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정리/대충 끄적(한번생각)'에 해당되는 글 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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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2.16 사랑한다면
  3. 2014.12.12 사랑과 죽음
  4. 2014.11.02 일본의 메이지유신, 흐름과 내용
  5. 2014.10.25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
  6. 2014.09.28 가치와 진짜 가치 수정
  7. 2014.03.16 걱정 xi
  8. 2014.03.02 효율
  9. 2014.02.04 칸트의 윤리학
  10. 2013.11.21 전교조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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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마르크스의 망령이라고 한다면.

추억은 추억의 망령이라고 할수 있겠다.


이제는 그만 훌훌 털어 버려야겠다.

추억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야지.


일단, 이 망령에 관한 소설 한편, 소설아닌 소설 한편을 써야겠다.

달은 정령 망령이었던 것같다.


있는듯 없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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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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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행위(行爲)"하자.

 

단순히 대상을 지향하는 단계에서의 인식은 단지 그 대상을 표상할 뿐이지, 그 인식 작용 자체가 대상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랑함'이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대상에게 그 감정이 전해지고 서로 통(通)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통함의 과정은 행위(行爲)를 기반으로 한다. 행위는 단순히 대상을 향한 인식의 상태와는 달리, 대상과 관계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 대상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할 경우 그것이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랑함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좋음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감정은 내 의식 속에서 표상될 뿐 대상에게 변화를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랑에 행위가 필요한 이유이다. 또다시 다짐한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혹은 호감(好感)을 느끼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 감정을 행하자고.

 

 

어제 오전에 잠을 청하다가 꿈을 꾸었다. 아마 이번에는 정말 지독한 상사병에 걸린듯하다. 내가 짝사랑만 해왔던, 이제는 만날수 없는, 바로 그녀가 나온 것이다. 꿈속에서는 나도 그녀도 어느 도서관의 열람실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침 내 머리맡에의 책읽어주는 라디오에서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흘러나와 꿈과 그 소설과 내용이 약간 섞였던 듯하다. 어쨌든,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결국 말 한마디 제대로 못건네보고 라디오의 낭독이 끝남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조차 눈치보며 있는데 현실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가 온다고 한들 내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다짐한다. 다시는 열차를 놓치지 않겠다고.삶은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를, 이 순간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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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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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지성과 욕망 중 하나의 범주에 넣으라 한다면 사랑은 지성이 아닌 욕망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이루다'나 '사랑하다'가 아니라) '사랑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그 욕망을 드러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일테다. 그리고 사랑의 상태는 두가지로 나눌 수 있겠는데 일방적 상태와 소통의 상태가 그것이다. 일방적 상태에서는 욕망의 현현(顯現)이 빠져 있다. 소통의 상태는 즉 사랑을 향한 욕구, 욕망이 현현되어 객체에 이르렀으며 상대 역시 이를 인지하여 주체를 향해 욕망을 현현시킨, 즉 합일의 상태일 것이다. 일방적 상태의 사랑은 반쪽짜리 사랑이다. 그런데 나머지 반쪽을 얻기 위한 '욕망의 솔직한 드러냄'이라는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욕망이라는 의식의 표출을 지성이라는 것이 쓸떼없이 끼어들어 막고 있기 때문이다. 글쎄, 그 표출을 막고있는 것이 지성인지는 분명치 않다. 지성으로 포장된 비겁함일수도 있고, 자기확신 부족일수도 있다. 아니면 이성(理性)일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반쪽짜리 사랑에 나머지 반쪽을 추가함으로써 사랑을 가능태(可能態)에서 현실태(現實態)로, 즉 공상에서 '현실로의 가능성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랑의 대상을 향한 지극히 자연적이고 거친 욕망의 발로(發露)를 방해하고있는 그 기제(機制)를 이겨내야만 한다. 문명이 아닌 야만이 되어야 한다. 그것 참 어려운 일이다. 평생 그 기제를 이겨내지 못할것이 운명이라면 차라리 천장에 목메달아 죽는 것이 나으리라. 왜냐하면 사랑이 없더라도 생존에는 지장이 없을지언정 그 삶을 사랑있는 삶보다 가치있게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삶은 가능하지만 의미있는 삶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귀납적으로 추려내자면 방해기제를 이겨내고 욕망을 현현시킬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은 철학적이나 논리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귀납적 추론과 그로부터 나온 결론 사이의 "비약"을 비약 아닌 것으로, 즉 정당한 것으로 옹호하는 작업을 철학적 실용주의neo pragmatism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실존적 문제이며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기도 한다. 어차피 탐구의 목표를 설정해놓았으니 빤히 보이는 그 결말 앞에서 선택지는 두가지 같은 한가지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바보같이 엔딩 크레딧을(ending credit) 끝까지 보고 문밖을 나서느냐 아니면 현명하게 판단하여 미리 문밖을 나서느냐. 사랑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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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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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틀렸을 가능성이 있음... 끄응,; 제대로 공부 안하고 대충 쓴거니 혹시 보는 사람은 지적좀 부탁바랍니다.




 19세기 말까지 미국과 서유럽의 몇 개 국을 제외하고는 산업혁명과 헌정을 함께 이룬 나라는 유라시아 대륙 맨 끝 일본이 유일했는데 바로 그 변화의 시작점이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이다. 이는  19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이다. 이번 장에서는 바로 그 메이지유신의 흐름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참고로 명치유신과 메이지유신은 같은 이름이다.


 명치유신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관련된 역사를 간단히 서술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에 죽은 이후 1600년에 이르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 후 상징적이고 권력이 없던 왜왕으로부터 쇼군으로 임명받은 뒤 열도의 실세가 되는데, 흔히 막부라고 일컫는 자가 된 것이다. 이때까지 일본은, 즉 일본의 사무라이 세력은 봉건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12세기 말 실권을 장악한 일본 사무라이 세력 중의 우두머리인 쇼군이 설치한 막부가 중앙정부가 되고 그 아래 각 무사단의 우두머리가 영주(즉 다이묘)가 되어 세습적 통치를 했다. 그 후 약 100년 간의 일본식의 전국시대를 거쳐 방금 말한 도쿠가와 막부(1603~1868)가 수립된 것이다. 이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때까지 존속했으므로 일본은 근 700년동안 사무라이 세력에 의학 봉건제, 즉 막부지배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도쿠가와 막부는 이전의 정권에 비교하면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도쿠가와 막부는 다른 봉건영주들을 압도할만큼 힘을 가지고 있었기 대문이다. 그 힘이라는 것은 군사적 힘과 경제적 힘이다. 군사적 힘은 차치하더라도 그리고 경제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대략 당시 일본 전체 쌀 생산량의 1/4가량을 장악하고 있었다.[1] 당시 전체 생산량이 약 3000만석이었는데, 그 중 막부 직속 할당량만 420만석, 그 휘하 가신인 하타모토, 고케닌의 할당량만 약 260만석, 700만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2] 왜왕(日王) 3만석, 유력한 귀족집안이 3천석, 왜왕 조정의 전체 석고를 다 합쳐도 15만석 이내라고 하였으니 그 규모는 짐작할만 하다. 그 외에 각종 생산, 무역 경제적 요충지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 요충지중 주목할만한 지점은 쇄국 체제하에서 유일하게 서양, 즉 네덜란드와 무역을 하는 도시였던 나가사키이다. 이곳을 막부의 직할령으로 삼아 해외무역을 독점했던 것이다.


 막부사회의 엄격한 신분체계를 기반으로 한 사무라이 세력은 이처럼 17세기 초부터 적과 일왕에 대한 정치적 견제를 성공적으로 이루며, 막부 초 마련된 여러 제도적 장치를 활용해 19세기 초까지 독보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해나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에도 막부시대의 사회적 안정덕분에 상업과 기술, 예술이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도층인 무사들은 자신들의 조직이나 기능을 개선, 쇄신하는데 별 자극을 받지 못했다. 그들의 관료 조직은 고도로 발전해 나갔지만, 군사적 능력은 눈에 띌 정도로 퇴보하였다. 조상의 칼과 갑옷을 가진 이들은 17세기에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전술과 무기 체계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고, 19세기에 이르러 서양에서 새로운 군사 기술과 전술 개념이 도입되니 그제서야 이를 봉건 사회의 특권과 전통에 대한 위협으로만 인식했을 뿐이다. 서양 문물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라고는 시대에 뒤떨어진 검술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된 전통 무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양이 운동이 전부였다.[3]


 군사적으로는 별 진전이 없던 반면 도시민들의 활동은 그 범위와 중요성이 커졌는데, 사무라이나 영주들은 도시에 머물기 위해 자신의 영지에서 거든 가산을 도시 상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소비했다. 도시에서의 무사계급의 생활은 상인들의 협조와 도움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였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무사계급들이 타락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의례적 과시나 장식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들 계급의 부채가 증가했다. 또한 실리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제대로 대체하지 못하였다. 19세가 초반에 이르면 일본 지배계급은 정점에 도달한 사회의 높은 생산력을 그들의 소득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세금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세금을 초과하는 상인, 도시민, 비 무사계급, 농촌지도자, 영주들의 잉여재산 축적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주의 아래에서 영주의 세수로부터 한몫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수밖에 없었던 개인 사무라이들 제대로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신분이나 직위 상승으로 하위 무사들의 희생을 보상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무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무사 계급 일부만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세수가 낮았다. 또 무사들의 수가 증가하며 이는 더 복잡해졌다. 따라서 한 집안의 아버지인 무사들이 자신의 녹봉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힘든 경우가 흔해진 것이다. 게다가 다이묘(영주)들이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사들에게 돌아갈 녹봉 일부를 '빌려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대다수의 사무라이들은 영예롭지만 궁핍한 삶을 살게 되었다. 19세기 초중반에 접어들면서 농민 반란과 봉기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면으로 다 설명 못한 막부 정권의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부조리가 대체로 심화되고는 있었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약 250년에 걸쳐 영속해오고 있었다. 막부 정권은 개혁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막부의 지출이 수입을 상쇄하는 등 실패가 지속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지배 형태는 세 가지 주요 관심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4] 첫째는 유력한 거대 영주(다이묘)를 통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국 내에서 쇼군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차단하는 것이다. 셋째는 유력한 거대 영주(다이묘)가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는 일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막부 정권은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재원적 및 기타 능력을 19세기 초중반에 상실한 상태였다. 상업과 도시의 급속한 발달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미일 화친 조약체결이 19세기 중반인 1853년 강요됨으로써 이를 시발점으로 일본은 개화적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미국과의 개화는 막부의 독단적 처사였기에 개화를 두려워한 반 막부세력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격동을 겪었다. 그러다가 700여 년 내려오던 막부가 1866년 패배하였고, 1867년에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5] 이때의 정부를 메이지 정부라 한다. 메이지 정부는 군사, 정치 등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국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주도(官主導)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일왕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6]



[1] 박훈 저,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p19, 민음사, 서울: 2014

[2] 마리우스 B. 잰슨 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p.93, 푸른길, 서울: 2014

[3]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p.25

[4] 마리우스 B. 잰슨 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p.93, 푸른길, 서울: 2014

[5] 인터넷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2723&cid=40942&categoryId=31787

[6] 인터넷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2723&cid=40942&categoryId=3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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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 일시 : 2014-04-11 금요일 14시부 18시까지.

 

 4 7일,  교육실습기간이었으나 주말 시간과 11일 하루가 학교일정으로 휴무를 하였기에 11일에 시간을 내 미술관에 방문했다. 예술철학에 손을 댄 이유이기도 하지만 본인은 예술,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자비를 들여 미술관을 간다는 것도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억에 나지 않을 만큼 거의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실체,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이유를, 싫어한다면 싫어하는 이유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미술관을 가기에 앞서 미술관이란 곳에 대한 최근의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니 자극적 광고에 이끌려 방문하게 된 대림미술관의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이 있었다.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그리 큰 감흥이나 기억거리를 남겨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해당 작가에 대한 반감이 생겼던 경험이 있다. 과연 이번 전시회는 어떠할까 기대와 불신을 함께 가지고 갔으니 그날의 기억을 천천히 회상하며 정리해본다.


 그날 본 관람회에서 본 전시회는 총 6개이다. 자이트 가이스트 시대정신,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쉬린 네샤트>, 알레프 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기록전,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최우람)가 그것이다. 총 관람시간은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4시간이 소요되었으나 모든 전시회를 관람하기에 4시간이라는 시간은 약간 짧은 감이 있었다. 가장 처음 본 전시는 자이트 가이스트 시대정신이다. 1층과 지하 1층에 이어 크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어서 <쉬린 네샤트>(가장 오랜 시간 소요),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최우람), 알레프 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 건립 기록전 순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자이트 가이스트 시대정신에서는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모습을 지닌 그림과, 조각, 설치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서 나는 대체적으로 작품이 보여지는 모습과 주제간의 불일치의 문제를 겪었다. 다시 말해 작품을 바라봄으로써 주제, 특정 테제 등 내용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다만 감정적으로 끌리는 것들은 더러 있었다. 정확히 끌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끌림의 느낌은 분석도 안되고, 정의 내리기에도 마땅하지 않은, 서술이 불가능한 성질의 것인 것 같다. 그렇게 끌림을 느낀 작품들은 대체로 거대한 유화 그림작품이었다. 캔버스지가 하나로는 부족해 세 개, 네 개를 이어 만든 작품들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장화진 작가의 지배자’, 오병욱 작가의 내 마음의 바다’, 문범 작가의 천천히 같이등과 같은 것이 있다. 이 외에 감정적 느낌은 없지만 한번쯤 나의 시야가 머물던 몇몇 설치품도 있었고 그저 스쳐 지나간, 즉 무가치하게 인식되어 나로부터 버려진 물건도 많았다.

 지하 1층에서도 자이트 가이스트 시대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작품이 걸려 있었다. 행위예술을 표현한 알 수 없는 설치품도 있었고(노동의 방, 인유의 방, 태도의 방), 앞서 말한 것처럼 서술 불가능한 어떤 감정에 이끌려 오래 쳐다본 것이 아니라 그저 이상하기에 기괴하기에 오랫동안 내 시야에 머물렀던 작품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오경환 작가의 천공(우주구멍)이라는 작품이 있겠다. 생각해보건대 이처럼 이상하고 기괴하다거나 희한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내게 다가왔던 유화 작품들은 어떻게 하면 가지고 있는 이 물감을 가장 무가치한 방식으로 소비하는가를 경쟁하는듯한 식의 인상만을 나에게 주었다.

내가 감정적 끌림을 느꼈던 유화작들, 그리고 신기함과 그 신기함을 넘어 아름답다라고 까지 느꼈던 <필립 비슬리>의 착생식물은 예술이었다. 반면 이상함이나 기괴함으로 다가온 유화, 의도를 알 수 없는 설치품, 시대적 저항의식을 상징화한 <쉬린 네사트>, 한진해운 박스프로젝트 등은 최소한 내게 있어서는 예술이 아니었다. 이상함과 기괴함이라는 감정적 이끌림을 위해 예술을 한다고 하기에는 그 가치가 적을 뿐더러 낭비가 심하다고 느꼈고, 나는 그런 기괴한 감정을 너머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창조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진 특이함, 특별함, 이상한 어떤 것들은, 그리고 그 완성을 통한 만족은 그저 그 사람 하나에 머물 뿐이다(예술로 포장된 객기, 가짜 예술). 예술이라 함은 서술 불가능한 감정적 끌림에 관해서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쉬린 네샤트>의 전시는 정치나 사회의 영역이지 예술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예술은 그런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문제를 모티브로 하여 예술의 영역인 그 느낌을 이끌어내는데 도구적으로 쓰일 수는 있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그 예술의 목적이 사회, 정치적인 것이 되어버린다면 그 작품은 예술로서의 순수성이 오염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예술이 아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표현물일 뿐, 예술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버린 셈이다.

한진해운 박스프로젝트(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는 아무리 의도하고 억지로 살펴보아도 내게 아무런 감정적인 것을 주지 못했고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구체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표현물이었다. 보편적으로 아름다움을 전해주지도 않으며 앞서 말했던 서술 불가능한 느낌도 주지 못했다. 그런 추상적 구체적 표현물이 예술이 아님에 대해서 당장은 딱히 서술할 방법을 못 찾았지만 굳이 쓰자면 예술이라기에는 쫌 아닌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무리하자면, 이번 관람을 통해 예술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은 예술이 아닌가?’ ‘예술이라 불리는 것은 어떤 가치를 지니나’, ‘내게 있어서 어떤 것을 주는가?’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도 함께 가졌지만 역시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술로써 표현이 불가능한 영역인 것 같다. 그래도 일차적인 판단을 해보자면 감정적 발화를 준거 삼아 판단해야 마땅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또 개개인마다 예술의 정의, 예술의 가치가 달라지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의와 예술적 방종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절대보편적 진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감정적 발화를 준거 삼아야 한다는 나의 일차적 결론은 당장은 쓸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한다면 또 예술이 상대적인 것이 되기에 나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당장 감정적으로는 나의 감정적 발화만의 진리요 모든 것의 기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독단과 아집이기에.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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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치에 대한 생각. 그냥 끄적댄 것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았으면...

가치: (1)순수가치와 (2)순수가치에 덧붙여진 인간의 가치, (3)가치인 척 하는 가치가 있다. (1)순수가치는 사람이 정하는게 아니라 물건 그 자체의 가치, 탄생하면서 만들어지는 본원적? 가치, 원가, 사실 이 순수가치는 사람이 쉽게 찾을 수 있는게 아니고 다만 그 초월성, 절대성의 근사치에 이르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2)순수가치 이후에 붙여지는 가치는 투하된 노동력의 가치, 순전히 사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가치, 이를테면 운반비, 인건비 등,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가치 (3)가치인 척 하는 가치는 위 (1)과 (2)에 해당하지 않으나 가치인 척 인간이 임의대로 붙인 가치 일괄, 예를 들면 들쑥날쑥한 부동산 가격, 주식시장의 가격변동, 수요공급에 따라 변하는 것, 희소성이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제거되어야 할 가짜가치. (1)+(2)가 결합되 나타나는 가치는 숭고한 가치이고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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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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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면 뭐하지?



아니 당장 다음학기 논문을 어떻게 써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고 있는데 .



반철학(anti-philosophy), 비철학(non-philosophy).


철학이 너무 싫은 나머지 논문의 주제를 위의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참고할 꺼리가 국내에는 전혀 없다.


아 뭐 저기 어디냐 서울대 중앙대 고려대 연세대... 그런 곳에 적을 둔 학생들은 원서라도 구해서 독해해가며 쓸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별볼일 없는 대학에 올 수준밖에 안되는 나라는 학생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 



애초에 철학과에 입학할 때 나는 인식론-형이상학-존재론 등등 현학적이고 그들만의 언어로 쓰여져 있고 또 사변적이기만 한 것들이 주류이자 철학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철학을 공부하기로 했을 때 내게 철학은 "진리"따위를 알려줄것만 같았다. 멋있었다. 현란하고 휘황찬란한 말과 글솜씨로 사람을 설득하고 나를 감동시켜 주었다. 


자신의 글과 말 속에 어떤 '생각'이란 것, 지식이란 것을 집어 넣어 내 생각을 더 구체화하고, 또 사람들을 설득하고, 내 편을 만들고, 사랑을 얻을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이전에 내가 겪고 감동하고 동감하고 동경함을., 그런 것들을 느낀 철학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내가 철학과에 입학하기로 결심하게끔 느꼈던 바로 그 철학을 찾기 위해 많은 것들을 제거했다. 주제와 인물들을 제거했는데. 주제로 말할것 같으면 앞서 말한 인식론-형이상학-존재론이 그것이다.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그런 사변적이고-현학적이고-그들만의 리그속에 있는 인물들로 말할것 같으면 : 데카르트, 흄, 칸트... 더 많겠지만 이 셋은 분명히 철학사에서 제거되야할 대상이다. 최소한 내게 있어서는.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그리스에 있던 놈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제논과 같은 인물들.


철학적 논의와 철학사에서 영영 제거되어야 할 대상들이었다.


플라톤 역시 부분적으로는 영구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리고 중세철학사 전체가 모조리 제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존재론- 특히 신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증불가능한 것은 제거하자. 


이렇게 제거하고 나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내가 알고 있던 철학이 아니었던 것이지.  기껏 해봐야 윤리학, 논리학, 언어철학(분석철학)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여기서 또 언어철학도 지금에 와서는 거의 제거의 대상이 된것 같다. 그나마 언어철학에 희망을 걸었으나 이 언어철학도 나중에 이르러서는 사변적인 경향으로 흘러갔다. 그리하여 나는 언어철학도 버리기에 이르렀다.


윤리학도 지금에 와서는 내게서 소외되었다. 철학의 분과로서의 윤리는 내게 답을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답을 원하는데!


동양철학... 너무나 사변적이고 알수없는 말만- 공감할수 없는 말만 한다. 버려졌다.


아... 모든게 나로부터 버려졌다. 나는 빈 껍데기를 보고 철학을 공부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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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10시간에 할 일을 8시간에 하면 남은 두 시간은 또다른 일이 생기지. 아니면 12시간 소요되는 일을 주고는 야근을 시켜 하루만에 끝내버리게 한다. 군대도 그렇고. 그렇게 배워먹은 경영인들은 또 그렇게 일을 시킨다. 그리고 바보들은 10시간에 일할 것을 개처럼 일해 8시간만에 끝내거나 12시간은 해야 끝내는 업무를 야근까지 해서 마무리하지. 다 있는 놈들- 윗대가리들 주머니만 채워주는 바보같은 짓. 그렇게 수고했다고 머리 한번 쓰담쓰담 해주면 직장인들은 또 좋다고 침 흘리지... 언젠가는 내게도 떡이 떨어지겠지 하면서. 하지만 떡은 개뿔, 그렇게 노예짓 하다가 더 싸게 부려먹을 인력이 생기면 버려지는거지. 마치 다음날 도살되는것도 모르고 주인이 던져 주는 한줌 모이를 좋다고 주워먹는 양계장 닭같다고나 할까나. 귀납주의 오류를 들때 하는 말처럼. 그래서 바보라는겅야. 귀납적으로도 봐도 그렇게 개처럼 일한다고 떡이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는데말이야. 그래서 결론은 내 회사 아니면 "적당히" 일하는게 최선인것 같다는 거야.
경영인들이 말하는 경제성, 효율성? 인간비절약?? ㄴㄴ 착취, 노예부림과는 구분할줄 알아야지. 인건비는 올리면 올렸지 절대 내려서는 안되는겨. 있는거라고는 받은 돈밖에 없는 무능한 경영인들이 할줄 아는게 없어 하는 짓이 인건비 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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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형이상학

저자
임마누엘 칸트 지음
출판사
아카넷 | 2012-03-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칸트 말년의 대표작 [윤리형이상학] 한국어 역주서 발간칸트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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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는 여태 내가 읽어본 책들 중에 가장 불필요하게 읽기 힘들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만이 이 책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우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문장 자체가 너무 딱딱했고, 단어의 선택이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문장의 구성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이 책을 힘겹게 요약해보자면 먼저 머리말에서는 물리학, 윤리학, 논리학, 윤리 형이상학 등에 관한 언급을 하는데, 애초에 저자가 '나는 무엇을 주장할 것인데, 그 근거로는 1.무엇 2.무엇 3.무엇이 있다'라고 글을 썼을 때, 글에서는 첫 번째의 '나는 무엇을 주장할 것이다'등의 말하고자 하는 요점과, '무엇'에 대한 정확한 지시가 일목요연하게, , 명확(明確)나타나있지 않아 보이며, 또 그 '무엇'들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상당히 난해하게 표현한 듯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그 '무엇'들을 보았으되 왜 언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본 제 1절의 제목은 '평범한 윤리적 이성인식에서 철학적 이성인식으로의 이행'이다. 글의 흐름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저자의 요점적인 언급에 대해 나 역시 언급해보고자 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 세계에서 또는 도대체가 이 세계 밖에서까지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은 오로지 선의지뿐이다"라고 시작하며 도덕 또는 윤리와 관련한 언급하려 함을 암시한다. 그 선의지라는 것은 "오로지 그 의욕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라고 한다. "선의지는 보석과 같이 그 자체만으로도, 그 자신 안에 온전한 가치를 가진 어떤 것으로서 빛날 터이다"라며 선의지라는 것의 성격을 표현한다. 그 외 이외의 것들은 단지 포장 같은 것이어서 그 보석(선의지)를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거나 또는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정리한다. 하지만 그 선의지가 정확히 어떤 기능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윤리라는 것의 근원, 선의 아르케(arche)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말한 포장지의 역할을 하는 보존과 번영, 본능 같은 것은 실제로는 행복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하고 있다. "이성의 참다운 사명은, 가령 다른 의도에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 그 자체로서 선한 의지를 낳는 것이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1절에서 '선의지' 다음으로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은 '의무'에 대한 개념이다. 어느 한 문장이나 주장을 꼭 집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저자는 의무를 기반으로 한 도덕적 행동이나 기타 좋은 결과물들만이 유효한 것으로 보는듯하게 느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명제를 던지는데 이 역시 첫 번째 명제는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두 번째 명제는 상당히 장황한 설명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고, 세 번째 명제에서는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이다"라며 말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의무', '법칙'등과 관련하여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마지막 끝 머리말에서는 저자가 아닌 사람의, 칸트 생각의 전반에 대해 전체적으로 되짚어보는 장으로 마무리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칸트의 이 책은 읽기가 힘들었다. 내가 읽고 있으나 나는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한 명제나 주장을 설명하거나, 근거를 설명할 때 상당히 길고 긴 문장과 문단을 사용하는듯 보이기에 글의 전체적 흐름을 이해하며 읽기가 더욱 곤란했다. 결과적으로 주장과 근거가 혼탁해져버렸다. 더욱이 책에서 사용하는 철학적 용어 개념에 대한 기반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형이상학', ,'통찰', '실천', '이성', '이행', '자연적', '변증적', '명증적', '정언적', '가언적', '미정적' 등과 같은 단어들은 읽는 내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스스로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읽고 감상 후 나름의 요약을 할 수 없었으며 읽고 난 후의 나의 견해 역시 당장은 위와 같은 표면적인 '의문' 수준뿐에 미치지 못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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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알던 전교조는 정치적 성향이 매우 강하고, 또 성향으로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고 행동으로써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했다. 어디 지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친북성향, 종북성향의 활동을 지시하지 않나, 사회운동에 아직 나이어린 학생들을 사회운동에 끌어들이지를 않나... 교사로서 중립을 지키고 학생 스스로가 특정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중립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해주어야 할 교사들이 도를 넘어 학생의 사고에까지 자신들의 이념을 가지고 침투하고자 했던 것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지.(예를들면 학생적화사업이라든지..)(정치적 중립의 의무는 교사로서 가져야 할 엄중한 책무를 반하는 것이지)


전교조 소속의 모든 교사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또 전교조가 명시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이 그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교총을 비롯한 다른 교원단체에 비해 그 색체가 불순했다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이야. 분명 전교조가 사회와 교육현장의 진보에 기여한 바가 매우매우매우 큰 것도 사실이지만, 그 속에 불순세력이 들어간 것 역시 사실이고, 전교조는 이를 인정하고 좀 더 순수해질 생각을 않고 있으니 이 역시 문제로 보는 것이고... 스스로 내부청소를 않는데 , 그러니까 난 정부에서 전교조 탄압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바이다.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전교조가 눈엣가시같은 진보적 교원단체이기 때문에 탄압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보고싶다) 정부의 탄압의도가 어찌되었든 전교조는 확실히 문제있는 집단임에는 분명하고 이것이 사회 일반의 전교조를 향한 시선이라고 난 느낀다.


우리끼리만 탄압이라고 하면 무엇하나. 사회적 공감을 형성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마치 이석기의 RO나 전교조나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고.나는 분명 북한왕정체제와 민족주의와 자본주의와 미 제국주의를 증오하며, 진보를 지향하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따위를 지지하는데,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것이 나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옳다고 여겨진다고 누군가에게 강요하거나 암묵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부당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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