에 수십만명의 고통받게끔 한것이다. 미국은 UN의 승인도 받지 않고 전쟁을 수행했으며,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지도 못했을뿐더러ㅡ 그토록 정의를 원하던 그들은 역석적이게도 부정의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감독의 시선이 대체로 논리적이라 본다.
 
영상물 평가: 10점 만점에 7.5점(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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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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